[선데이 칼럼] 용과 마주보기
실은 오래된 이야기였다. 서양을 여행하면서 흥미를 끄는 일 중의 하나가 이 사람들이 어떻게 용을 대하고 살았는가 하는 주제였다. 대개는 필마단기의 기사가 일대일의 혈투로 이 무서운 괴물을 무찌르는 것이다. 시나 이야기로 혹은 조각이나 회화로 도처에 그 살벌한 투쟁의 흔적과 만나기에, 어쩌면 서양의 문명은 이 피비린내 나는 승리의 기억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다른 한편 힘없는 일반인들은 때때로 용과의 타협을 통해 구차한 생존을 추구하기도 하였던 것 같다. 그 대가는 공물을 바쳐 용의 무서운 욕심을 달래는 것인데, 그 공물이 흔히 젊고 아름다운 처녀가 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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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에서 용은 정복의 대상
기사가 혈투 벌여 평화 쟁취
우리는 용을 자연처럼 숭배
권력자들 용 활용 입지 강화
」
우리에게는 왜 이런 투쟁의 서사가 없는 것일까? 용이란 결국 자연의 무자비한 위력의 상징인가? 사람의 생존과 그 삶 위에 문명을 이루기 위한 노력의 첫 번째 상대는 자연이다. 용과 싸워서 이를 정복하려고 한 서양과는 달리, 우리는 자연을 숭배하고 순응하는 길을 택하였던 것인가? 그래서 최고의 권력을 얻은 사람들도 자신을 용과 동일시하거나 그 상징으로 자신을 치장하려 했었나. 권력이나 부를 추구하는 일반인들도 어떡하든, 심지어는 꿈 속에서라도 용에 가까워지려는 간절한 희망들을 품고 살았었나? 어느 날 학교의 건물 벽에 새겨진 부조(浮彫) 하나를 들여다보다가 이런 엉뚱한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거기에도 말 위에 탄 기사가 입을 벌리고 달려드는 용을 창으로 찌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용에 빌붙어 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때때로 우리 나름 방식으로 용과 싸워서 미녀를 구하기도 하였다. 반드시 살벌한 살육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머리에 떠오른 것은 군중이었다. 두려워 하거나 곤궁한 모습들이 아니었다. 즐겁고 기대에 찬 표정들이었다. 무리의 가운데 아름다운 소녀가 있었다. 이들은 미인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그를 기리고 칭송하려 모여들었고 소녀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녔다. 사람을 모이게 하는 것이 바로 힘이다. 많은 경우 모임 자체가 힘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계에 중요한 비와 바람을 관장하는 용의 힘을 숭상하였지만 미인은 또다른 힘이었다. 이 힘은 다 늙은 노인을 움직여 위험한 절벽을 기어올라 소녀가 바라는 꽃을 꺾어 바치게 할만큼 큰 것이었다. 물속의 용은 자기와는 다른 새로운 힘의 등장에 불안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용은 기회를 노리다가 소녀의 일행이 물가를 지날 때에 갑자기 몸을 솟구쳐 미인을 움켜쥐고는 물속으로 사라졌다. 그것은 엄청난 위력의 시위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것에 감동하거나 위압 당하지 않았고 용과 싸워서 자신들의 미녀를 되찾았다. 살벌한 싸움은 없었다. 군중은 단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을 뿐이다. “거북아, 거북아 …” 용은 이미 용님이 아니라 거북이 되었다. 오랜 훗날 불붙은 한류의 시작이었을까. 용은 깨달았다. 미인은 그 자리에 없기에 더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마침내 미인은 안전하게 기쁨에 넘치는 군중에게 돌아갔다. 살벌한 싸움은 없었다. 그 후로 용과 사람들은 사이 좋게 지냈다고 한다.
후기: 이런 내용을 담아 쓴 원고는 1980년 봄, 군 검열관의 ‘게재 불가’ 판정을 받았지만 그 뒤 ‘The Dragon and the Beauty’란 제목으로 멋진 삽화와 함께 외국 잡지에 게재되었습니다. 이런 글을 계속 써달라는 부탁 함께 두둑한 원고료도 따라왔습니다. 의외의 반응에 고무된 작가는 계속 이런 유의 동화를 썼고 자신을 동화작가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용의 해에 맞는 설날을 앞두고 상상의 동물인 용을 대하는 동서양의 차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라종일 동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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