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철살인 미술 비평 라이브로 본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실험

2024. 2. 3.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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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작가상’ 선정 과정 화제
이강승의 영상작품 ‘라자로(정다은, 네이슨 머큐리 킴과의 협업)’(2023).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오는 6일, 국립현대미술관(이하 국현) 서울관에서 흥미로운 행사가 열린다. 국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미술상 중 하나인 ‘올해의 작가상’의 2차 심사가 대중 공개로 열리는 것이다. 올해의 작가상이 시작된 2012년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심사위원 4명이 후보 작가 4명의 발표를 듣고 질의응답을 하는 ‘작가 & 심사위원 대화’가 국현 서울관의 다원공간에서 6일 오후 1시부터 250명 관람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뤄질 예정이다. 미술 관계자 및 애호가들의 반응도 뜨겁다. 지난 19일 국현이 웹사이트에서 관람 예약 신청을 받았는데 불과 2시간 만에 250석 예약이 마감되었다.

관람 예약 불과 2시간만에 마감

4명의 후보 작가들은 권병준·갈라 포라스-김·이강승·전소정 작가이며, 이들은 이미 국현 서울관에서 지난해 10월 시작된 ‘올해의 작가상’ 전시에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심사위원은 영국의 주요 문화재단인 델피나 파운데이션의 총괄 디렉터 아론 시저, 2025 하와이트리엔날레 예술감독인 최빛나, 벨기에 안트베르펜 현대미술관의 부(副)디렉터인 나브 하크, 일본 오사카 국립현대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인 우에마츠 유카다.

전소정의 영상작품 ‘절망하고 탄생하라’(2020).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지난해 9월 국현 관장으로 신규 임명된 김성희 관장은 “올해의 작가상 선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여 한층 발전된 수상제도로 자리매김하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현은 또한 “국내외 심사위원들의 심도 깊은 비평과 작가와의 상호작용을 대중이 직접 관람할 수 있는 자리가 처음으로 마련된다”며 “비평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한국 현대미술계에 신선한 울림이 될 것”이라 했다. 칭찬 일색 ‘주례사 비평’이 많은 한국 미술계에서 냉철한 비평을 라이브로 볼 수 있는 드문 기회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번 심사에는 전시 기간 중 관람객들이 작가에게 남긴 500여 건의 질문 중 일부를 선택해 전시를 기획한 학예연구사가 직접 작가에게 질문을 하고 현장에서 답을 듣는 세션도 마련된다.

이처럼 관람객 앞에서 강도 높은 심사를 받을 작가들의 면면은 지금 ‘올해의 작가상’ 전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작품의 주제도, 표현 매체도 모두 다르지만, 근현대를 지배한 인간중심주의 또는 이른바 ‘정상적인 인간’ 중심주의를 배격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갈라 포라스-김의 ‘세월이 남긴 고색의 무게’(2023).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먼저, 미국 로스앤젤레스(LA)와 영국 런던에서 활동하는 한국-콜롬비아계 작가 갈라 포라스-김은 ‘유물’이나 ‘유적’에 대한 인간중심적 고정관념을 뒤집는 작업을 선보인다. 특히 이번 전시를 위한 신작 ‘세월이 남긴 고색의 무게’가 흥미롭다. 3점의 그림이 한 세트인 이 작품은 고인돌의 세 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가운데 그림은 우리가 보는 고인돌의 모습이다. 왼쪽 그림은 온통 암흑일 뿐인데, 고인돌에 묻힌 죽은 이의 시선으로 보는 고인돌의 모습이라는 설명을 들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오른쪽 그림은 이끼와 식물로 뒤덮인 돌인데, 자연의 시선으로 보는 고인돌의 모습이라 한다. 어떤 사물의 모습이 반드시 살아있는 인간의 시선으로 보는 모습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갑자기 찬물을 끼얹는 듯 깨우쳐준다.

최종 수상자 이달 중 발표 예정

또다른 후보인 권병준 작가의 작업은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을 대체할 것이냐 아니냐로 떠들썩한 요즘 시기에 특히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을 위협하는 유능한 로봇들이 아니라 ‘오체투지 사다리봇’이나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로봇’ 등 제목처럼 별로 쓸모 없는 일을 하는 쓸모 없는 로봇들을 제작해서 선보이기 때문이다. 미술관은 이들 로봇이 “(유능한) 로봇의 등장으로 인해 노동력의 가치를 잃은 인간 노동자들을 씁쓸한 마음으로 떠올리게” 한다고 했다. 작가는 결국 비슷한 처지인 ‘쓸모 없는’ 인간과 로봇이 연대할 가능성을 제시한다.

작가는 본래 얼터너티브록 등의 음악을 하다가 전자악기 연구개발 엔지니어를 거쳐 지금은 소리와 관련한 하드웨어 연구를 하고 있다.

권병준의 로봇 작품 설치 모습.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LA와 한국에서 활동하는 이강승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성소수자들의 느슨하면서도 절박한 연대의 역사를 ‘돌봄’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나간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신작인 영상작품 ‘라자로’다. 두 명의 무용수가 두 개의 남성 드레스셔츠가 한데 꿰매어진 의상을 입고 애정과 갈등과 충돌과 연대를 표현하는 춤의 몸짓을 선보인다. 이 의상은 브라질의 개념미술가 호세 레오닐슨의 작품을 오마주한 것이며 두 무용수의 동작은 싱가포르 출신의 안무가 고추산의 발레 무용에서 영감을 받아 안무가 정다은이 창작한 것이다. 레오닐슨과 고추산 모두 성소수자였으며 에이즈와 관련된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이 작품은 두 예술가를 기리는 의미도 담고 있다.

한편 영상·사운드·조각·출판 등 다양한 매체로 작업을 해온 전소정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신작 영상작품 ‘싱코피(Syncope)’ 등을 포함한 여러 작품을 선보인다. 올해의 작가상 최종 수상자는 6일 2차 심사를 치른 후 2월 중에 발표될 예정이다. 4명의 후보는 이미 창작 후원금 5천만 원을 각각 받았으며, 최종 수상 작가는 추가 후원금 1천만 원을 더 받는다.

문소영 기자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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