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아가씨와 스타 탄생의 막전막후
백경권 엮음
도서출판 윤진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백영호 작곡, 한산도 작사, 이미자 노래의 ‘동백아가씨’ 첫 소절이다. 신성일·엄앵란이 주연한 같은 이름의 1964년 개봉 영화(감독 김기) 주제가로, 100만 장 이상의 앨범이 팔린 대표적 국민가요다. 애끊는 곡조와 가사로 전 국민의 심금을 울린 노래이지만, 처음 세상에 나올 때는 성공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신인 가수로 지명도가 낮았던 이미자는 만삭의 몸이기도 해 주목하는 사람이 드물었기 때문이란다.
일제강점기 일본 군대를 탈영해 만주와 내몽골에서 밴드마스터와 기타 연주자로 지내다가 해방 이후 귀국한 백영호는 고향 부산과 대구를 오가며 코로나·유니온·서라벌·미도파·빅토리레코드사에서 작곡가로 활동했다. 남인수, 현인, 백년설, 백설희, 황금심, 최숙자 등 스타 가수들에게 곡을 주며 지방 작곡가로서 나름대로 명성을 쌓았다. 그를 일약 명작곡가 반열에 올린 것은 뭐니뭐니해도 ‘동백아가씨’였다.
서울로 올라온 백영호는 지구레코드사에서 일하며 최숙자 같은 쟁쟁한 인기 가수 대신 신인 유망주 이미자를 전속 가수로 밀어붙였다. 우여곡절 끝에 이미자가 부른 ‘동백아가씨’가 출시됐고 백영호는 레코드를 들고 무교동 쎄시봉과 소공동 지하 다방, 종로 단성사 근처 다방 등을 돌아다니며 DJ들에게 노래를 틀어 달라고 사정사정 부탁해야 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다방 손님들은 ‘동백아가씨’를 듣자마자 앵콜곡으로 다시 신청했고 청계천 레코드 도매상가에는 난리가 났다. 시중 레코드 상점들은 음반을 달라고 아우성을 쳤고 용산의 지구레코드사 공장은 폭주하는 주문을 감당해 내지 못해 아수라장으로 변해 버렸다.
백영호와 이미자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동백아가씨’는 그러나 왜색이 짙다는 이유로 1965년 금지곡으로 지정됐다. 트로트 전성시대를 맞고 있는 21세기의 시각으로 보면 어이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동백아가씨’는 1987년 민주화로 해금되기까지 22년 동안 잊혔다가 새 빛을 보게 됐다. 이후엔 저작권을 둘러싼 소송까지 벌어져 다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신인을 키우겠다는 열망이 강했던 백영호는 이미자 이후에도 ‘동숙의 노래’를 부른 문주란, ‘새벽길’의 남정희 등을 발굴했다. 하춘화, 남진, 나훈아, 현철 등과도 작업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진송남), 공군 군가가 된 ‘성난 독수리’(이미자·남일해·권혜경,·강수향), ‘추풍령’(남상규), ‘비 내리는 명동’(배호) 등 주옥같은 영화 주제가들도 그의 손을 거쳤다. 70년대 최고의 드라마 ‘아씨’(TBC)와 ‘여로’(KBS)의 주제곡도 그가 작곡했다.
이 책에는 20세기 중후반 한국에서 명멸한 레코드 회사들의 이야기, 권위주의 정부의 검열과 금지곡 지정 등 문화 통제, 사각지대에서 보호받지 못한 저작권 문제, 한국 가수들의 일본 진출 등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수놓아져 있다. 백영호라는 창을 통해 본 대중가요의 세계는 현란함 그 자체였다. 앞으로 다른 작곡·작사가, 가수, 제작자들의 이야기나 평전이 더 많이 출판되기를 기대해 본다.
한경환 자유기고가 khhan88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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