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되는 한국 시장 직접 노렸다, 미드 ‘성난 사람들’ 뜬 비결
오동진의 전지적 시네마 시점
미 콘텐트 업계, 한국용 앞다퉈 제작
최근 국내 매스컴은 이성진 감독이 만든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beef)’이 에미상에서 무려 8개 부문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며 ‘석권’, ‘쾌거’ 같은 올림픽 단어를 쏟아냈다. 평단에서는 이 드라마가 작품상과 감독상·남녀주연상까지 모두 가져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넷플릭스 작품이었고, 넷플릭스가 아무리 마케팅의 귀재라 한들, 극본상과 ‘많이 가 봐야’ 감독상까지라고 내다봤다. 그런데 최고상인 작품상을 탔다. 흥분할 만한 ‘사건’인 것은 분명했다. 게다가 작품상·감독상·남우주연상·여우주연상·극본상·의상상·캐스팅상·편집상 등 수상 면면을 봐도 주요 부문을 휩쓴 것이었다.
‘성난 사람들’의 성과는 한국인 2세가 1세와 달리 미국 주류사회로 완전히 들어섰음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민 1세는 세탁소와 청소부, 스쿨버스 기사 등 하층계급의 노동으로 아이들을 키워내 메인스트림에 걸맞는 인재들로 성장시켰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다 아는, 진부한 얘기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이민 한인 2세는 고생스러운 부모의 백업, 뒷바라지의 이미지가 보다 강했던 것이 사실이다. ‘성난 사람들’은 그걸 넘어서서 2세대가 지닌 ‘자립의 정체성’과 그 이미지를 확고하게 보여 준 작품이다. 극중에서 대니는 끈기 있게 엄마의 한숨과 자조를 달래며 자신이 집안의 리더임을 보여주려 애쓴다. ‘성난 사람들’ 속에 나오는 한인 2세가 이제 더 이상 어린 2세들이 아니며 그들 역시 엄혹한 세상에 나가 있고, 그에 맞서 싸우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 꽤나 감동적인 측면도 있다.
‘성난 사람들’이 보여주는 것이 단순히 미국 내 한인 커뮤니티의 확장성만은 아니다. 한인들의 영향력이 커졌기 때문에 이런 드라마가 나왔다는 말은 그냥 다 갖다 붙이는 말일 뿐이다. 그보다는 미국 내 제작자들이 어느 순간부터 저 멀리, 지구 구석에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마켓이 꽤나 쏠쏠하며 수익성이 높은 시장이라고 판단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난 사람들’은 미국 내 한인 사회를 겨냥해 만든 10부작 드라마라기보다는 미국에서 한국 시장과 한국 관객을 ‘직접’ 겨냥해 만든 일종의 ‘한국용 드라마’라는 점이다.
중산층으로 살아 남으려면 싸워 이겨라?
이처럼 미국과 한국의 시장이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분위기는 미국의 아카데미 시상식과 에미상 시상식이 선도하고 있다. 2020년 봉준호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을 흥분의 도가니로 만들자 2022년 에미상은 황동혁의 ‘오징어 게임’을 최고의 자리에 앉히며 분위기를 달구었고 다시 이번 2024년의 ‘성난 사람들’이 이뤄낸 성과는 셀린 송의 역작 ‘패스트 라이브즈’가 아카데미 작품상·각본상 후보로 올라가는 연결점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지난해 엄청난 인기를 모았던 장편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의 감독은 역시 한국인 2세 피터 손으로, 아카데미 장편애니메이션상 부문에 올라 있다. 아카데미와 에미가 서로 주고받으며 결국은 시장의 최고 수익을 만들어 가는 분위기는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은 돈이다. 돈을 따라가면 이유가 보인다.
원제 ‘비프(beef)’는 ‘고기’라는 뜻이라기보다는 ‘불평’ ‘불만’ ‘싸움’의 의미를 갖고 있는 단어다. 대니와 에이미 롸우의 싸움은 작은 불평에서 시작된다. 서로 모른 채 무시하고 제 갈 길을 갔으면 저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민자들은 (물질적으로) 잘살기 위해서 미국으로 갔지만 결국은 (올바르게) 잘사는 것의 문제에 직면한 자신들, 특히 2세대를 발견하고 당황해 한다. 이민 2세대는 이제 정체성 혼란 따위를 겪는 것이 아니라 미국인들처럼, 한국인들처럼, 그리고 전세계 누구들처럼 자본주의적 가치관에 대해 극심한 혼란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성난 사람들’은 소통과 연대라는 단어가 정치사회적으로 얼마나 허울 좋은 단어에 불과한 지를 보여주며, 다들 얼마나 지옥같은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지 그려낸다. 한때 자본주의는 노동자와 자본가가 싸우게 했지만, 어느 순간 더욱 더 못살게 된 하층계급과 아예 자본가 그룹에서 밀려난 중산층 계급의 싸움으로 바꿔냈다. 그러다 이제는 에이미와 대니처럼 그 싸움의 전선을 중산층 안으로 가두고 있음을 얘기하는 작품이다. 다들 중산층 정도는 되려고 안간힘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데 그 범위가 너무 작아 경쟁이 치열한 바, 너희들끼리 알아서 치고 받고 싸워 이긴 자가 중산층으로 살아 남으라는, 그 정도는 돼야 사람처럼 살 수 있다는 의미처럼 보인다. 이러니 다들 성이 날 수밖에 없다. ‘성난 사람들’의 성과에 드리워진 빛과 그림자를 잘 구분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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