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은 큰 오해…탄압 주장 증인, 근거는 느낌이라 말해"

임장혁 2024. 2. 3.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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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무죄 이끈 이상원 변호사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인 이상원 변호사가 지난달 31일 서울 사무실에서 5년간의 1심 소회를 밝혔다. 그는 ‘사법농단’ 사건을 “일군의 좌파 판사들의 오해”라고 말했다. 박종근 기자
지난달 26일 법조계에서 ‘세기의 재판’이라고 불리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소위 ‘사법농단’ 피고인들에 대한 1심 재판이 1810일 동안 290번의 기일이 열린 끝에 마무리됐다. 헌정 사상 최초 전직 대법원장 구속, 판사 14명 기소, 수사기록 17만 페이지 등 검찰이 남긴 화려한 기록들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형법 123조)가 적용된 47개 혐의 전부가 무죄라는 결과는 큰 대조를 이뤘지만 정치권은 조용했다.

사실상 검찰에 수사를 부탁한 김명수 전 대법원장과 법원 좌파들이 추동한 일이지만, 이들과 손잡고 사법부 권력 교체 드라이브를 걸었던 문재인 전 대통령과 서울중앙지검장과 중앙지검 3차장 검사로 수사와 기소를 몰아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콜라보가 아니었다면 벌어질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법농단의 내부고발자임을 자처해 금배지를 단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양승태 대법원장 수족들은 귀신의 지시를 받은 것이냐”는 등 연일 분노를 내뿜고 있지만 그의 목소리에 공감하는 법조인을 찾긴 쉽지 않다.

선고 직후 “당연한 일을 명쾌하게 판단해주신 재판부에 경의를 표한다”며 법원을 빠져나간 양 전 대법원장의 소회가 가장 궁금했다. 아직 언론과의 접촉을 저어하는 그를 대신해 변호인 이상원 변호사(사법연수원 23기)를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로 찾아갔다. 마침 목차 등을 제외하고 2847페이지에 달하는 판결문을 받아 든 날이었다.

이 변호사는 박영수 특검팀이 박근혜 정부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수사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기소한 2017년부터 급작스레 펼쳐진 ‘직권남용 범람의 시대’의 최전선에 있었다. 김 전 비서실장에 이어 이명박 정부 민간인 사찰 의혹 사건의 장석명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의 변호를 맡았고, 2019년 1월 양 전 대법원장 사건에 뛰어들었다. 이들의 핵심 혐의가 모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부 분석에 놀라

Q : 선고 직후 “당연한 귀결”이라고 한 양 전 대법원장이 남긴 소회가 더 있나.
A : “아주 놀라웠다고 했다. 최근까지도 재판부가 혹시 일선 법원과 다른 법원행정처의 기능과 특성에 대한 이해가 좀 부족한 것 아닌가 조금 우려했는데, 범죄 구성요건별로 아주 분석적이고 명쾌한 판단을 내리는 걸 보고 놀랐다는 취지였다.”

Q : 5년간의 1심, 변호사에게 보통 일이 아니다.
A : “힘들었다. 2021년 2월 어느날 법정에서 노트북에 뜬 뉴스 알림 메시지에서 ‘양승태 재판부 바뀐다’는 제목을 보고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차를 몰고 퇴근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주르르 흐르더라. 수능 공부에 2~3년 ‘올인’해 왔는데 시험 일주일 전 느닷없이 ‘올해 수능 없대, 내년에 본대’라고 통보받은 고등학생의 기분이 그랬을까 싶다. 검찰의 여론전 때문에 판사도 부정적 선입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뒤집기 위해 애써 끌어낸 증인들의 어조와 표정 그리고 몸짓이 모두 신기루처럼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Q : 판결을 따라가니 직권남용죄의 구성요건별로 OX를 체크할 수 있더라.
A :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한 행정처 심의관 등의 대부분 실행행위가 위법하지 않다는 거다. 통상은 그렇게 결과가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다른 요건들의 충족 여부는 판결문에 안 쓰는데 이번 재판부는 각각의 요건들에 대한 판단과 이유를 모두 제시했다. 2심이 결론을 뒤집으려면 그 모든 판단들을 반박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형법전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표현돼 있다. 어떤 일을 지시한 자와 그 일을 실행한 자로 구분되는 수직적 관계의 두 명 이상이 공무원의 존재해야 이 죄를 적용할 수 있는 구도가 마련된다. ①지시한 사람에게는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특정한 행위를 시킬만한 일반적 직무 권한이 있어야 하고 ②그 지시로 인해 공무원이 정당한 권리행사를 방해당했거나 하면 안 되는 일을 했다는 결과가 있어야 한다. ③중간에 낀 공무원이 여럿이라면 그들 사이에 적극적 공모가 있었는지도 재판에선 중요한 쟁점이다. 재판부(부장판사 이종민)는 47개 혐의에 채워진 사실관계들이 각각의 요건에 해당되는지를 일일이 판단했다.

검찰, 2심서 47개 혐의 반박 쉽지 않을 것

Q : 실행행위가 위법하지 않다는 주장을 집중적으로 펼쳤나.
A : “그렇다. 기본적으로 ‘어떤 것들은 할 수 있는 일이다’라고 제한적으로 열거하는 것은 행정의 속성에 반하는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행정 작용이 필요한 상황은 너무나 다양하고 예상치 못한 상황도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법에 정하고 이 법을 지키라고 하는 게 맞다. 그런 관점에서 법원행정처의 역할·기능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법률, 시행령, 내부 지침과 법적 윤리 등을 쭉 짚어나가며 당시 있었던 일들이 이를 위반한 행동이라고 볼 수 없다는 점을 설명했다.”

Q : 2017년 이후 한껏 넓어졌던 직권남용의 그물코가 다시 좁혀진 건가.
A : “원래대로 돌아온 거다. 박근혜 정부 말기, 소위 ‘촛불혁명’의 시대를 맞으면서 판사들이 살벌하다고 느낄 분위기가 됐다. 헌법과 법률, 그리고 양심에 따라 판결하면 A지만 그랬다가는 신상이 털리고 문자 폭탄 맞고. 몸을 사릴 수밖에 없는 분위기에 위축돼 B라고 한 판결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Q : 유죄판결이 늘었지만 법리적 변화는 거의 없었다. 2020년 김기춘 전원합의체(전합)는 어떻게 보나.
A : “전합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계속 무죄였던 어떤 유의 행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유죄가 된다는 건 그만큼 구성 요건과 그 해석이 추상적이고 애매하다는 문제가 있다는 거다. 그런데 전합은 아무런 답도 내놓지 않았다. 다수 의견은 논리가 없다. 지금의 판례가 오래 지속될 수 없을 거다. 검찰이 항소를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항소 또는 상고가 돼서 대법원까지 가면 전합을 한 번 더 해야 되지 않을까.”(※ 검찰은 2일 항소한다고 밝혔다.)

Q : 김기춘 사건에선 특정 성향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지원 배제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는 점에서 사법농단 사건과 차이가 있다.
A : “이 사건에도 헌법재판소 파견 연구관에게 헌재의 기밀을 누설하게 했다는 부분은 비슷하다. 양 전 대법원장이 한 말은 ‘파견 법관으로 가서 법원과 협조가 잘 이뤄질 수 있도록 헌재에 무슨 일이 생기면 법원도 알 수 있게 해달라’는 정도였다. 파견 법관의 소임을 다하라는 덕담 차원이다. 과연 이 말을 ‘헌재의 기밀까지 불법적으로 빼오라’는 지시로 볼 수 있을까. 김 전 실장도 마찬가지다. ‘반헌법적 세력, 종북 좌파를 국가가 지원하는 건 넌센스다’ 정도의 말을 ‘문재인 지지한 문화예술인은 지원에서 배제하라’는 말로 보는 게 자연스럽나. 위계 서열을 타고 말이 내려가는 과정을 면밀히 보면 위법의 증표를 띄게 되는 어떤 순간이 있다. 그 순간에 법적 책임의 연쇄를 끊어야 한다.”

Q : 다른 이유로도 다 무죄가 났지만 공모관계 부인에 상당히 신경썼다. 사법부의 수장이 다 ‘몰랐다’도 하는 태도가 좋지 않아 보였다.
A : “그 점은 양 대법원장도 마치 책임을 회피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여러 번 괴로움을 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공소된 행위는 대부분 법원행정처의 일상적인 사법행정업무이고 그러한 업무처리에 대법원장이 일일이 지시 관여하지는 않는다. 형사절차에서 사실관계를 확정하기 위해서는 팩트 그대로를 주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이다.”
고소·고발 등을 통해 검·경에 접수되는 직권남용 사건 발생 건수는 계속 늘고 있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2000년에는 78건에 불과했지만 2022년에는 2304건이 됐다. 특히 국정농단 사건 기소가 있었던 2017년을 기점으로 배증한다. 2016년에는 992건이었지만 2018년에는 1835건이었다. 검·경이 직권남용죄를 각종 행정 영역에 널리 적용하면서 공직 사회 전반이 움츠러들었다는 평가가 곳곳에서 나오는 게 현실이다. 그런 현상이 사법행정에선 극히 심각하다.

Q : 지나고 보니 ‘사법농단’의 실체는 뭐였다고 생각되나.
A : “오해다. 사법행정 경험이 없는 일군의 좌파 판사들의 거대한 오해.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에게 ‘연구회 소속 판사들이 실제 불이익을 당한 사례를 들어달라’했더니 ‘그런 건 없다’고 하길래 ‘연구회가 만든 문서에 계속 탄압을 받아왔다는 얘기를 왜 썼냐’ 물었다. 돌아온 답은 ‘느낌이죠’였다. 상고법원 추진도 노무현 정부 시절 국민참여재판 도입도 목적은 같다. 사법부의 생명인 국민의 신뢰 유지. 막말이나 정치적 언사처럼 법관 윤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거나, 판결이 아닌 집단행동이나 대외적 의사 표출로 법원의 중립성과 공정성이 의심 받는 일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 건 법원의 여느 수뇌부도 다 같았다. 사법부의 신뢰에 위협이 되는 사태가 발생하면 문제를 해결해야지 그냥 두면 안 된다는 생각.”

Q : 지금도 법감정과 법원의 판단 사이에 괴리는 상당하다.
A : “사법 행정이 무엇이냐에 대한 인식이 법원행정처에 근무했던 판사, 일선 법관, 검사 사이에 큰 차이가 있더라. ‘법원이 주는 예산 받아서 재판하면 되지 왜 로비 집단처럼 국회에 와서 제도나 예산을 설명하고 다니냐’는 게 검사들의 인식이다. 일선 판사들은 행정처 판사들과 검사들 사이 어딘가에 있다. 예를 들어 희생자가 많은 이태원 참사 재판을 집중 심리해 빨리 끝내라는 사회적 요구가 있다. 피고인들이 다 구속기간 만료로 풀려나기 전에. 그렇게 하려면 수석부장이나 법원장이 다른 재판부 판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일반 사건들을 나눠주고 해당 재판부는 그 사건에만 집중하게 해줘야 한다. 그런 것도 검찰이 볼 땐 위법한 재판 관여일 수 있다. 그걸 본 김명수 전 대법원장은 논란 소지가 조금이라도 있는 일은 아무것도 안 했다.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가고 있다.”
이 변호사는 “양 전 대법원장이 가장 자책하는 대목도 여러 법관들의 오해를 정확히 파악하여 소통과 설득으로 이를 해소시키지 못했다는 점”이라며 “기능 부전에 빠진 사법부가 제 기능을 찾기 위해선 사법행정이 어떤 일을 할 수 있고 어떤 일은 하면 안 되는지 폭넓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장혁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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