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낭만 착각 혼술부터 끊어라…운동? 날짜 계산 말고 일단 뛰어라"
새해 작심삼일 그만, 금주·운동할 결심 체험기
오늘로 금주 17일째. 의사는 “아시겠지만 단것은 몸에 좋지 않다. 다만 술을 대체할 수 있다면 금주 초기엔 권할 만하다”고 말했다. 운동 17일째. 트레이너는 “운동하고 단 걸 안 먹는 게 최선이지만, 운동하고 먹는 걸 차선으로 선택할 수는 있다”고 했다. 조현 순천향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단맛을 원하는 건 삶의 패턴이 바뀌면서 생기는 정신적·신체적 공백을 메우려는 보상 심리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어쩐지’ 단맛에 끌렸다는 것이다.
2024년 새해. 중앙SUNDAY 취재진은 ‘작심’을 했다. 50대 기자는 30년 넘게 마신 술을 끊었고, 30대 기자는 8년 넘게 주저했던 운동을 시작했다. 큰 이유는 없다. 어쩌면 누군가 하니까 따라 하는 거고, 뭐라도 안 하면 불안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한국리서치에 따르면 2024년 새해 결심 1위는 ‘건강 유지와 회복’. 지난 3년간 줄곧 선두다. 이를 위한 금주와 금연·운동은 새해 결심의 구체적 레퍼토리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안다. ‘작심삼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는 걸. 작심삼일은 꼭 3일이 아니라 단기간에 목표가 흐지부지됨을 일컫는다. 그렇다면 이번엔 과연?
#국민 12% 금주 필요한 위험한 단계
“아, (잭처럼) 저도 그랬죠.” 일산 허씨의 말이다. 올해 예순인 그는 13년째 술을 ‘끊고’ 있다. 세계적인 단주 모임 ‘알코홀릭스 어나니머스(익명의 알코올중독자들)’ 회원이기도 하다. 하루에 소주 7~8병을 마셨다는 그는 “나도 소주 반병에서 시작했는데 괜찮다, 괜찮다 합리화하다 보니 하루 8병까지 이른 것”이라고 했다. 누구라도 자신처럼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는 그러면서 “나도 11개월 끊었다 다시 마시게 된 날, 그동안 못 마신 걸 영화 속 잭처럼 한없이 들이켜고 말았다”고 회고했다.
하종은 고양시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장은 “우리나라 인구의 12% 정도는 금주가 필요한 알코올 남용 이상의 단계”라며 “자신이 위험한 상태임을 인정하지 않고 어떤 행위에 대해 보상받으려는 심리로 음주하기 때문에 금주가 어려운 것”이라고 진단했다.
고모(51·서울 서초구)씨는 금주 3개월째다. 매일 소주 1병씩 마셨던 그는 “술을 마신 다음날이면 눈이 침침했다”고 했다. 동국대병원 안과 의료진이 “알코올로 췌장 기능이 떨어져 엽산 흡수가 안 되기 때문에 시력 저하가 올 수 있다”고 경고하자 결국 그는 금주를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회사원 조모(53·경기도 고양시)씨도 새해 들어 금주에 돌입했다. 매일 소주 1병과 맥주 2병을 세트로 마셨던 그였다. 하지만 그는 “사흘 정도는 잘 참았는데 그 뒤로는 영 어렵더라. 자신이 없다”고 토로했다. “친구, 회사 동료, 거래처와 모두 단절되는 느낌”이라고도 했다. 오죽하면 『금주 다이어리』의 저자 클레어 풀리도 “난 공식적으로 버림받았다”고 썼겠는가. 그는 이렇게 술회했다. “처음엔 축하할 일이 있을 때 술을 마신다. 그러다 긴장을 풀기 위해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그런 뒤엔 위안을 위해, 두려움과 초조함 때문에 마신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어떤 감정이든 술로 풀게 된다.”
고씨는 회사 업무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조씨는 코로나 팬데믹 때 찾아온 우울감 탓에 술을 찾게 됐다고 고백했다. 일산 허씨의 폭주는 세상에 대한 막연한 분노가 밀고 끌었다. 이에 대해 하 센터장은 “저마다의 이유로, ‘저 사람도 마신다’ ‘안 마시면 뭔가 허전해’ 등으로 합리화하면서 습관적으로 마시다 보면 알코올에 대한 내성이 쌓여 음주량은 점점 늘고 필름이 끊기는 ‘블랙아웃’도 빈번하게 나타나면서 위험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반주·혼술과 아침 해장술이 당긴다면 알코올 의존증 초기 증상으로, 끊고 싶어도 끊기가 매우 힘들어진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강현종(55·경기도 파주시)씨는 25개월째 금주 중이다. 그는 “운동을 잘하려고 끊었고, 끊다 보니 운동에 더 집중하게 됐다”며 “이젠 술 생각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흡연은 35년째 계속하고 있다. 강씨는 “술을 끊은 것처럼 담배도 언젠간 끊고 싶다”고 했다. 조 교수는 “흡연을 멈추지 못하는 것 또한 도파민 때문”이라며 “반주나 혼술 등 습관적 음주부터 없애 금주에 이르는 것처럼 흡연도 ‘괜히 피는 것 같다’는 상황부터 정리하고 운동 등 ‘보상’이 될 만한 취미 활동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금주와 금연을 위해서는 상담자와 '라포(rapport·유대감 혹은 친밀감)'를 쌓아 쌓는 것도 도움이 된다. 고양시 덕양구 보건소 금연클리닉에서는 최근 39년간 흡연을 해온 전모(57)씨가 담배를 스스로 끊도록 상담했다. 보건소 관계자는 "직업이 성우라 목소리를 지켜야 한다는 본인의 의지가 있었지만, 사실 외로운 싸움이라 상담과 조언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밝혔다.
50대 기자는 일단 혼술을 없앴다. 보상용으로 퇴근 직후 목공을 시작했다. 조 교수의 말처럼 금주와 금연은 결국 운동으로 만날 가능성이 크다. 지난달 31일엔 취재진과 취재원이 함께 인왕산 야등(야간 등산)도 했다. 8년 만에 운동을 시작한 30대 기자는 숨이 가빴다.
#몸 움직이면 뇌 자극해 회복력 강화
“그냥 물만 마시고 가도 돼요.”
여기 ‘몸꽝’들이 있다. 우울증, 부도 위기, 따돌림 등 어딘가 크게 상처 난 중년 남자들이다. 이들이 운동을 시작한다. 남자 수중발레다. 수영으로, 달리기로 함께 흘린 땀만큼 친밀감이 쌓인다. 세계 대회 우승으로 각자의 상처를 치유한다. 그런데 이 영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엔 중요한 장면이 있다. 수중에서 치열하게 휘젓는 손과 팔과 다리다. 증진과 개선·치유는 공짜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규성(35)씨가 새해에 운동을 결심한 것도 그래서다. 그는 넥타이를 휘날리며 따릉이 페달을 힘차게 밟고 있었다. 이씨는 “퇴근길 운동을 결심한 건 업무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옆을 빠르게 달리다 멈춘 이상하(43)씨도 “이렇게 뛰고 나면 행복감이 몰려온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주강 가천대 길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운동을 하면 뇌에 엔도르핀과 같은 행복호르몬이 분비돼 기분이 좋아지면서 계속 운동을 하고 싶어진다”며 “다만 무리하면 부상 위험이 높아져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운동량 측정 피트니스 앱인 스트라바(Strava)에 따르면 새해 운동을 결심한 이들은 대개 19일 만에 운동을 포기한다. 17일째인 기자들은 이 위기를 넘길 수 있을까.
이에 대해 하 센터장은 “금주도, 운동도 혼자보다는 병원과 상담사·지인 등 주변의 도움을 받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조 교수도 “운동을 하려면 먼저 자신의 생활 패턴과 몸 상태를 점검한 뒤 괜찮다고 판단되면 ‘헬스클럽에 물이라도 마시러 가자’는 마음으로 일단 부딪혀 보는 게 좋다”고 했다.
지난달 31일 인왕산. 기자가 함께 간 운린이들에게 물었다. “올해 결심은요?” 그러자 미리 입을 맞춘 듯 모두가 함께 외쳤다. “건강, 건강, 건강!”
김홍준·신수민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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