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낭만 착각 혼술부터 끊어라…운동? 날짜 계산 말고 일단 뛰어라"

김홍준.신수민 2024. 2. 3. 00: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새해 작심삼일 그만, 금주·운동할 결심 체험기
새해 금주와 운동을 결심한 기자와 취재원들이 지난달 31일 함께 인왕산 야등(야간 등산)에 나섰다.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올해 목표는 건강”이라고 외쳤다. 김상선 기자
‘어쩐지’ 단것이 자꾸 입에 당겼다.

오늘로 금주 17일째. 의사는 “아시겠지만 단것은 몸에 좋지 않다. 다만 술을 대체할 수 있다면 금주 초기엔 권할 만하다”고 말했다. 운동 17일째. 트레이너는 “운동하고 단 걸 안 먹는 게 최선이지만, 운동하고 먹는 걸 차선으로 선택할 수는 있다”고 했다. 조현 순천향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단맛을 원하는 건 삶의 패턴이 바뀌면서 생기는 정신적·신체적 공백을 메우려는 보상 심리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어쩐지’ 단맛에 끌렸다는 것이다.

2024년 새해. 중앙SUNDAY 취재진은 ‘작심’을 했다. 50대 기자는 30년 넘게 마신 술을 끊었고, 30대 기자는 8년 넘게 주저했던 운동을 시작했다. 큰 이유는 없다. 어쩌면 누군가 하니까 따라 하는 거고, 뭐라도 안 하면 불안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한국리서치에 따르면 2024년 새해 결심 1위는 ‘건강 유지와 회복’. 지난 3년간 줄곧 선두다. 이를 위한 금주와 금연·운동은 새해 결심의 구체적 레퍼토리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안다. ‘작심삼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는 걸. 작심삼일은 꼭 3일이 아니라 단기간에 목표가 흐지부지됨을 일컫는다. 그렇다면 이번엔 과연?

#국민 12% 금주 필요한 위험한 단계

남자는 맥주잔을 한동안 쳐다봤다. 그걸 집어 입으로 가져오기까진 5초. 번뇌와 망설임이 난무했다. 금주 모임에도 나가며 술을 끊으려는 노력은 맥주 거품처럼 사라졌다. 술이 연거푸 그의 목을 타고 넘어갔다. 영화 ‘더 웨이 백’의 한 장면이다. 모교 농구팀을 재건하려는 잭(벤 에플렉)의 열망과 알코올 의존증이 공존하긴 결코 쉽지 않았다.
영화 '더 웨이 백(2020)'의 한 장면. 잭 커닝험(오른쪽, 벤 애플랙 연기)은 소아암으로 아들을 일찍 잃고 심한 알코올 의존증을 겪으며 일용직을 전전한다. 전도 유망했던 과거에 힘입어 모교 농구를 재건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감독직을 맡는다. 금주 모임에도 나가는 등 삶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듯했다. 하지만 친구의 아들 역시 소아암으로 위기를 겪는 모습이 '기폭제'가 되면서 다시 폭음을 시작한다. 기사에 나온 '맥주잔까지 5초'는 바로 이 폭음 장면을 묘사했다. 잭은 감독직에서 해임된다. 그 와중에 팀은 승승장구. 잭은 집에서 가만히 TV로 지켜볼 뿐이다. [중앙 포토]

“아, (잭처럼) 저도 그랬죠.” 일산 허씨의 말이다. 올해 예순인 그는 13년째 술을 ‘끊고’ 있다. 세계적인 단주 모임 ‘알코홀릭스 어나니머스(익명의 알코올중독자들)’ 회원이기도 하다. 하루에 소주 7~8병을 마셨다는 그는 “나도 소주 반병에서 시작했는데 괜찮다, 괜찮다 합리화하다 보니 하루 8병까지 이른 것”이라고 했다. 누구라도 자신처럼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는 그러면서 “나도 11개월 끊었다 다시 마시게 된 날, 그동안 못 마신 걸 영화 속 잭처럼 한없이 들이켜고 말았다”고 회고했다.

하종은 고양시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장은 “우리나라 인구의 12% 정도는 금주가 필요한 알코올 남용 이상의 단계”라며 “자신이 위험한 상태임을 인정하지 않고 어떤 행위에 대해 보상받으려는 심리로 음주하기 때문에 금주가 어려운 것”이라고 진단했다.

허씨를 살린 건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다는 두려움이었다. 이젠 끝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이미 알코올은 간장과 췌장을 허물어뜨렸고 당뇨를 불렀다. 몸도 바싹 말랐다. 파블로 피카소의 판화 ‘검소한 식사(1904)’에도 이런 모습이 담겨 있다. 작품 속 남자는 허씨처럼 장기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듯 몸이 깡마르다. 하 센터장은 “알코올 의존증이 장기화해 장기 손상까지 이어지면 몸이 영양소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다가 근육까지 소실돼 야위게 된다”고 설명했다. ‘알코올 의존’은 ‘알코올 남용’보다 심각한 상태를 일컫는다.
파블로 피카소는 그가 가장 불우했던 '청색 시기(Blue Period, 1901~1904)'에 이 '검소한 식사(The Frugal Meal, 1904)'를 판화로 만들었다. 스페인 티센-보르네미사 박물관 측은 ″지독한 궁핍과 알코올의존증의 표현'이라 평하고 있다. [사진=티센-보르네미사 박물관]

고모(51·서울 서초구)씨는 금주 3개월째다. 매일 소주 1병씩 마셨던 그는 “술을 마신 다음날이면 눈이 침침했다”고 했다. 동국대병원 안과 의료진이 “알코올로 췌장 기능이 떨어져 엽산 흡수가 안 되기 때문에 시력 저하가 올 수 있다”고 경고하자 결국 그는 금주를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회사원 조모(53·경기도 고양시)씨도 새해 들어 금주에 돌입했다. 매일 소주 1병과 맥주 2병을 세트로 마셨던 그였다. 하지만 그는 “사흘 정도는 잘 참았는데 그 뒤로는 영 어렵더라. 자신이 없다”고 토로했다. “친구, 회사 동료, 거래처와 모두 단절되는 느낌”이라고도 했다. 오죽하면 『금주 다이어리』의 저자 클레어 풀리도 “난 공식적으로 버림받았다”고 썼겠는가. 그는 이렇게 술회했다. “처음엔 축하할 일이 있을 때 술을 마신다. 그러다 긴장을 풀기 위해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그런 뒤엔 위안을 위해, 두려움과 초조함 때문에 마신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어떤 감정이든 술로 풀게 된다.”

고씨는 회사 업무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조씨는 코로나 팬데믹 때 찾아온 우울감 탓에 술을 찾게 됐다고 고백했다. 일산 허씨의 폭주는 세상에 대한 막연한 분노가 밀고 끌었다. 이에 대해 하 센터장은 “저마다의 이유로, ‘저 사람도 마신다’ ‘안 마시면 뭔가 허전해’ 등으로 합리화하면서 습관적으로 마시다 보면 알코올에 대한 내성이 쌓여 음주량은 점점 늘고 필름이 끊기는 ‘블랙아웃’도 빈번하게 나타나면서 위험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반주·혼술과 아침 해장술이 당긴다면 알코올 의존증 초기 증상으로, 끊고 싶어도 끊기가 매우 힘들어진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금주가 종종 작심삼일에 그치고 마는 건 ‘도파민’이란 신경전달물질 때문이다. 도파민은 쾌락과 행복감을 가져다준다. 그런데 알코올은 도파민 분비를 위한 ‘가성비’가 뛰어나다. 눈만 돌리면 살 수 있다. 게다가 저렴하다. 효과는 즉각적이다. 사회관계의 윤활유가 되니 너도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 센터장은 “바로 이 대목이 알코올의 함정”이라며 “연결 고리를 잘라야 작심삼일을 넘을 수 있다”고 짚었다. 그렇다면 알코올을 대체할 만한 건 뭐가 있을까.

강현종(55·경기도 파주시)씨는 25개월째 금주 중이다. 그는 “운동을 잘하려고 끊었고, 끊다 보니 운동에 더 집중하게 됐다”며 “이젠 술 생각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흡연은 35년째 계속하고 있다. 강씨는 “술을 끊은 것처럼 담배도 언젠간 끊고 싶다”고 했다. 조 교수는 “흡연을 멈추지 못하는 것 또한 도파민 때문”이라며 “반주나 혼술 등 습관적 음주부터 없애 금주에 이르는 것처럼 흡연도 ‘괜히 피는 것 같다’는 상황부터 정리하고 운동 등 ‘보상’이 될 만한 취미 활동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금주와 금연을 위해서는 상담자와 '라포(rapport·유대감 혹은 친밀감)'를 쌓아 쌓는 것도 도움이 된다. 고양시 덕양구 보건소 금연클리닉에서는 최근 39년간 흡연을 해온 전모(57)씨가 담배를 스스로 끊도록 상담했다. 보건소 관계자는 "직업이 성우라 목소리를 지켜야 한다는 본인의 의지가 있었지만, 사실 외로운 싸움이라 상담과 조언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밝혔다.

50대 기자는 일단 혼술을 없앴다. 보상용으로 퇴근 직후 목공을 시작했다. 조 교수의 말처럼 금주와 금연은 결국 운동으로 만날 가능성이 크다. 지난달 31일엔 취재진과 취재원이 함께 인왕산 야등(야간 등산)도 했다. 8년 만에 운동을 시작한 30대 기자는 숨이 가빴다.

#몸 움직이면 뇌 자극해 회복력 강화

“그냥 물만 마시고 가도 돼요.”

센터장의 말을 믿기로 했다. 30대 기자의 집에서 헬스클럽까진 걸어서 3분. 1월은 추워서, 2월은 짧고 휴일이 많아서라는 핑계는 집어치웠다. 그렇게 17일이 지났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운동이 작심삼일이 되는 건 기존 습관에 따라 형성된 뇌 회로의 변화가 따라오지 않기 때문”이라며 “반복 행동이 어느 정도 지속돼야 ‘습관’으로 굳어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뇌과학계 일각에선 ‘어느 정도’의 시간을 열흘로 보기도 한다. 기자처럼 근육통이 생기고 단것이 당기기도 하지만 운동의 효과는 생각보다 크다.
영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2018)' 포스터. 칸 영화제에 초청된 작품이다. 우울증을 겪는 베르트랑(마티외 아말리크)를 중심으로 이른바 '루저' 중년 남성들이 운동을 통해 어떻게 각자의 상처를 치유하는지를 보여준다. 코미디지만 잔잔하면서도 통쾌하다. 영화의 시작은 물 안에서 치열하게 휘젓는 손과 팔, 다리를 보여준다. 이 포스터도 마찬가지인데, 상처는 쉽게 치유할 수 없고 보이지는 않아도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중앙 포토]

여기 ‘몸꽝’들이 있다. 우울증, 부도 위기, 따돌림 등 어딘가 크게 상처 난 중년 남자들이다. 이들이 운동을 시작한다. 남자 수중발레다. 수영으로, 달리기로 함께 흘린 땀만큼 친밀감이 쌓인다. 세계 대회 우승으로 각자의 상처를 치유한다. 그런데 이 영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엔 중요한 장면이 있다. 수중에서 치열하게 휘젓는 손과 팔과 다리다. 증진과 개선·치유는 공짜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잠수교. 운동 동호인들의 물결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새해를 맞아 ‘달리기’를 작심한 김주현(44)씨와 500m를 덩달아 같이 달렸다. 아이가 셋인 김씨는 “주변에 아픈 사람도 많았고 사실 나도 아팠다”며 “그런데 운동을 하니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 들고 고통도 줄어들더라”고 말했다. 권 교수는 “신체 각 부위는 뇌에 연결돼 있는데, 신체가 움직이면 뇌에 자극을 자꾸 줘서 뇌 신경세포가 활성화 되고 피질이 두꺼워져서 회복 탄력성이 증가해 스트레스 같은 타격에도 회복이 빨라지게 된다”며 “특히 운동을 하면 뇌 신경세포를 생성시키는 뇌유래신경영양인자(BDNF)가 분비되면서 뇌가 더 튼튼해지는 효과도 입증됐다”고 말했다.
에두아르 마네(프랑스, 1832~1883)의 '블로뉴에서의 크로켓(1871).' 인상주의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마네는 노르망디 해안에서 크로켓을 통해 유대감을 형성하는 모습을 그렸다. 앞의 밤색 바지를 입고 있는 이가 모네의 양아들이고 그 옆 노란 드레스 차림의 여성은 당시 젊은 작가 진 곤잘레스다. [중앙 포토]

이규성(35)씨가 새해에 운동을 결심한 것도 그래서다. 그는 넥타이를 휘날리며 따릉이 페달을 힘차게 밟고 있었다. 이씨는 “퇴근길 운동을 결심한 건 업무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옆을 빠르게 달리다 멈춘 이상하(43)씨도 “이렇게 뛰고 나면 행복감이 몰려온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날 기자가 만난 ‘운린이(운동 초보)’ 15명의 새해 운동 결심 이유는 연령별로 각각 달랐다. 10~20대는 ‘체력 증진과 다이어트’, 30~40대는 ‘업무·육아 스트레스 해소와 우울감 탈피’, 50대 이상은 ‘건강’이 1순위였다. 새해 들어 자전거 타기를 결심한 김라희(18)씨는 “공부에 뒷심을 내려고 운동을 시작했는데, 군것질이 자꾸 당겨 식단 관리는 작심일일 중”이라며 웃었다. 1년 만에 자전거 동호회에 복귀했다는 전경진(69)씨도 “지난해는 아파서 쉬었는데 더 늦기 전에 다시 시작해야겠다 싶었다”며 “올해 목표는 전국 순회와 해외 탐방”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지난 11월 17일 일산 더클라임에서 처음 클라이밍을 접하는 클린이들이 강사의 설명에 집중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이주강 가천대 길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운동을 하면 뇌에 엔도르핀과 같은 행복호르몬이 분비돼 기분이 좋아지면서 계속 운동을 하고 싶어진다”며 “다만 무리하면 부상 위험이 높아져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운동량 측정 피트니스 앱인 스트라바(Strava)에 따르면 새해 운동을 결심한 이들은 대개 19일 만에 운동을 포기한다. 17일째인 기자들은 이 위기를 넘길 수 있을까.
지난 1월 31일 인왕산 야등(야간 등산) 나선 취재원과 취재진. '건강'을 올해 목표로 삼은 공통점을 안고 바위 구간을 오르고 있다. 김상선 기자

이에 대해 하 센터장은 “금주도, 운동도 혼자보다는 병원과 상담사·지인 등 주변의 도움을 받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조 교수도 “운동을 하려면 먼저 자신의 생활 패턴과 몸 상태를 점검한 뒤 괜찮다고 판단되면 ‘헬스클럽에 물이라도 마시러 가자’는 마음으로 일단 부딪혀 보는 게 좋다”고 했다.

지난달 31일 인왕산. 기자가 함께 간 운린이들에게 물었다. “올해 결심은요?” 그러자 미리 입을 맞춘 듯 모두가 함께 외쳤다. “건강, 건강, 건강!”

김홍준·신수민 기자 rimrim@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