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참전용사와 붉은 동백 이야기
전쟁터 붉은 피와 무관치 않아
참전용사 명예수당 월 42만원
보은이라고 하기엔 너무 빈약
부산의 어머니 마당에는 두 그루 동백나무가 있다. 붉은 동백과 흰동백이다. 돌아가신 지 10년이 다 된 아버지께서 요양원으로 가기 전에 무슨 일인지 붉은 동백을 잘라버렸다. 그런데 그 동백이 다시 줄기를 키우고 가지를 뻗어 해마다 붉은 꽃을 달았다. 올해도 드디어 첫 꽃을 터뜨렸다. 꽃망울을 단단히 쥐고 있던 동백이 붉고 정연한 꽃을 피운 것이다. 겉 꽃잎은 펼쳐지고 나머지 꽃잎들은 여전히 앙다문 그 붉은 동백의 결연한 모습이 감동적이다.
홍순해 지회장님은 낙동강 방어선의 가장 중요한 전술적 요충지였다는 다부동 작전에 참여했던 전쟁담을 들려주었다. 40일간의 전투에서 실탄을 나르던 군인들이 하루에 50명씩 죽음을 맞았다고 했다. 홍성태 부회장님은 중공군에게 포위되었던 북한의 덕천에서의 기억도 꺼내주었다. 중공군은 꽹과리를 치고 나팔을 불며 방망이를 들고 내려오는 인해전술을 썼고 그들은 평양에서 수색으로 또한 수원까지 밀고 내려왔다고 했다.
작년 6월 말 기준으로 6·25 참전용사의 생존자 수는 4만6000명이다. 그러나 해마다 1만명 이상이 세상을 떠나고 있다. 2000년 초에 아버지가 처음으로 참전명예수당을 매월 5만원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때부터 더디게 조금씩 올라서 올해부터는 월 42만원의 명예수당을 받게 된다고 한다. “총알이 나를 피하더라니까, 그래서 살 수 있었지. 조상님이 돌봐 주셨던 거야”라고 하시는 홍성태 부회장님이 받기엔 너무 적은 수당이 아닌가.
작년 6월에 참전용사가 마트에서 반찬거리를 절도하다 잡힌 사연을 접하고 여러 곳에서 온정을 보냈다는 기사를 읽은 적 있다. 그러나 개인적인 온정은 괜한 부채감이 들기 마련이고, 또 비정기적이어서 국가에서 제대로 지원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싶다. 기초 생활비로도 턱없이 부족한 월 42만원이라는 수당이 참전에 대한 보은이라기엔 너무도 빈약하다.
아버지께 듣던 참전 이야기를 두 어르신을 통해 들으며 나는 내내 아버지 모습을 겹쳤다. 더구나 내게 행운의 선물이라며 2달러짜리 지폐도 건네주었는데, 모처럼 아버지께 받은 선물인 듯이 노트에 정성스럽게 끼워서 돌아왔다. 마당에 흰동백은 아직 꽃봉오리만 굳게 다물고 있지만 붉은 꽃은 점차 개화의 수를 늘려가며 그 옛날 전쟁터에서 보았던 붉은 피가 저렇게 피고 또 흘렀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아버지가 붉은 동백을 기어코 잘라버렸던 이유도 전쟁 체험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천수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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