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수진의시네마포커스] 신자유주의를 향한 고별사

2024. 2. 2.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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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한국사회에는 '시민'이라는 개념을 둘러싼 작은 논쟁이 벌어졌다.

대한민국 한 귀퉁이에서 '시민'의 개념을 둘러싼 소동이 있기 오래전부터, 근대국가의 주권자인 시민의 권리에 대해 일관된 주장을 펼쳐 온 감독이 있기에 그를 소개하려 한다.

과연 이러한 시스템에 균열을 내는 것이 가능할까?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주인공은 인간을 기계화하는 시스템에 항거하는 시민 권리 선언을 작성하지만 이것은 그가 죽은 후에야 적절치 않은 자리에서 낭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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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한국사회에는 ‘시민’이라는 개념을 둘러싼 작은 논쟁이 벌어졌다. 대한민국 한 귀퉁이에서 ‘시민’의 개념을 둘러싼 소동이 있기 오래전부터, 근대국가의 주권자인 시민의 권리에 대해 일관된 주장을 펼쳐 온 감독이 있기에 그를 소개하려 한다. 올해 88세가 된 영국의 거장 켄 로치 얘기다. 1967년 데뷔 후 26편의 장편을 만드는 동안 그의 일관된 관심사는 인간과 노동을 소외시키는 사회 시스템에 관한 것이었다. 최근 완성된 영국 동북부 3부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 ‘미안해요 리키’(2019), ‘나의 올드 오크’(2023)는 이러한 켄 로치 세계관의 응축물이라 할 것이다.
맹수진 영화평론가
그의 영화에 악한은 등장하지 않는다. 가난하지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사는 평범한 노동자, 시민들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일확천금을 꿈꾸지 않는다. 적게 벌더라도 사랑하는 가족, 이웃들과 따뜻한 밥 한 끼, 온정을 나눌 수 있는 일상을 꿈꿀 뿐이다. 그런데 이게 불가능하다. 최선을 다해도 삶은 도통 나아질 기미가 없고 열심히 일할수록 오히려 수렁에 빠져드는 악순환. 그의 영화에 유일한 악한이 있다면 그것은 시스템 자체이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유지 권력은 유혹적이며 비가시적이다. 시스템이 스스로를 감춘 곳에서 노동자는 자기 자신을 책망하고 착취하며 소진한다. ‘미안해요 리키’의 주인공은 ‘자유의지(!)’로 발가벗겨진다. 과연 이러한 시스템에 균열을 내는 것이 가능할까?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주인공은 인간을 기계화하는 시스템에 항거하는 시민 권리 선언을 작성하지만 이것은 그가 죽은 후에야 적절치 않은 자리에서 낭독된다. 이제 영국 동북부 3부작의 피날레이자 감독 스스로 자신의 은퇴작이라 선언한 ‘나의 올드 오크’에서 감독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고통받는 두 공동체(영국 폐탄광촌 주민들과 시리아 난민들)를 조우시킨다. 약자가 약자를 혐오하는 시간을 보낸 뒤에 감독은 두 공동체가 서로를 환대하는 정치적 상상력을 펼쳐 보이는데 지금까지 리얼리즘을 고집해 온 감독의 영화를 고려할 때 이러한 결말은 기적이나 판타지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은퇴를 앞둔 노감독의 입장에서 현재를 극복할 유일한 방안은 무너진 공동체의 복원과 타인에 대한 환대, 연대뿐이라는 점에서 이 결말은 세상을 향한 마지막 절절한 호소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맹수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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