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 당원에 찍히면 못 살아 남아”…‘하기 싫은 정치’ 내몰리는 정치인들[중도, 그들은 누구인가]

심진용·정대연 기자 2024. 2. 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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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하고 싶은 정치, 하기 싫은 정치
‘이전투구’ 현실에 좌절한 정치인들
한 시민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을 걸어가고 있다. 360도 카메라로 촬영해 국회의사당이 왜곡된 모습으로 보인다. 문재원 기자
여론조사·투표에 영향력
당 경선 의식하는 의원들
그들이 좋아할 ‘센 얘기’

20대 국회(2016~2020년)에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을 지낸 A씨는 여의도에서 보낸 4년을 “험난했다”라는 말로 요약했다. 당이 강성 지지층과 팬덤정치에 휘둘리는 모습을 지켜본 소회이기도 했다. 경향신문 인터뷰에 응한 전현직 의원들은 ‘멀쩡했던’ 사람이 정치에 입문한 뒤 극단적 언행에 앞장서거나, 강성 지지층의 극단적 행태에 침묵하게 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대다수 의원은 강성 지지층에 당이 휘둘리는 현상에 우려를 나타내면서도 공개적으론 침묵했다. 일부 의원들의 이의나 문제 제기는 무시되거나 공격당했다. A씨는 “특히 선거가 다가올수록 의원이 소신 있는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다”면서 “소위 말하는 강성 당원들에게 찍히면 경선에서 살아남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A씨는 이런 경험을 거치면서 중도층의 중요성을 새삼 절감했다고 했다. 그는 “확증편향에 빠지지 않는 사람을 중도라고 생각한다”면서 “모든 정책은 장단점이 있게 마련이고, 양면성이 있는데 그걸 제대로 이해하고 상황에 맞게 판단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많은 정치인이 A씨처럼 중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반대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자극적이고 과격한 언행일수록 언론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주목을 받고 강성 당원들의 지지가 모이기 때문이다. A씨는 “21대 국회 역시 비슷해 보인다”면서 “사회적·경제적으로 식견이나 통찰이 대단한 의원도 있지만 막상 그런 분들이 역할을 할 공간이 없다”고 말했다.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는 정당
소신 발언 찍히거나 무시
정당 간 감정·이념 대결화
확증편향 빠지지 않는
중도층 필요성 절감

A씨 말처럼 오는 5월 말 임기를 마치는 21대 국회는 여야 가릴 것 없이 각 당이 강성 지지층과 팬덤정치로 몸살을 앓았다. 물론 정치의 본질은 경쟁과 투쟁이며, 상대 정당 혹은 정치세력과의 경쟁뿐 아니라 정당 내부 주류와 비주류, 당권파와 비당권파 사이의 경쟁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경쟁과 투쟁이 격화되고 추구하는 이념과 지향의 차이가 벌어지면 당이 쪼개질 수도 있다.

문제는 경쟁과 갈등이 대중의 눈높이나 선호와 동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시끄러운 소수’라고 불리는 강성 지지층의 선호와 이해관계가 중심이다. 적극적인 참여와 강한 소속감을 바탕으로 영향력을 획득한 강성 지지층은 협소하게 규정한 ‘우리 편’이나 그들만의 ‘정의’에서 벗어나 이견을 제시하고 비판하는 사람은 누구든 퇴출 혹은 절멸시켜야 할 대상으로 삼는다.

정당 간 경쟁도 더 치열해진다. 대중의 상식에서 벗어날지라도 ‘센’ 이야기를 해야 강성 지지층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여야 정당 간 타협과 협치가 작동할 공간은 사라지고, 정책 경쟁보다는 상대의 약점만 파고드는 감정 대결, 이념 대결로 흐를 공산이 크다.

22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우리 당 지지자들은 우리 당 강령보다 대장동 사건이나 이재명 민주당 대표 욕설 같은 것을 더 잘 알 것”이라면서 “민주당 지지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당원이나 지지자들도 민주당의 강령이나 공약보다 김건희 여사가 연루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이나 윤석열 대통령과 관련된 뒷이야기를 더 잘 알고 관심이 있을 것이란 얘기다. 민주당 전직 의원 B씨는 “좌우를 막론하고 여당이든 야당이든 강성 지지자 입맛만 맞추면서 상대를 공격하는 걸 우선시하고 그렇게 싸움이 벌어지면 정당 노선을 정립하고 정책을 개발할 시간은 없어진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극단적 발언’이 ‘합리적 선택’이 되는 이유

민주당 초선 C의원도 “아무리 생각해도 비상식적인 발언인데 성향 강한 분들한테는 오히려 박수받고 주가가 올라가는 게 신경 쓰일 때가 있더라”고 했다. 그는 “의원 생활 시작하면서 그런 데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나도 모르게 그런 데 눈길이 가는 걸 느끼면서 마음이 복잡했다”고 말했다.

강성 지지층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건 국회 입성의 첫 관문인 당내 경선에서 이들의 영향력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여론조사나 투표 참여율이 높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민주당은 4월 총선을 앞두고 권리당원 여론 50%, 국민 선거인단 여론 50%를 반영하는 경선을 기반으로 지역구 후보자를 뽑을 예정이다. 국민의힘은 당원 50%와 일반 여론조사 50%, 당원 20%와 일반 여론조사 80%를 지역에 따라 달리 적용한다. 과격하고 극단적인 언행으로 비판을 받더라도 일부 강성 지지층의 마음에 들 수 있다면 경선에선 득이 되므로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정치인의 극단적 언행은 일반 시민의 정치에 대한 냉소와 무관심을 키움으로써 강성 지지층의 영향력을 더욱 키우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진다.

강성 지지층의 영향력이 커진 배경에는 여야의 극단적 대결과 편 가르기식 정치, 편향적 정보를 반복적으로 수용한 유권자들의 확증편향 현상 등이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특히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변곡점으로 꼽힌다.

김 의원은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노 전 대통령을 우리가 지키지 못했다’는 트라우마가 있다면, 우리 당 지지자들은 박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상처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당 지지자들은 탄핵까지 갈 정도는 아니었는데 박 전 대통령을 못 지켰다고 생각한다”면서 “양쪽 모두 그런 트라우마가 워낙 크다 보니 내부에서 합리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적으로 몰린다”고 설명했다. 한국 사회에서 중도가 종종 ‘기회주의자’로 비판받는 현상과도 맥락이 닿아 있는 이야기다.

B씨는 민주당이 탄핵 이후 갈등을 치유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집권한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이 입법연대의 틀로 보수세력과의 협력을 추구하는 대신 적폐청산의 길을 택했고 그 도구로 선택한 검찰의 ‘폭주’를 제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양 진영의 트라우마가 치유되기를 기다리는 것 말고 현재로선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정치권에서 다양한 제도적 해법이 거론되지만 역기능과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는 데다 상처가 아물려면 ‘시간이 약’이길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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