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중독에 빠지나… 회복의 여정 탐구

정진수 2024. 2. 2.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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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의 범위는 다양하고 그 역사는 실로 오래됐다.

흔히 중독이라고 하면 최근 '좀비 논란'을 일으키는 펜타닐과 같은 마약류부터 떠올리지만, 술, 담배, 커피 같은 기호품부터 한번 시작하면 빠져나오기 힘든 게임, 도박, 스마트폰 중독까지, 중독에 빠지는 유형은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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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의 역사/칼 에릭 피셔 지음/조행복 옮김/열린책들/3만원

중독의 범위는 다양하고 그 역사는 실로 오래됐다. 흔히 중독이라고 하면 최근 ‘좀비 논란’을 일으키는 펜타닐과 같은 마약류부터 떠올리지만, 술, 담배, 커피 같은 기호품부터 한번 시작하면 빠져나오기 힘든 게임, 도박, 스마트폰 중독까지, 중독에 빠지는 유형은 다양하다.

왜 인간은 특정 물질이나 행위에 중독될까. 중독의 본질은 무엇이고 그 대처법은 무엇일까.
칼 에릭 피셔 지음/조행복 옮김/열린책들/3만원
미국 컬럼비아대 중독 전문 정신과 교수 겸 의사인 저자는 ‘중독의 역사’를 통해 중독이라는 현상을 의학, 과학, 문학, 예술, 종교, 철학, 사회학 분야를 망라하며 역사적으로 추적한다.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가 중국, 인도, 그리고 유럽의 중세와 근대를 거치며 중독이라는 개념이 형성되는 과정을 세계사적으로 접근한 저자는 물질 남용이 심각해진 현대에 이르러서는 그 개념이 변화하는 과정도 짚어본다. 중독을 질병으로 규정하며 마련된 대응책은 주로 근대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형성됐기에 근현대의 이야기는 미국에 집중됐다.

아울러 저자는 ‘정신과 의사’인 자신도 피해가지 못한 알코올·약물 중독의 경험과 함께 회복에 이르는 과정을 솔직하고, 생생하게 들려준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중독에 대한 대응책도 현실적으로 고민한다.

중독에 대한 대응은 △처벌과 강제로 억제해야 한다는 금지론적 접근법 △강박 충동에 의한 것이므로 의학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치료적 접근법 △두뇌의 기능 이상에서 비롯하므로 생물학적으로 치료해야 한다는 환원론적 접근법 △치료보다는 연대를 통한 정신력 고양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서로 돕기 접근법으로 나뉜다.

각각의 접근법마다 한계는 있다. 금지론적·환원론적 접근법은 인종주의와 계급적 편견으로 귀결돼 열등한 하층 계급, 특정 인종과 젠더에 대한 혐오를 불러일으킨 측면이 있다. 반면 치료적 접근법은 ‘좋은 치료약’과 ‘나쁜 중독약’이라는 이분법으로 오히려 중독 문제를 심화시키는 치료약을 파는 제약 회사 배만 불리는 결과만 낳기도 했다.

저자는 정신질환도 인간이 가진 다양한 스펙트럼 위에서 바라보는 상황에 이른 만큼, 중독과 싸워 이겨야 한다는 생각보다 삶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며 문제를 겪는 사람들을 실질적으로 도울 길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적절한 규제와 범죄 연루 시 단속과 처벌 집행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가 아니다. 중독에서 회복이 한 개인의 과업이 아니라, 공동체 경험으로 쌓여가야 실질적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중독을 경험해 본 저자는 말한다. “중독은 몹시 평범하다. 삶의 즐거움과 고통을 느끼며 살아가는 방법이고,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인간 운명의 한 가지 표현일 뿐이다. (중략) 우리는 중독을 끝내지 못할 것이다. 중독과 함께 지낼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우리의 본성에 맞서 싸우는 전쟁은 부질없는 짓이기 때문이다.”(385쪽)

정진수 기자 je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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