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논평] 일본은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를 보존하라 - 정종훈 교수
일본의 군마현이 '군마숲 공원'에 세워진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 희생자 추도비'를 금주 월요일부터 철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추도비는 2004년 군마현과 일본 시민단체들, 재일교포들이 함께 세운 것으로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라는 글자가 일본어, 한국어, 영어로 전면에 새겨져 있습니다.
2014년 군마현은 추도비를 건립한 단체가 추모행사 중 '조선인 강제 연행'이라는 정치적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추도비 설치 연장을 불허했습니다. 시민사회는 즉시 소송해서 1심에서 이겼지만, 2021년 도쿄고등재판소가 판결을 뒤집었고, 2022년 일본 최고재판소가 2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그 결과로 군마현이 철거를 강행했다고 합니다.
일본의 시민사회는 "추도비의 철거가 강제 동원의 역사를 부정하겠다는 것이라서 말이 안 된다."고 반발했습니다. 일본 사민당의 핫토리 간사장은 "한국과 교류하려면 신뢰관계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데, 역사적 사실을 담은 추도비를 철거하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다."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아무 대처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한일관계에 불똥이 튈까봐서 오히려 전전긍긍하는 모습입니다. 얼마 전 우리 대법원이 일본의 전범(戰犯) 기업들에 대해서 배상하라고 판결했을 때, "극히 유감스럽고,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대응한 일본 정부와는 매우 대조적입니다.
1995년 일본 무라야마 총리는 2차 세계대전 종전 50년을 맞이하는 날,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그는 일본이 과거에 국가 정책을 그르치고 전쟁의 길로 나아가서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렸고,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여러 국가에 대해 큰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미래에 잘못이 없도록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통절한 반성의 뜻과 함께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밝힌다고 했습니다. 나아가 이 역사로 인한 모든 희생자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바친다고 했습니다. 무라야마 총리의 담화는 늦은 감이 없지 않았지만, 일본의 현직 총리가 식민지 지배를 사죄한 최초의 사례로서 의미가 있었습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일본 오부치 총리는 한·일 양국이 21세기의 확고한 선린 우호협력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 양국이 과거를 직시하고, 상호 이해와 신뢰에 기초한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 아래 공동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이때 오부치 총리는 일본이 식민지 지배로써 한국 국민에게 큰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 사죄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오부치 총리의 역사인식 표명을 진지하게 수용하면서, 양국이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와 선린우호협력에 입각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시대적 요청이라고 응답했습니다.
지금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는 무라야마 총리의 담화나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일본군 성노예나 강제 징용자를 비롯한 침탈의 역사를 기억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역사를 부인하거나 왜곡하고 있습니다.
통절한 반성과 사죄는커녕 희생자들을 두 번 죽이고, 제3자 변제를 운운하며 피해자들을 우롱하고 있습니다. 선린 우호협력의 친구 관계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화해할 수 없는 영원한 원수 관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우호 협력의 희망찬 미래는 과거를 제대로 직시하면서 과오를 청산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진정한 회개 없이는 용서도 없고, 형제와 화해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도 없습니다. 이제라도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는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를 보존하고, 양국의 과거청산을 위해서 진정성 있게 나서야 합니다.
CBS 논평이었습니다.
[정종훈 교수 / 연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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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오요셉 기자 aletheia@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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