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는 ‘임명동의제’가 경영권 침해라는데···맞나요?[논란 따라잡기]
사장은 ‘인사권자’입니다. 박민 한국방송(KBS) 사장이 지난달 26일, KBS 뉴스·시사·교양 콘텐츠 제작의 핵심인 5대 국장을 임명했습니다. 그런데 난리가 났습니다. 언론노조가 KBS 정문 앞에서 큰소리로 기자회견을 하며 “공영 방송 역사의 거대한 퇴행”이라고까지 외쳤습니다. 인사권자가 인사를 했을 뿐인데, 왜 이런 논란이 생기는 걸까요?
핵심은 ‘임명 동의제’입니다. KBS는 단체협약, 편성규약 등을 통해 5대 국장을 사장이 임명할 때 조합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지 못하면 지명 철회하도록 하고 있어요. 박 사장 체제의 KBS는 이 절차를 거치지 않았습니다. 기자와 함께 논란을 따라가 봅시다.
KBS 사측은 뭐래?
- STEP 1
박민 KBS 사장은 지난해 11월 KBS 임시이사회에서부터 ‘임명 동의 절차를 따르면 방송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임명동의제 ‘패싱’ 가능성을 시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단협 보충 협약’을 통해서 임명 동의제를 폐지하겠다고 주장하기도 했어요.
KBS는 최재현 통합 뉴스룸 국장, 박진현 시사제작국장, 최성민 시사교양1국장, 이상헌 시사교양2국장, 이상호 라디오제작국장 등 보도·제작 주요 국장 5명을 지난 26일 임명했다고 밝혔습니다. KBS와 언론노조 KBS 본부의 단체협약, KBS 편성규약에는 5대 국장을 임명할 때 임명 동의를 받게 돼 있지만 이런 절차는 없었습니다.
KBS 사측은 임명 동의제가 ‘인사 규정’에 없다는 게 문제라고 봅니다. 방송법에 직원은 정관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사장이 임면한다고 돼 있는데, 이에 따라 정관을 만들고, 인사 규정을 만들었으니 인사 규정을 따라야 한다는 겁니다. 임명 동의제가 “사장의 인사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한다”고도 주장하고, 단체교섭이 ‘무효’라고도 주장합니다.
언론노조 KBS 본부는 또 뭐래?
- STEP 2
KBS 본부의 입장은 전혀 다릅니다. 노사 관계의 기본 약속인 ‘단체 협약’을 위반한 것이 자명하다고 주장해요. 방송법에 근거한 ‘편성규약’도 위반했다고 주장합니다.
지난해 11월 박 사장의 임명동의제 무력화 시사 이후 언론노조 KBS 본부는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어요. KBS 본부에 따르면 가처분은 각하됐지만, 결정문에는 “직위 등의 임명이 예정돼 있지 아니한 상황에서 본안 소송 이전에 시급하게 동의 없는 임명 동의 금지를 구할 필요성이 소명되지 않았다”라는 내용이 포함됐어요. 그런데 이 결정이 나온 뒤, 박 사장이 5대 국장 인사를 해버렸습니다.
‘인사권 침해’와 관련해 사측이 KBS 법무실을 통한 자문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KBS 본부는 “편성규약을 바꿀 때 법무실을 통해 공식적으로 임명 동의제가 문제가 없다는 태도를 확인했던 사측과 확연히 다르게 자문 결과를 전혀 내놓지 못하고 있다”라며 “사측이 정말 임명 동의제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면, ‘임명 동의제 무효 소송이라도 제기했어야 하지만 소송은 없이 편법과 꼼수로만 임명 동의제를 망가뜨리고 있다”라고 주장했어요.
‘임명동의제‘ KBS에만 있는 거야?
- STEP 3
KBS가 공영방송이라서 유독 특이한 제도를 두고 있는 걸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SBS, MBC, YTN, 연합뉴스, 경향신문을 비롯한 국내 많은 신문사, 방송사에서 이런 제도를 두고 있어요. 대부분 ‘공정방송·보도’와 ‘편집권 독립’ 등을 위한 조건에서 단협에 포함돼 있어요.
SBS 단체협약은 내용에 “보도·시사교양·편성 부문 책임자는 공정방송 실현을 위해 방송 공정성을 저해하는 부당한 청탁과 간섭, 압력으로부터 방송 독립을 지키고, 종사자의 제작 자율성을 보장해야 할 책임과 권한이 있으며, 회사가 그 권한을 보장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실천 방안 중 하나로 임명동의제를 방송사에서 처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연합뉴스 단체협약에도 “공정 보도의 실현이 조합원의 근로조건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편집권 독립과 공정 보도’ 부분에 편집총국장, 제작국장 임면 동의가 포함돼 있어요. 많은 매체에서 ’경영진‘의 과도한 입김으로부터 공정 보도를 보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절차로 국장 임명 동의제를 가지고 있던 셈입니다.
2012년 MBC 노동자들이 ‘공정방송’을 외치며 파업을 했을 때, 사측은 노조가 업무방해·재물손괴를 했다고 주장했는데요 서울남부지법(2014고합9), 서울고등법원(2014노1664), 대법원(2015도8190)은 일관되게 방송 공정성을 판단하려면 ‘제도적 장치가 잘 지켜졌냐’를 기준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서울남부지법은 “사용자가 이런 절차를 무시하고 인사권이나 경영권을 남용해 방송 제작, 편집, 송출 과정을 통제하려 한다면 단협을 위반해 근로조건을 저해하는 행위일 뿐 아니라 방송법 등 규정에서 정한 ‘공정방송’의 의무를 위반한 위법행위”라고 봤습니다.
‘인사권 침해‘라서 무효라며?
- STEP 4
사측의 핵심 주장 중 하나인 사장의 인사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해 무효라는 건 어떻게 봐야 할까요? 전문가들은 ‘인사권을 침해했는지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권두섭 민주노총법률원 변호사는 “경영권에 본질적 침해가 있다면 ’의무 교섭 사항‘이 아닐 수 있겠지만, 사측이 응해서 협약으로 체결이 되면 효력이 있다는 게 일관된 법원의 판단”이라고 말했어요. 또 “인사 규정은 취업규칙과 유사한 성격인데, 인사 규정에 없는 내용이 단체협약에 있다면 단체협약이 적용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방송법에는 KBS 이사회가 ‘부사장 임명 동의’를 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하지만 박 사장은 부사장 임명동의가 사장의 인사권 침해라고 주장한 적은 없어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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