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곤 前 ICC 당사국총회 의장 “성숙한 사회 위한 ‘대화의 룰’ 법원에서 시작해야” [2024 시대정신을 묻다]

유경민 2024. 2. 2.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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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는 창간 35주년을 맞아 정·관계와 경제·산업계, 시민사회, 문화체육계 등 각계 리더 102명에게 2024년의 △시대정신 △대한민국이 맞이할 가장 큰 위협과 도전 △이에 대한 해결책을 각각 물었다.

권 전 의장은 "우리나라는 가장 디베이트가 잘 돼야 하는 법원에서부터 디베이트가 잘 이뤄지고 있지 않다"며 "법원부터 말로 다투는 구두 변론을 활성화하고 기록을 투명하게 공개하면 성숙한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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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는 창간 35주년을 맞아 정·관계와 경제·산업계, 시민사회, 문화체육계 등 각계 리더 102명에게 2024년의 △시대정신 △대한민국이 맞이할 가장 큰 위협과 도전 △이에 대한 해결책을 각각 물었다. 대면·서면·전화 인터뷰를 통해 얻은 의견을 취합해 보니 A4용지 208쪽 분량에 3만6706개 단어가 담겼다. 본지 2월1일자 1, 10, 11면에 실린 기사와 별도로 각 오피니언 리더들의 의견을 소개한다.
 
대한민국 ‘최초’이자 ‘최장’ 유엔 국제재판관 출신인 권오곤 전 국제형사재판소(ICC) 당사국총회 의장. 2001년 한국을 떠나 구유고슬라비아국제형사재판소(ICTY) 재판관, ICC 당사국총회 의장으로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재판의 판결을 내려온 그는 올해의 시대정신으로 ‘성숙한 사회’를 꼽았다.

우리나라는 지금처럼 ‘잘’ 살아 본 적이 없다.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문화적 다양성을 갖춘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도 위상을 떨치고 있다. 권 전 의장은 해외에 나갈 때마다 우리나라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음을 실감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 발전이 앞으로도 지속 가능할 것이냐’는 난제가 남아있다. 북한의 위협, 빈부격차, 인구절벽, 기후변화 등 수많은 위기를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권오곤 전 국제형사재판소(ICC) 당사국총회 의장
권 전 의장은 대한민국이 지속가능한 발전을 꾀하려면 ‘대화의 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 의장은 “지금까지는 운도 따르고 주먹구구식으로 발전해왔다”면서 “양극화 시대엔 서로의 간극이 있을 때 대화를 통해 대처방안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디베이트(debate·논쟁)’를 통해 컨센서스(공동체 구성원들의 합의)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마주한 위기를 극복할 동력이자, 성숙한 사회를 만드는 단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아직 이렇게 대화하는 방식이 배어있지 않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권 전 의장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독재를 겪은 지 얼마 안 됐고, 당시엔 돌과 화염병을 던진 사람이 훈장을 받았다”며 “여전히 국회의원들부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머리에 띠를 두르고 ‘투쟁하라’고 소리부터 지른다”고 지적했다. 권 전 의장은 이러한 대화 방식을 ‘잘못 물려받은 유산’으로 정의했다. 국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나 각 학교의 학교폭력 대처에서도 이 같은 문제점이 드러난다고 봤다.

권 전 의장은 ‘법원’에서부터 제대로 된 디베이트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법원에서 원고와 피고가 말로 다투고, 양 측의 의견을 들은 재판부가 결론을 내는 것이 디베이트의 가장 좋은 예다. 디베이트는 법원 밖에서도 이어져야 한다. 기밀을 제외한 재판 과정의 모든 기록을 공개해 언론과 시민의 검증을 받는 방식을 통해서다. 이런 디베이트를 거쳐 나온 결론이야말로 공동체가 인정하는 권위를 갖는다. 권 전 의장은 “우리나라는 가장 디베이트가 잘 돼야 하는 법원에서부터 디베이트가 잘 이뤄지고 있지 않다”며 “법원부터 말로 다투는 구두 변론을 활성화하고 기록을 투명하게 공개하면 성숙한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고 제언했다.

유경민 기자 yook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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