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미국의 선택] '아랍계 최대 표밭' 미시간 가던 날…바이든, 이스라엘인 제재
이스라엘인 4명에 행정명령
강경론 고수하는 이에 경고
네타냐후 총리, 강력 반발
대선 경합주 꼽히는 미시간
무슬림 20여만명 밀집 거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에게 폭력을 행사한 이스라엘인을 제재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친이스라엘 정책으로 흔들리고 있는 아랍계 미국인의 표심을 잡고, 가자지구 사망자가 2만7000명을 넘어가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에 휴전 압박과 추가 폭력 사태를 방지하라는 외교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일(현지시간) 미국 정부는 서안지구에 거주하며 팔레스타인 민간인에게 폭력을 행사한 이스라엘인 정착민 4명을 제재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서안지구의 극단주의 정착민 폭력이 참을 수 없는 수준에 이르러 평화·안보, 안정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며 "이스라엘 정착민이 팔레스타인인을 강제 이주시키고 재산을 파괴했다"고 비판했다.
이번 행정명령은 조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해 12월 서안지구 극우주의자의 미국 비자를 거부하겠다고 밝힌 이후 처음 내려진 금융제재다. 제재 대상자는 폭력으로 팔레스타인 주민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이들을 사망하게 했으며, 차량과 건물에 불을 질러 현지에서 기소된 자로 전해졌다. 가해자 4명은 미국 내 자산이 동결되며 미국 입국은 물론이고 미국과 서비스 거래도 금지된다. 백악관은 발표에 앞서 이스라엘 정부에 행정명령 계획을 통보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직접 제재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성명에서 "유대 사마리아(서안의 이스라엘식 표현) 거주민 대부분은 법을 준수하는 시민이며, 많은 사람이 징집병이자 예비군으로서 이스라엘을 보호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면서 "이스라엘 당국은 법을 어기는 모든 이스라엘인을 제재하고 있으며 따라서 예외적 조치는 불필요하다"고 말했다.
베잘렐 스모트리흐 이스라엘 재무장관은 "'(유대인) 정착민의 폭력 행위'라는 주장은 이스라엘 적들이 선구적인 정착민과 이스라엘 국가 전체를 중상·모략하기 위해 퍼뜨리는 반유대주의적 거짓말"이라며 "바이든 행정부가 이 같은 행위에 협조하는 것은 매우 나쁘다"고 반발하기도 했다.
친이스라엘 정책을 펴온 바이든 대통령이 이례적 제재에 나선 것은 외교적으로 휴전을 압박하면서 올해 11월 대선에서 아랍계 미국인의 표심을 잡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특히 미국 내에서 아랍계 인구가 밀집한 미시간주를 방문하기 전 행정명령을 내린 점이 주목된다.
여론조사 플랫폼 와이즈보터에 따르면 미국 내 무슬림 인구는 약 345만명으로, 2020년 대선 때 이들 중 약 59%가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했다. 주 별로 보면 뉴욕주(72만명), 캘리포니아주(50만명), 일리노이주(47만명), 뉴저지주(32만명), 텍사스주(31만명)에 이어 미시간주(28만명)가 여섯 번째다. 특히 이날 바이든 대통령이 방문한 미시간주 디어본은 무슬림이 20만명이나 살고 있으며, 미국 내 가장 큰 무슬림 밀집 도시로 불린다.
커린 잔피에어 백악관 대변인은 "바이든 정부 고위 관리들이 이달 중 다시 이곳을 방문해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전쟁에 관한 아랍계 주민대표의 의견을 청취할 계획"이라며 아랍계 미국인을 향한 관심을 강조하기도 했다.
줄리 차베즈 로드리게스 바이든 선거캠프 매니저가 대통령 방문을 앞두고 미시간주 디어본에서 주민과 노조 간부를 만났지만 아랍계 주민대표들은 참석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대신 아랍계 주민은 가자지구 전쟁에 반대한다며 바이든 정부의 친이스라엘 정책을 비판하는 시위를 벌였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시위대는 "대량 학살 조" "부끄럽다" 등을 외쳤고, 일부는 베트남전쟁 당시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을 비판하며 나온 "오늘 얼마나 많은 아이를 죽였습니까?"라는 구호를 반복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무슬림의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 아랍계 미국인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오늘 대선이 치러진다면 바이든 대통령을 뽑겠다"고 답한 비율은 17.4%뿐이었다. 미국 정치매체 액시오스는 "주요 경합주에서 무슬림이 기권하거나 공화당을 지지하면 바이든 대통령에게 큰 타격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행정명령은 이스라엘을 향한 날카로운 외교적 통보이자 아랍계 미국인에게 보내는 메시지"라며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을 위한 정치적 연합의 핵심"이라고 짚었다.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시작된 후 가자지구에서 이날까지 2만7000명의 사망자가 속출하는데도 휴전과 전후 구상에서 잇단 파열음을 내고 있는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가 담겼다는 의미다.
[진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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