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사법농단' 끝내 항소…"공소권 남용" 비판 잇달아

박민기 기자(mkp@mk.co.kr) 2024. 2. 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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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부터 '무리한 기소' 비판
사법권위 추락에 국론 분열
1심, 양승태 47개 혐의 무죄
체면 구긴 檢 '책임론' 부담
법조계 "항소 포기로 시인을
오히려 사법농단 부추겼던
문 전 대통령·김명수 수사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정조준한 '사법농단 의혹'을 수사한 검찰이 1심 무죄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항소했다. 법원 판결이 나온 지 약 일주일 만이다. 검찰은 1심 법원과 수사팀의 견해차가 크다는 이유 등을 들며 직권남용 등 관련 법리 중심으로 다시 2심의 판단을 받아보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애초 무리하게 수사를 밀어붙였던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 개인을 상대로 검찰권을 남용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2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공판5부(부장검사 유민종)는 양 전 대법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에 불복하고 지난 1일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검찰은 "사법행정권의 범위와 재판의 독립 및 일반적 직권남용, 권한유월(逾越)형 직권남용의 법리에 관해 1심 법원과 (검찰의) 견해차가 크다"며 "관련 사건의 기존 법원 판단과도 상이한 점이 있는 만큼 사실 인정 및 법령 해석의 통일을 기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항소했다"고 밝혔다.

이어 "1심 판결에 이르기까지 장기간 사실관계에 관한 심리가 이뤄진 만큼 항소심에서는 직권남용 및 공모공동정범의 법리를 중심으로 재판이 신속하게 진행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26일 1심 법원이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직권남용 등 47개 혐의 모두에 무죄를 선고하면서 검찰의 항소 여부에 이목이 쏠렸다. 한동훈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를 필두로 검찰 중에서도 최정예로 꼽히는 특수부 검사들을 투입했음에도 '모든 혐의 무죄'라는 허탈한 성적표를 받아들었기 때문이다. 검찰이 사법농단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작성한 수사기록만 20만쪽이며 양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한 공소장은 296쪽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항소 여부를 두고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 전 대법원장에게 47개 혐의를 적용하고 증인을 211명 신청하는 등 '무리한 수사'를 해왔다는 지적을 받은 상황에서 항소마저 포기하면 실제로 무리하게 수사했다는 점을 검찰이 인정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즉각 항소할 경우 '5년 가까이 걸린 재판에서 단 한 건의 혐의도 유죄를 받지 못했는데 검찰이 억지를 부린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이처럼 '진퇴양난' 처지에서 일주일 동안 심사숙고한 검찰은 항소 기한이 끝나기 직전인 1일 '2심 강행'을 선택했다. 형사재판에 대한 법원 판결 이후 검찰이나 피고인이 불복할 경우 일주일 안에 항소장을 접수해야 2심 판단을 받을 수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앞서 1심 선고 직후 "1심 판결의 사실 인정과 법리 판단을 면밀하게 분석한 뒤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사법농단 의혹 수사에 사활을 걸었던 검찰이 즉각 항소하는 대신 '항소 여부를 고민하겠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힌 것도 무리한 수사를 지적하는 사회 분위기를 의식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의 이번 항소가 '검찰권 남용'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은 이날 "이번 무죄 판결을 통해 양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한 기소가 이른바 '사실상 대법원의 수사 의뢰로 진행된 사건'임이 확인됐음에도 검찰이 항소한 것은 공소권 남용"이라며 "이에 매우 큰 유감을 표명하는 동시에 검찰이 즉각 항소를 취소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박주현 자유변호사협회 부회장은 "검찰의 수사가 무리가 아니었다면 47개 혐의에서 모두 무죄라는 판단이 나올 수가 없다"며 "검찰이 항소할 게 아니라 항소를 포기함으로써 수사가 잘못됐다는 점을 시인하고 오히려 지난 정권에서 사법농단을 부추긴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명수 전 대법원장을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오는 5일에는 양 전 대법원장과 함께 사법농단 의혹의 중심으로 꼽힌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이 열린다. 검찰은 임 전 차장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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