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아니면 말고'식 제재에···기업, 승소해도 골병

세종=이준형 기자 2024. 2. 2.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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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뢰도 추락하는 공정위
SPC이어 해상운임 소송도 패소
제재기업 4곳 중 1곳 처분 불복
지난해 순환급액만 751억 달해
무리한 고발에 소송비만 수십억
기업 이미지 실추로 사업 악영향
[서울경제]

공정거래위원회가 SPC그룹과 쿠팡이 제기한 과징금 부과 처분 취소 소송에서 잇달아 패소한 데 이어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형사재판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공정위의 신뢰도가 추락하고 있다. 허 회장이 증여세를 줄이기 위해 계열사 밀다원의 주식을 싸게 양도했다는 것이 공정위의 과징금 처분의 핵심 근거 가운데 하나였는데 이마저도 재차 부인당했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공정위의 ‘아니면 말고’ 식 제재 문화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일 공정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은 허 회장이 “저가 거래를 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며 배임 의도가 성립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이틀 전인 지난달 31일 서울지법과 비슷한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공정위가 SPC그룹에 부과한 과징금 대부분이 부당하다는 게 요지다. 밀다원 주식 저가 양도는 물론 제빵 계열사가 생산 계열사의 원재료·완제품을 SPC삼립을 통해 구매한 ‘통행세 거래’ 등 공정위가 꼽은 주요 부당 지원 행위가 인정되지 않았다. 검찰조차도 2020년 공정위의 고발 당시 과징금 부과 사유인 통행세 거래와 판매망 저가 양도 등에 대해서는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했다. 공정위가 SPC그룹에 65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며 든 핵심 논리가 사실상 모두 깨진 셈이다.

공정위가 2021년 약 33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쿠팡도 상황은 비슷하다. 쿠팡은 이달 1일 공정위를 상대로 ‘시정 명령과 과징금 부과 처분을 취소하라’며 낸 소송에서 승소했다. 제재가 적법하지 않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오면 공정위는 이자 성격의 환급가산금까지 더해 과징금을 돌려줘야만 한다.

공정위는 해상 운임 담합 과징금 처분도 패소했다. 해운협회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은 전날 공정위를 상대로 대만 선사 에버그린이 제기한 과징금 및 시정 명령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공정위는 2022년 에버그린을 포함해 11개 외국적 선사와 12개 국적 선사가 2003년 12월부터 15년간 120차례에 걸쳐 해상 운임을 담합했다며 총 962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기업인을 대상으로 한 제재도 잇따라 법원에서 뒤집어지고 있다. 법원이 최근 손을 들어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대표적이다. 최 회장은 2021년 ‘SK실트론 사익 편취 혐의’로 공정위에서 8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지만 최근 판결로 처분이 취소됐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공정위가 계속해서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지난해 행정소송 패소 등으로 인한 공정위의 순환급액은 750억 원에 달한다. 2017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그 규모가 5500억 원이 넘는다. 같은 기간 공정위 제재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비율은 연평균 23.4%다. 공정위 처분을 받은 기업 4곳 중 1곳은 소송에 나섰다는 의미다.

문제는 공정위 제재와 이어지는 수사·재판 등으로 기업이 입는 비용과 이미지 타격이다. 지난해 말 공정위가 과징금 약 19억 원을 부과한 CJ올리브영은 2년 가까이 이어진 조사·심의 과정에서 법률 대응비로만 수십억 원을 쓴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위가 6000억 원에 가까운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던 만큼 사업 위축도 피할 수 없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브랜드 이미지가 중요한 기업소비자간거래(B2C) 기업의 경우 공정위 제재로 인한 이미지 실추가 치명적일 수 있다”며 “소송비 자체를 부담하기 어려운 기업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사법부와 경쟁 당국의 시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있다. 전직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사법부는 위법 여부를 따지는 반면 공정위는 정당한지, 부당한지를 중심적으로 본다”며 “(최근 재판 결과는) 사법부와 행정부의 시각차에서 나온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공정위의 현장 조사는 검찰의 압수수색과 달리 강제성이 없어 재판 과정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증거 수집에 제한적이라는 한계도 있다”고 덧붙였다.

세종=이준형 기자 gils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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