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물머리가 발 아래 펼쳐진다, ‘풍경 명소’ 남양주 수종사 [정용식의 내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사찰은 불교의 공간이면서, 우리 역사와 예술의 유산입니다. 명산의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사찰들은 지역사회의 소중한 관광자원이기도 합니다. 치열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얻고자 할 때 우리는 산에 오르고 절을 찾습니다. 헤럴드경제는 빼어난 아름다움과 역사를 자랑하는 100곳의 사찰을 소개하는 ‘내 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열두 번째 방문지는 경기도 남양주시에 자리잡은 수종사입니다. 〈편집자 주〉
두 물길이 한데 어우러지는 풍광이 아름다워서 구름마저 잠시 머물고 간다는 경기도 남양주시 운길산(雲吉山, 610m). 자연경관 가치가 높아 이 일대가 명승지로 지정되어 있다. 양수리의 풍광을 방해받지 않고 바라볼 수 있는 운길산 8부 능선의 수종사를 찾았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뜻의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을 좋아한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요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다투지 않고 모두가 싫어하는 낮은 곳에 머무른다. 도덕경에 나오는 대목이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지점 두물머리 양수리(梁水里)의 ‘물의 정원’을 막 지나니 좌측에 수종사 진입로를 표시하는 안내비석이 나타났다.
다산선생과 다선(茶仙)으로 일컬어지는 초의선사가 한강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며 시를 짓고 차를 마셨다는 삼정헌(三鼎軒)이 수종사에 있다. 삼정헌의 ‘삼정’은 차를 좋아하는 세 사람을 삼정승(三政丞)에 빗대어 붙인 이름이다. 삼인방은 다산 정약용과 초의선사 그리고 정조의 부마(사위) 홍현주다. 초의선사는 홍현주의 부탁을 받고 동다송(東茶頌)이라는 한국 차 문화를 정리한 저서를 쓰기도 했다.
초의선사의 차 문화를 이어간다는 의미에서 방문객들이 삼정헌에서 무료로 차를 우려 마실 수 있다고 들었다. 그곳에서 두물머리 풍광을 즐기며 차 한 잔으로 번뇌를 날릴 수 있겠단 큰 기대를 품고 수종사로 향했다.
수종사 가는 길목에 실학의 대가 다산(茶山) 정약용 유적지가 있어 들렀다. 생가와 여유당(與猶堂), 다산기념관, 묘, 실학기념관 등이 팔당호를 내려다보고 있다. 여유당이라는 당호는 ‘물을 건너듯 사방을 두리번거리듯’이라는 뜻으로 노자(老子)의 도덕경에서 가져온 말이다. 처신을 조심스럽게 하겠다는 다산의 또 다른 아호(雅號)이기도 하다. 기념관에는 정조의 부마 홍현주가 어느 겨울에 수종사를 가려는데 다산이 나이가 들어(70세) 함께 오르지 못함을 개탄하는 시 한 수가 적혀 있었다.
수종산은 산색이 저물어가며 찌푸린 얼굴 같고
눈 덮인 나무와 얼어붙은 샘물이 고요히 사람을 기다리리
고개에 까마귀가 몸 뒤집을 때 말채찍 처음 떨치고
역 누정에 닭 울 때는 벌써 수레바퀴 기름칠을 끝냈으니
북엄(北崦)의 일천 굽이 돌비탈을 부여잡고 올라가
동화문 일만섬 먼지를 맑게 씻고자 하네
이 같은 풍류놀이에 따라가기 어려워
백발의 노인 시 읊으며 바라보니 마음만 아프구려
정약용 선생은 일생을 통해 수종사에서 지낸 즐거움을 ‘군자유삼락’(君子有三樂,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에 비교하여 “동남쪽 봉우리에 석양이 붉게 물드는 것을 보는 즐거움, 강 위에 햇빛이 반짝이며 창문으로 비쳐 들어오는 것을 느끼는 즐거움, 한밤중 달이 대낮처럼 밝아 주변을 보는 즐거움”이라 했다.
수종사는 세조 이후 왕실의 원찰로 자리매김했을 뿐만 아니라 경관이 좋아서 많은 시인묵객들이 이곳의 풍광을 시·서·화로 남겼다. 서거정(1420∼1488)은 ‘동방에서 제일의 전망을 가진 사찰’이라 하였고 겸재 정선(1676~1759)은 양수리의 경관을 보여주는 독백탄(獨栢灘)을 이곳에서 그렸을 정도로 경관뿐만 아니라 역사·문화적 가치와 차 문화와도 인연이 깊은 곳이다.
이 절은 광해군의 계모인 인목대비(인목왕후)의 눈물의 염원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인목대비가 인조반정으로 복권 후에 수종사에 간절한 비원(悲願)이 서린 ‘팔각오층석탑’을 세우고 그 안에 31점의 불상을 모셨다. 석탑의 크기는 아담하나, 고려시대 팔각석탑 축조양식 전통을 이어받아 조형미가 빼어나고 아름답다.
인목대비는 19살의 나이에 51세의 선조에게 왕비로 간택됐다. 광해군보다 9살이나 어린 ‘계모’로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인목대비는 광해군에 의해 비명횡사한 아버지와 어린 아들인 영창대군, 자신 때문에 죽임을 당한 궁녀 등 먼저 떠나보낸 사람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딸 정명공주와 궁녀들의 안전과 일체의 재난이 소멸되기를 소망했다. 여인으로서 최고의 자리인 왕후까지 갔지만 광해군과 질긴 악연으로 멸문지화(滅門之禍) 당하며 아들까지 가슴에 묻어야 했던 전쟁터 같은 궁궐에서 기구한 운명을 산 인목대비의 눈물이 운길산에 스며있는 듯했다.
수종사에는 태종의 5번째 딸이며 세조의 고모인 정혜옹주의 부도탑이 남아 있다. 꽃다운 나이에 죽은 정혜옹주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부도 내에 있던 사리를 담은 ‘뚜껑 있는 청자항아리’ 등 세 점의 사리장엄구는 보물로 지정되어 불교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사리탑 본체도 보물이다.
대웅전 옆 사리탑과 더불어 삼층석탑, 그리고 팔각오층석탑. 여기서 출토된 수십 종 불상들도 보물로 지정돼 불교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수종사는 한양에서 가까운 까닭에 왕실 여인들이 많이 찾았던 것 같다. 그들은 왕에 따라 인생이 부침할 수밖에 없었는데, 수종사에서 현세의 평안과 내세에서의 극락왕생을 기원한 모양이다.
수종사는 신라 시절에 처음 지어진 것으로 전해지나, 조선 세조와 관련된 일화가 유명하다. 한번은 세조가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금강산(金剛山) 구경을 다녀오다가 두물머리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밤중에 은은한 종소리가 들려,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찾아보니 토굴 속 바위틈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마치 종소리처럼 퍼져나갔던 것이었다. 그곳엔 18나한상도 있었다고 한다. 이에 세조가 이 절에 18나한을 봉안하고 5층석탑을 세우며 수종사라고 이름 내렸다는 유래다.
일주문에서 불이문을 지나 계단길 해탈문까지 10여 분 걸으면 수종사 앞마당이 펼쳐진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여러 법당이 오밀조밀하게 자리 잡고 있다. 종무소와 사리탑, 대웅전을 중앙에 두고 좌측 언덕에는 16나한을 모신 응진전, 그 바로 위쪽엔 산령각이 있고 대웅전 우측으로 내려가면 범종각과 세조가 심은 것으로 전해지는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자리하고 있다. 북한강을 벗 삼아 500여 년을 꿋꿋이 버틴 세월의 위용이 느껴지는 우람한 자태를 뽐낸다. 가지만 앙상한 겨울에도 이러한데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휘날리듯이 떨어지는 가을의 그 모습은 어떨지 상상해봤다. 은행나무 가지 사이로 비친 북한강과 건너편 산 능선의 모습이 어우러져 한 폭 살아있는 그림을 연출한다.
삼정헌 옆 마당은 탁 트인 시야를 자랑한다. 이곳에 서서 남한강, 북한강 너머까지 조망할 수 있다. 마당 끝에는 ‘묵언(默言)’이라 적힌 표지판이 세워졌다. 산령각 앞에서 내려다보는 경내 모습, 두물머리, 아스라한 산 능선까지 시선을 뻗을 수 있는 트인 풍경은 가히 일품이다. 옛 선비들의 ‘동방제일전망’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말 없이 경치만 바라보아도 충분히 좋다. 북한강을 끼고 이어지는 자연경관은 청춘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유명해서 수종사에도 여러 젊은 커플들이 보였다.
이곳으로 오는 길에 삼정헌에서 감로수에 우려낸 차를 마실 기대에 부풀었는데, 날을 잘못 잡았고 시간도 잘못 잡았다. 사계절 내내 신록·단풍·설경이 신비롭고, 일출·일몰·운해 등 어느 시간의 풍광이라도 아름답다고 들었건만. 눈 내린 다음 날 방문한 수종사에선 마음이 적잖이 어지러워졌다.
우선 운길산 초입에서 ‘눈길주의 차량통제’ 가림판을 마주했다. 도로에 쌓은 눈은 다 녹은 듯 보여 “가림판을 치우고 올라가도 되느냐”고 절 종무소에 물었더니 “제설이 안됐으니 굳이 오려면 차를 두고 걸어 오라”고 했다. 운동 삼아 시멘트 포장된 비탈진 산길로 들어섰다. 운길산 초입부터 헐떡거리며 30여분 오르고 나서야 일주문에 닿았다.
삼정헌에서의 따뜻한 녹차 한 잔을 기대했으나 하필 휴관일이었다. 수종사의 감로수 샘물을 끓인 녹차 한잔으로 시름을 잊고 두물머리 풍광을 즐기려던 소박한 꿈은 이루지 못했다. 스님과 차담이 가능한지 종무소에 청했으나 예불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휴식 중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물처럼 사는 인생이 아름답다 했는데 현실에선 물처럼 사는 게 결코 쉽지 않다.
글·사진 = ㈜헤럴드 정용식 상무
정리 =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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