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고령 투자자 = 피해자 인식은 과도"···이대론 모럴해저드만 조장

강동헌 기자 2024. 2. 2.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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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S 가입 70대, 97%가 재투자]
당국, 분쟁 기준 마련 들어갔지만
투자 유경험자 비율 높아 고심 커
업계선 "지나친 개입땐 시장위축"
美 고위험상품은 은행 판매 못해
"국내도 벤치마킹 필요" 목소리도
이복현(오른쪽 두 번째) 금융감독원장이 지난달 24일 서울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증권 업계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금융감독원이 2일 은행과 증권사 등 주가연계증권(ELS) 주요 판매사에 대해 현장 조사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피해 분쟁 기준안 마련에 들어간다. 이미 국민·신한·하나·농협 등 주요 시중은행들은 ELS 판매 중단에 들어갔다. 이를 두고 증권 업계에서는 피해자들 대부분이 재투자 경험이 있는 고령의 고액 자산가인데 당국의 지나친 개입으로 금융시장 자체가 위축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적지 않다.

A증권사에서는 70대 이상 고령 투자자의 97%가 ELS 투자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정은 다른 증권사들도 마찬가지다. B증권사의 경우 논란이 되는 올해 상반기 만기 예정 홍콩 ELS 투자자 중 ELS 투자 유경험자의 비율이 88%에 달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고령 투자자들이었다. 지난해 기준 B증권사의 ELS 투자자 연령대는 50대가 31%, 60대가 20%, 70대 이상이 10%로 드러났다. 당초 불완전판매 등 금융 사기가 금융 지식과 정보 접근성이 부족한 고령층을 겨냥해 무분별하게 이뤄졌다는 주장과 상반되는 수치다.

홍콩 ELS 투자자 대부분이 ELS 투자 경험이 있는 고령층으로 밝혀지면서 금융 당국은 고심에 빠졌다. 일부 투자자들은 이미 시중은행을 상대로 금감원 분쟁 조정을 신청한 상태다. 투자자 10여 명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액은 약 30억 원에 달하는데 조정이 결렬되면 이들은 소송 절차를 밟게 된다.

금감원은 앞서 지난해 12월 불안전판매가 인정될 경우를 대비해 금융사와 소비자 간 분쟁에 대처하는 배상 비율 기준안 검토에 들어갔다. 금감원이 기준안을 내놓으면 은행·증권사 등이 이를 근거로 자율 조정에 나서는 식이다. 분쟁 조정은 단건 처리가 원칙이지만 배상 기준안 방식이 적용된다면 2019년 파생결합펀드(DLF)·사모펀드 사태 이후 두 번째다.

금감원은 앞서 DLF·라임·옵티머스 불완전판매와 관련해 손해액의 40~80%를 배상하도록 했다. 금융사가 투자자에게 부적합한 상품을 권유했다면 손실 배상 비율이 높아진다. 실제 과거 DLF 배상 비율 기준안에서는 만 65세 이상에게는 5%포인트, 80세 이상은 10%포인트가 가산됐다.

반대로 투자자가 금융 투자 상품 거래 경험이 많거나 거래 금액이 크다면 은행의 책임 감경 사유가 된다. 사모펀드 사태와 달리 ELS는 공모형이고 오랜 기간 대중적으로 판매된 상품이라 불완전판매 입증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ELS 사태 역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앞서 2015~2016년에도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홍콩H지수) 연계 ELS의 원금 손실 우려가 불거지면서 불완전판매 문제가 부각됐다. 당시 투자자 보호 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투자자 숙려 제도와 녹취 의무가 시행됐다.

ELS 상품의 특성상 고령층의 자산가 투자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고령 투자자=피해자’라는 등식은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금융 사고가 반복될 때마다 투자자들에 대한 과도한 보호 조치는 ‘자기 책임 원칙’을 깨뜨려 자본시장 위축으로 연결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증권 업계의 한 관계자는 “불완전판매라 하더라도 그간 이익을 본 것에 대해서는 넘어가면서 손실만 보면 세금으로 구제하는 것은 불합리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ELS는 사기 상품이 아니라 고위험 상품이고 불완전판매를 제외한 나머지는 투자 최종 책임을 투자자 본인이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은행에서 ELS를 판매하는 것에 대해서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금융 업계의 한 최고경영자(CEO)는 “소비자들이 일반적으로 은행을 방문할 때는 ‘투자’보다는 ‘예적금’의 관점에서 금융 상품을 찾는 경우가 많아 금융 지식이 부족한 고객 입장에서는 불완전판매를 주장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에서는 ELS급의 고위험 상품은 은행에서 팔 수 없도록 돼 있다. 고위험 상품을 파는 은행의 경우 증권 면허를 갖고 있어야 한다.

강동헌 기자 kaaangs10@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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