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매 순간 감정포착을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안면인식장애라는 게 있다.
기분 나쁘고 화가 치밀고 하는 감정은 그렇게나 잘 느끼면서, 그 순간이 주는 긍정적인 감정에는 왜 그렇게나 둔한 것인가.
순간의 감정을 포착하고 즐기게 되면 더불어 같이한 사람들에 대한 기억도 오래간다.
매 순간 스쳐 지나가는 긍정적이고 즐거운 감정을 포착할 수 있어야겠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안면인식장애라는 게 있다. 사람들 얼굴을 기억하거나 변별하지 못하는 증상이 특징이다. 안면인식장애로 진단받은 사람과 비교하면 그 정도는 아니지만 나는 사람에 대해 잘 기억하지 못한다. 모임에서 인사를 나눈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몇 년 전 연말 모임에서 당황스러운 일이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라고 내가 인사를 하는데, 이분이 명함을 주면서 간단한 자기소개를 했다. 나는 "아, 이런 일을 하시는군요. 재미있겠습니다"라고 답을 했다. 그런데 이분이 살짝 인상을 쓰는 듯하더니 "제가 교수님으로부터 이 말을 세 번 들었습니다. 오늘, 네 번째입니다." 나의 고질병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죄송하다는 말을 연거푸 하면서 병에 가깝다고 변명을 늘어놓기도 했지만, 나의 부족함에 얼굴이 뜨거워지고 무엇보다 상대에게 너무나 미안한 마음에 한참 괴로웠던 경험이 있다.
그래서 이런 나의 부족함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보기로 했다. 그 첫 단계로 나를 가만히 지켜보니 참석해야 하는 모임에 가면 으레 빨리 여기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 끝맺지 못하고 나온 업무들을 처리할 생각에 머리가 쉽게 복잡해지곤 했다. 그래서 한때는 꼭 가야만 하는 모임에만 참석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불참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곧 그 기준이 무엇인가 모호해졌다. 돌이켜보면 나는 업무와 관련된 일정만 잡고 있기도 했다. 그래도 늘 마음은 분주하고 해도해도 끝없는 일들로 허덕거리는 팍팍한 인생이었다. 내가 가장 바쁜 사람인 양, 내가 가장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인 양 번잡하기만 했다. 지금, 여기에 집중하면서 그 순간을 즐기지 못한 것 같다. 의미 있는 순간에 대한 기억보다는 그저 내가 이러저러한 일을 해냈다는 나만의 자족감만 남아 있었던 것이다.
풍요롭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 위해선 인생의 좋은 것들을 즐기고 맛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늘 즐거운 일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매일 반복되는 무미건조한 삶이라고 할지라도 긍정적이고 행복한 순간을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스쳐 지나가는 그 감정을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품고 있는 맑고 신선한 공기, 갑자기 풀린 날씨에 쏟아지는 햇빛의 따스함, 마주 앉아 와인잔을 기울이면서 환담하는 순간의 여유로운 느낌. 이런 느낌들, 그때 가지게 되는 따스함, 행복감, 안락함 등의 감정을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인생은 이런 순간들로 구성되어간다.
기분 나쁘고 화가 치밀고 하는 감정은 그렇게나 잘 느끼면서, 그 순간이 주는 긍정적인 감정에는 왜 그렇게나 둔한 것인가. 순간의 감정을 포착하고 즐기게 되면 더불어 같이한 사람들에 대한 기억도 오래간다. 긍정적인 느낌이 만든 기억이다.
그래, 인간은 어차피 순간을 살아가는 존재다. 일상을 떠나 여행을 가고 뭔가 특별한 이벤트를 만들어야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일상 속 순간순간을 충분히 음미하는 것이 중요하다. 매 순간 스쳐 지나가는 긍정적이고 즐거운 감정을 포착할 수 있어야겠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현금 3조9000억원 난방용으로 모두 태워?”…이거 한은이 했다는데 - 매일경제
- “1인당 1500만원 더 받을 수 있다”…국민연금이 받은 편지 뭐길래 - 매일경제
- “출산율 최악인데 여자를 군대 보낸다고? 50대 남자 재입대 시키자”…‘시니어 아미’ 갑론을
- “바지는 어디에?”…속옷만 입은 듯 ‘팬츠리스’ 패션 유행 왜? - 매일경제
- “우리도 ‘밥 먹었어?’ 인사하죠”…‘이 나라’ 여행객 1위가 한국인이라는데 - 매일경제
- 오늘의 운세 2024년 2월 2일 金(음력 12월 23일) - 매일경제
- “귀족노조, 기사 딸린 차 타는데…회사 한번 와보지도 않고 정책 결정하나” - 매일경제
- 20대에 점장 달고 연매출 20억 찍었다…잠실서 유명한 이 남자 누구 [인터뷰] - 매일경제
- “오늘 아침 눈물의 초코파이 먹었다”…주주들 난리 난 이 종목, 대체 무슨 일? - 매일경제
- 제시 린가드, 한국 온다...K리그 FC서울과 2년 계약 임박 - MK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