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거미여인의 키스'…"소수의 존엄성 무너져선 안 돼"
[서울=뉴시스] 박주연 기자 = "발렌틴과 몰리나처럼 우리도 억압받을 수 있습니다. 다수의 편견으로 소수의 존엄성이 무너질 수 있죠. 아르헨티나에서 1976년에 쓰여진 작품이 지금도 가슴 아프고, 공감받는 이유일 겁니다."(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박제영 연출)
퀴어연극 '거미여인의 키스'가 6년만에 돌아왔다. 자신이 여자라고 믿는 성소수자 '몰리나'와 냉철한 반정부주의자 정치범 '발렌틴'이 감옥에서 만나 서로를 받아들여가는 과정 속에서 피어나는 따뜻한 인간애와 사랑을 다룬 작품이다.
박제영 연출은 2일 서울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 열린 '거미여인의 키스' 프레스콜에서 "다수의 편견으로 소수의 존엄성이 무너지는 일이 우리의 일상에서 벌어질 수 있고, 살면서 삶이 감옥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며 "이런 부분을 작품에 담아내고 싶었고, 이 작품을 통해 관객들이 사랑하고 베풀며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 연출은 "각색을 함께 맡았기 때문에 살을 붙이고 싶은 욕망이 피어올랐고, 소설에서 재미있게 본 내용들을 넣고 싶었지만 희곡 본연의 매력에 집중하자고 결정했다"며 "두 캐릭터가 어떻게 하면 잘 살아날 수 있을까를 6명의 배우들과 함께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성소수자인 '몰리나'를 표현하는 게 고민돼 브로드웨이에 가서 작품 10개 정도를 보고 왔다"며 "배우들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여자로 표현할까'에 신경쓰기보다 '말투가 어떻든 행동이 어떻든 나는 여자'라는 느낌으로 연기해달라고 주문했고, 그래서 편안한 매력이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자신을 여자라고 믿고 있는 낭만적 감성의 소유자 '몰리나'는 전박찬·이율·정일우가, 냉철한 반정부주의자 정치범 '발렌틴' 역은 박정복·최석진·차선우가 맡았다.
영화 '고속도로 가족', 드라마 '야식남녀' 등으로 활약해온 정일우는 '몰리나'역을 통해 5년만에 연극 무대에 복귀했다. 정일우는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 발렌틴이 더 매력적이라고 느꼈지만 오랜만에 연극 복귀하며 어떤 캐릭터를 선택하면 좋을까 생각했더니 몰리나역에 욕심이 났다"며 "저에게도 도전이었고,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고 말했다.
정일우는 "몰리나의 대사 중 '나는 내가 슬프다고 느끼면 울거야'라는 대사가 크게 와닿았다"며 "유리알 같은 몰리나의 모습이 부럽다. 저는 가면을 쓰기도 하고, 내성적이라 감정을 잘 못 드러내는데, 몰리나의 가장 큰 매력이 이런 솔직함인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연극무대 만의 긴장감, 관객과의 소통이 매력적"이라며 "한 작품을 서른 번도 넘게 공연하며 깊이 알고, 배우로서의 배움도 늘어가는 것 같다. 기회만 된다면 평생 연극무대에 서고 싶다"고 말했다.
전박찬은 "관객들이 이 작품을 단순히 성소수자와 정치사상범의 로맨스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2024년의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혐오와 차별, 억압, 그리고 우리 역사의 운동과 관련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좀 더 다양하게 바라봐 달라"고 했다. 이율은 "2인극이다보니 호흡을 잘 맞춰야 해서 염두에 두면서 연습했다"며 "공연을 하며 몰리나에게 '괜찮아'라고 말하며 토닥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지난해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에 참여, '헬로, 더 헬: 오델로'로 성공적 연극데뷔를 마친 그룹 B1A4 출신 차선우는 '거미여인의 키스'에서 냉철한 발렌틴으로 완벽 변신한다. 차선우는 "무대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며 "(데뷔작인) 오델로는 피지컬적인 부분이 많아 연기보다 몸을 많이 쓰는 느낌이었는데 마침 좋은 작품을 만나게 돼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차선우는 "초반 연습에서 톤·발성·몸동작·연기의 농도들을 잘 몰라 많이 헤맸는데 지금은 좋은 연출·형님들 덕에 즐기며 연기하고 있다"며 "아직 가진 게 많지 않아 정복·석진이 형이 연습하는 것을 보며 많이 흡수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3월 말까지 최선을 다해 열심히 달릴테니 꼭 보러와달라"고 당부했다.
박정복은 "발렌틴 배역을 맡은 세 명이 함께 토론하며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했다"며 "2막에서 '몰리나'가 '발렌틴'에게 '너 혼자 잘 살기 위해 하는 행동이 아니잖아. 넌 참 착한 사람이야'라고 말하는데 저 역시 발렌틴에게 그 말을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뇌경색으로 무대를 떠났던 최석진은 이 작품으로 연극 무대에 복귀했다.
최석진은 "쓰러지고 복귀하기까지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무대에 서지 못하겠다는 생각도 했다"며 "어쩌면 발렌틴의 어려움과 내가 가진 어려움이 일맥상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해보자는 생각으로 접근했다"고 말했다.
최석진은 "지금도 약을 먹고 꾸준히 재활을 하고 있다"며 "관객들이 '쟤 아팠잖아', '아팠던 것 치고는 괜찮네'라고 할까봐, 제 연기를 포용하는 마음으로 볼까봐 겁이 났다. 제 연기를 보며 절대 그런 생각이 들 지 않으시게 이 악물고 연습했다.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3월31일까지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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