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사랑기부금 1년…배보다 배꼽이 큰 강원도
■ 고향사랑기부금 1년의 성적표는?
지난해 1월, 고향사랑기부금제도가 첫 발을 뗐습니다. 개인이 고향에 기부하고, 지자체는 이를 모아서 주민 복리에 사용하는 제도입니다. 기대감은 컸습니다. 무엇보다 빠듯한 지방자치단체의 살림살이에 고마운 단비가 될 거라는 희망이 커졌습니다. 전국의 243개 자치단체는 기부금 모금을 위한 총력전에 뛰어들었습니다. 특히, 첫해다 보니 어느 동네가 얼마나 더 기부금을 유치했는지, 지자체 사이에 눈치경쟁도 치열했습니다.
그리고 1년 만에 그 성적표가 처음 나왔습니다. 그동안 모금액을 비공개로 한 지자체들이 적지 않았던 탓에, 자료에 대한 관심도는 그 어느 때보다 컸습니다.
'1년 동안 모금액 650억 2,000만 원, 기부 건수는 52만 건' . 행정안전부가 밝힌 고향사랑기부제의 1년 성과입니다. 모금액이 많은 3개 지역의 순위도 발표했습니다. 1위는 전라남도와 전남의 시군이었습니다. 모두 143억 원을 모금했습니다. 이어 경상북도 약 89억 원, 전라북도 84억 원 순이었습니다.
특히, 행정안전부는 제도가 성공적으로 안착했다고 자평했습니다. 고향사랑기부금이 지방재정 확충, 지역경제 활성화, 지역사회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을 줬다고 평가된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 모금액 보다 홍보비를 더 썼다?… '배보다 배꼽이 큰 강원도'
하지만, 상황이 다른 곳도 있습니다. 바로 강원도입니다. 강원도가 1년 동안 모금한 고향사랑기부금은 모두 3억 3,000만 원이었습니다. 애초 목표로 잡았던 7억 원의 절반에도 못 미쳤습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모금액이 목표액을 밑도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금액보다 홍보비 명목으로 쓴 돈이 훨씬 많았다는 사실입니다.
강원도가 지난 1년 동안 홍보비로 쓴 돈은 4억 8,000만 원 가량입니다. 모금액보다 1억 5,000만 원 가까이 많은 금액입니다. 각종 매체에 광고를 하고, 수도권 지하철역이나 ITX·KTX, 전광판 등에도 광고물을 게재했습니다. 제1회 고향사랑의날 기념식을 비롯해 박람회 등에도 참가하거나, 각종 홍보물을 사는 데도 쓰였습니다.
모금을 위한 비용은 홍보비만 드는 게 아닙니다. 기부자에게 보내는 답례품 비용으로도 4,000만 원이 나갔습니다. 여기에 각종 행정 처리를 위한 심의위원회 개최와 수당 지급, 위탁운영비 등에도 예산이 투입되어야 합니다. 1년 동안 쓴 돈을 합치면 5억 3,000만 원이 넘습니다.
강원도는 처음 시행하는 제도인 만큼 제도와 답례품 등을 알리기 위해 홍보에 역점을 뒀다고 설명합니다. 그런 만큼, 홍보비에 상한을 두지는 않았다는 설명입니다. 다만, 올해부터는 각 시군과 통합해 홍보를 하는 방안 등 홍보 비용을 효율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 강원도와 시군 모금액의 30% 가량이 '홍보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시군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평창군의 경우 4억 원의 기부금을 모금했는데, 절반 가량인 2억 원을 홍보비와 답례품비로 쓴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삼척시 역시, 모금액은 2억 7,000만 원이었는데, 두 가지 항목에 지출액이 1억 5,000만 원을 넘었습니다.
KBS의 취재 결과, 지난해 강원도와 18개 시군이 받은 고향사랑기부금은 모두 52억 9,000만 원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홍보비로 15억 3,000만 원이 쓰였습니다. 전체 모금액의 29%에 이릅니다. 여기에 답례품비까지 더하면, 지출 규모가 모금액의 절반 가까이 됩니다. 여기에 파악되지 않은 각종 수수료와 운영비, 인건비 등이 더 투입되면 그 비용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홍보 등 운영비에 대한 규정이 있기는 합니다. 고향사랑 기부금에 관한 법률 제11조 3항입니다.
③ 지방자치단체는 고향사랑기금의 일부(전년도 고향사랑 기부금액의 100분의 15 이내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금액으로 한정한다)를 고향사랑 기부금의 모집과 운용 등에 필요한 비용에 충당할 수 있다.
홍보비를 포함한 운영비가 모금액의 15%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난해, 처음 모금을 하는 해였던지라 이 규정은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지자체 담당자들의 설명을 들어봤습니다. 역시, 일단 제도를 알리는 게 중요했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사업을 처음 해보는 입장에서 어디에 어떻게 홍보를 하고, 얼마를 써야 하는지 막막했다는 어려움도 토로했습니다. 여기에 홍보 방식에도 규제가 심해, 효율적인 방안을 찾기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당장 "배보다 배꼽이 크다"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옵니다. 강원도의회 류인출 의원은 강원도를 상대로 3억 원을 모금하자고 5억 원을 들이는 게 맞냐고 물었습니다. 특히, 제도에 대한 같은 내용을 대부분의 지자체가 막대한 비용을 들여 홍보한 만큼, 실적 대비 홍보비 낭비는 더욱 심각한 문제라고 꼬집었습니다.
이 제도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박상헌 한라대학교 고향사랑기부제 지원센터장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시행 첫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하긴 하지만, 고향사랑기부금의 본질이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의 사업비를 확보하는 목적이라는 측면에서 반드시 짚어봐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특히, 모금 자체를 위해 너무 많은 기회 비용들이 소요되고 있는 형태로 운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중앙 정부의 역할도 강조했습니다. 시행 첫 해인 만큼, 홍보에서 중앙정부의 역할이 필요했다고 설명합니다.
처음 해보는 사업이라 시행착오를 피하기 어렵다는 설명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2008년 '고향납세' 를 도입한 일본이라는 좋은 선례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일본 사례를 연구하면 같은 시행착오를 피해갈 수 있다는 얘기도 됩니다.
박상헌 센터장은 홍보비와 관련해 이런 제안을 합니다.
일본은 모금에 민간을 참여시켜, 민간이 홍보를 대행하게 하는 방식으로 지자체가 홍보비 부담을 거의 지지 않게 하고 있다는 겁니다. 지자체별로 중복된 홍보 등의 업무를 하나로 통합할 중간 기구 마련 등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꼽았습니다. 지금은 몇가지 방식으로 제한해 놓은 홍보 방식의 다각화도 반드시 검토되어야 할 문제로 꼽힙니다.
이제 고향사랑기부금이 시행 2년째를 맞았습니다. 홍보비만 놓고 봤을 때, 다행히 올해는 지난해와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는 않을 전망입니다. 모금액이 기금으로 쌓인 이후에는 운영비의 상한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발 더 나아가 모금액과 운영비용의 문제는 큰 틀에서 분석하고 평가해야 할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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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숙 기자 (hotpencil@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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