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의 마켓관찰] 한국 굴은 저렴하고 유럽은 비싼 이유

2024. 2. 2.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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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유럽 굴은 비싼 고급음식
무분별한 남획과 수질오염 탓
통영·남해는 오염지와 멀어
식재료값에도 맥락·배경 있어

겨울은 그야말로 생굴을 먹기 좋은 계절이다. 껍데기를 깐 굴에 레몬즙만 뿌려서 목으로 넘기면 이만한 호사가 따로 없다고 느낄 정도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굴은 정말 싸다. 미국이나 유럽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알 것이다. 그 나라들도 생굴을 먹긴 하지만 개당으로 가격을 매긴다. 오이스터바 같은 곳에선 개당 3유로 혹은 5달러에 판매를 하고 있다. 그 가격이면 우리나라에서 굴 한 무더기를 살 수 있는데 말이다.

미국과 유럽이 처음부터 굴이 비쌌던 것은 아니다. 템스강 하구와 그 주변 연안, 프랑스 북부 해안은 예로부터 굴의 산지로 유명했고 굴은 쉽게 채취가 가능했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도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뉴욕 또한 천혜의 조건 덕분에 굴의 도시로 널리 알려졌다. 지금은 자유의 여신상이 들어선 리버티 섬은 과거엔 굴이 가득한 오이스터 아일랜드란 이름으로 불릴 정도였다. 그 덕분에 19세기 유럽인들의 뉴욕 여행기를 살펴보면 "뉴욕은 가난한 사람들도 1년 내내 빵과 굴을 마음껏 먹는다"는 기록이 있고 생굴을 파는 길거리 노점상들이 즐비할 정도였다.

이렇게 저렴했던 굴이 비싸진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먼저 남획이다. 철도의 발달로 굴은 이제 해안 지역을 넘어 내륙까지 판매 가능한 상품이 되었다. 양식도 진작부터 하긴 했지만 넘쳐나는 수요를 감당하기엔 부족했고 결국 남획이 이뤄지면서 굴이 자라는 지역 자체가 크게 파괴되고 만다.

더 큰 문제는 수질오염이었다. 템스강 하구와 인근 지역, 그리고 프랑스 북부 지역은 런던과 파리라는 두 나라를 대표하는 대도시가 있는 곳이며 많은 공장들이 들어선 공업지역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배출하는 하수와 공장의 오염수들이 강과 바다로 흘러 들어갔는데 그로 인해 굴이 자라는 지역의 바다가 크게 오염된 것이다. 굴은 바닷물을 빨아들여 플랑크톤을 섭취한 후 다시 바닷물을 배출하는 식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바닷물의 오염은 곧 굴의 오염을 의미했다. 이로 인해 오염된 굴을 먹고 병에 걸리는 사람들이 급증한 것이다.

산업화 초창기 유럽은 미국 동해안과 뉴욕에서 굴을 수입했기에 이것이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다. 하지만 뉴욕 또한 동일한 문제를 겪기 시작했다. 결국 오염된 굴에 대한 공포로 수요는 크게 감소했고 그와 더불어 굴 양식장과 생산지의 폐쇄가 줄을 이었다. 뉴욕은 아예 굴 양식장 자체가 사라져버렸고 깨끗한 굴을 양식할 수 있는 환경이 드물었기에 굴 가격은 매우 크게 치솟아 비싼 음식으로 전락해버리고 만 것이다.

20세기 중반 들어 양식 기술의 발전과 함께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다시금 굴을 키우고는 있지만 과거처럼 저렴한 굴의 시대는 다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일단 굴이 많이 비싸져서 어느 순간 고급 음식으로 인식이 잡힌 것이 크다. 또 과거 오염으로 인한 피해를 겪어봤기에 굴은 아주 철저한 환경 관리하에 양식을 하고 관리를 해야 하는 식품이 되었다. 이 또한 비싼 가격을 지지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여 지금도 굴이 비싸게 팔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점에서 다행으로 생각해야 한다. 우선 굴의 주요 산지인 통영과 남해는 대도시와 거리가 멀고 주요 공업단지와도 거리가 있다. 이 때문에 오염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고 이 덕분에 지금도 저렴하게 우리가 굴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서구 국가들이 굴을 좋아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분명 우리나라의 굴은 또 하나의 관광상품으로서도 잠재력이 높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우리나라와 서구 국가의 굴 가격 차이는 어떠한 현상이 맥락의 결과란 점을 잘 보여주는 예시라 할 수 있다. 그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면 현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에 맞는 대응을 하기도 어려운 법이다. 이렇게 평범한 굴 하나에도 진리가 담겨 있다.

[김영준 '골목의 전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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