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우크라 戰雲에도 원유·가스값 ‘잠잠’…美 바이든 ‘안면몰수’가 한 몫? [신동윤의 투자,지정학]

2024. 2. 2. 17: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AFP·AP·로이터]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수십년 동안 세계가 본 가장 위험한 시기일 수 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CEO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의 전쟁에 이란이 직접 참전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국제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를 넘어설 것.”
블룸버그이코노믹스

지난해 10월 7일 전 세계는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그동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하마스이스라엘에 대해 전면적인 공격에 나섰기 때문인데요.

그동안의 모습은 하마스가 일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든 ‘수제(手製) 미사일’ 까삼(Qassam)로켓을 이스라엘 지역으로 날리면 이스라엘이 포대당 600억원, 요격용 미사일 한 발에 5000만원이 넘는 ‘아이언돔(Iron Dome)’으로 요격에 나서는 모습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공격에서 하마스는 5000발이 넘는 로켓포를 집중적으로 퍼부으며 이스라엘군의 혼란을 유발했습니다. 그후 가자지구 남쪽 국경의 이스라엘 마을로 전동 패러글라이더를 탄 대원들을 침투시키거나 픽업트럭, 오토바이, 모터보트 등을 이용해 북쪽과 동쪽 국경 넘어 민간인 마을 등에 침투하는 모습을 보였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이스라엘 민간인과 군인 등이 목숨을 잃거나 인질로 붙잡히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특히,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현장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고스란히 공개되면서 충격을 더하기도 했습니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대원들이 무장을 한 채 전동 패러글라이더를 타고 이스라엘 마을로 침투하고 있는 모습. [유튜브 'Al Jazeera English' 채널 캡처]

이에 분노한 이스라엘 정부가 ‘전쟁’을 선포하며 하마스에 대한 강도 높은 공격에 나섰고, 중동 내 시아파 종주국이자 반미(反美) 세력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하마스의 뒷배 이란까지 개입 의사를 강력히 천명하면서 ‘제5차 중동전쟁’이 터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최고조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중동 내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국제 유가 150달러’ 가능성 역시 이 과정에서 불거져 나왔죠. 하지만, 실제 국제 유가의 흐름은 생각보다 크게 요동치지 않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입니다.

이스라엘-하마스戰 국면 국제 유가, 과거 지정학적 리스크보다 안정적

헤럴드경제는 인베스팅닷컴을 통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한 지난해 10월 7일 이후 한 달 간 국제 유가의 흐름에 대해 분석해봤습니다. 분석 대상은 글로벌 벤치마크로 기능해 온 북해산 브렌트유 가격입니다.

이 결과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하루 전 배럴당 84.58달러였던 브렌트유 가격은 개전 한 달 후 81.61달러로 상승은 커녕, 오히려 3.51%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 세계에 원유의 주요 공급처인 중동 지역을 송두리째 뒤흔들 군사 충돌 상황 속에서도 국제 유가는 안정세를 보였다는 것이죠.

전쟁 초반 불확실성이 극대화됐던 시기 기록했던 고점의 유가는 이야기가 다르지 않냐고요? 실제로 브렌트유는 개전 2주째인 지난해 10월 20일 장중 93.79달러까지 오르며 10.89%의 상승률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사실 이 같은 유가의 흐름은 과거 중동 지역은 물론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군사적 충돌 상황과 비교했을 때는 사뭇 잔잔하게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① 제4차 중동전쟁(욤키푸르 전쟁), 1973년 10월 6~25일
지난 1973년 당시 발생한 ‘제1차 석유 파동’ 당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한 주유소에서 점원이 휘발유 재고가 바닥났다는 내용을 알리는 간판을 만들고 있다. [AP]

이 결과 발생한 사건이 바로 ‘제1차 석유 파동’입니다. 이집트를 중심으로 한 아랍군과 이스라엘 간의 군사 충돌이 시작되자 사우디아라비아 등 이슬람권 산유국을 중심으로 한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은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나선 미국과 영국, 일본, 캐나다, 네덜란드 등에 피해를 입히겠다며 원유 감산에 나서는 동시에 가격도 크게 인상했습니다. 1973년 10월 16일 페르시아만 연안 OPEC 회원 6개국은 원유 공시 가격을 배럴당 3.01달러에서 5.12달러로 70%나 인상하겠다고 발표했고, 다음 날엔 아랍석유수출국기구(OAPEC)가 단계적 감산에 돌입하기로 결정했죠. 전쟁이 끝난 후인 같은 해 12월 23일엔 1974년 1월부터 원유 가격을 5.12달러에서 11.65달러로 인상하겠다는 결정을 내놓으며 서방 세계는 일명 ‘오일 쇼크’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②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과 걸프전쟁, 1990년 8월 2일~1991년 2월 28일
지난 1991년 걸프전쟁 당시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를 미국 공군이 공습하고 있는 모습. [유튜브 'Jeff Jones' 채널 캡처]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쿠웨이트에 대한 침공에 나선 공식적 이유엔 ‘석유’ 문제가 걸려 있습니다. 쿠웨이트가 자신들의 석유를 훔쳐가는 것은 물론, 석유를 과잉 공급해 이라크 경제를 위협한다는 것이었죠. 물론, 당시 이란-이라크 전쟁의 종전 후 전비 조달 등으로 막대한 차관상환 부담을 지게 된 후세인 정권이 대내외적으로 경색 상태인 이라크의 국정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며 ‘석유 부국’인 주변 소국 쿠웨이트를 점령하려던 것이 실제 목적이었단 게 학계의 중론입니다. 이 당시 국제 유가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다는 소식만으로 요동쳤습니다. 개전 초기 한 달 간 브렌트유 가격은 37.26%(20.80→28.55달러)나 올랐고요. 고점(31.10달러)과 비교하면 변동폭은 49.52%에 이릅니다.

③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022년 2월 24일~현재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모습. [AFP]

훨씬 더 최근 사건 당시를 돌아볼까요? 미국을 중심으로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등 서방 국가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실제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공에 나설 경우 러시아 경제를 고사시킬 수준의 경제 제재를 가하겠다 공언해왔는데요. 주요 카드 중 하나가 바로 러시아산(産) 원유에 대한 수입 중단, 그리고 ‘가격상한제’ 도입이었습니다. 세계 2위 원유 생산국이던 러시아가 얽힌 지정학적 리스크로 국제 유가는 크게 요동쳤습니다. 개전 초 한 달 간 브렌트유 가격은 22.91%(119.03→139.13달러) 폭등했고요, 고점(139.13달러)까지 변동폭은 43.67%에 달했죠.

러-우 전쟁에 중동 리스크까지 더해졌지만 안정적인 천연가스價

지정학적 리스크가 급부상했음에도 원유 가격보다 더 ‘평정심(?)’을 보이고 있는 주요 화석 에너지원은 바로 ‘천연가스’입니다. 중동은 주요 글로벌 액화천연가스(LNG) 공급지 중 하나죠. 이란과 카타르는 각각 천연가스 생산량 세계 3위, 6위 국가입니다. 이 지역의 지정학적 불안 고조는 천연가스 가격에 대한 상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요.

친(親)이란 성향의 예멘 후티(Houthi) 반군의 모습. [EPA]

하마스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며 이스라엘로 향하는 선박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서방 상선을 무차별적으로 공격 중인 예멘 후티(Houthi) 반군의 군사 행동에 홍해~수에즈 운하를 연결하는 글로벌 물류 대동맥이 막히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미국이 직접 나서 예멘 내 후티 반군 본거지에 대한 공습을 시행하는 등 초강경 대응에 나서며 군사적 긴장은 최고조에 달하고 있죠.

여기에 친(親)이란 민병대의 공격으로 요르단 기지 내 주둔 중이던 미군 3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미국이 ‘보복 타격’을 공언하고 있는 상황이죠. 이 사건으로 인해 미국과 이란 간의 직접적 군사 충돌 우려까지 제기되는 상황입니다. 최악의 경우 이란 부근 호르무즈해협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까지도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미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천연가스 가격은 오히려 하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전날(2023년 10월 6일) MMBtu(25만㎉ 열량을 내는 가스량) 당 3.34달러였던 천연가스 가격은 지난달 31일 2.10달러로 37.13%나 하락했습니다.

사실 천연가스 가격이 가장 심각하게 요동쳤던 시기는 바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초반입니다. 침공 전날(2022년 2월 23일) MMBtu 당 4.62달러였던 천연가스 가격은 불과 한달 뒤 5.40달러로 2배 넘게 올랐고요. 초고강도 경제 제재를 실시하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경제적 지원에 나선 서방 국가를 상대로 러시아가 유럽행(行) 가스관을 잠그며 ‘에너지 무기화’에 박차를 가하던 지난 2022년 8월 22일엔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MMBtu 당 9.65달러까지 치솟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전쟁 전과 비교하면 3~4배나 뛰어오른 셈이죠.

러시아에서 생산된 천연가스를 유럽 각지로 공급하는 주요 파이프라인의 위치. [이코노미스트]

아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일진일퇴 공방전이 2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상황 속에 또 다른 주요 천연가스 공급처인 중동에서 전운이 피어오른 셈인데요. 이런 상황을 복합적으로 고려해본다면 지금의 천연가스 가격의 흐름은 고요해도 너무 고요한 것입니다.

OPEC+ 분열·中 경기 침체 따른 수요 둔화가 원유價 안정 주 요인

대표적인 에너지원인 원유와 천연가스 가격이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①원유

전문가들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OPEC, 여기에 러시아 등 비(非)OPEC 산유국이 더해져 구성한 협의체 OPEC 플러스(+)의 영향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점에서 이유를 찾습니다.

지난해 11월 OPEC+는 국제 유가를 띄워 자신들의 수익을 증대시키고 국제 사회에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강화하겠다는 목적으로 하루 100만배럴로 감산 규모를 늘렸는데요. 오히려 국제 유가는 한 달 뒤 5%가 하락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이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OPEC+ 비회원국들의 증산 탓에 석유 카르텔의 감산 효과가 상쇄돼버린 탓입니다.

[로이터]

OPEC+의 내부 분열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도 이들의 영향력을 축소시키는 요소로 작용 중입니다. 지난해 12월 아프리카 산유국 중 하나인 앙골라가 감산 기조에 불만을 표출하며 OPEC+를 탈퇴했고요. 이라크와 나이지리아 등은 OPEC+의 결의와 정반대로 원유 생산량을 늘리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이라크의 일간 원유 생산량은 409만배럴로 세계 6위, 나이지리아는 134만배럴로 세계 14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런 상황을 두고 “석유 흐름에 큰 차질이 없는 한 올해 석유 시장은 합리적으로 공급이 원활할 것으로 보인다”며 “예상보다 높은 비 OPEC+의 생산량 증가가 석유 수요 증가율을 큰 폭으로 앞지를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IEA가 맥을 짚었듯 원유 수요가 전세계적으로 둔화 조짐을 보이는 점도 국제 유가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는 요소입니다. 특히, 세계 최대 석유 소비국인 중국의 경기 둔화는 이런 흐름을 부채질하고 있죠.

중국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5.2%에 불과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탈출 이후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에 따른 경기 반등이 예상됐지만 부동산 침체와 수출 부진은 물론, 내수 부진까지 겹치며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이 현실화됐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죠.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등 국제 기구는 중국의 올해 성장률을 작년보다 더 낮은 4%대로 낮춰잡고 있습니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전쟁에 올인하며 매파(긴축 선호) 본색을 드러내고 있는 유럽중앙은행(ECB) 덕분에 유로존에서도 ‘0%대 성장’이란 ‘경기 침체’가 본격화 할 수 있다는 전망도 글로벌 원유 소비량이 이른 시일 내 회복세로 전환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에 무게를 싣고 있습니다.

②천연가스

천연가스 가격의 급락 뒤엔 대자연의 영향이 숨어있습니다. 북미 전역과 유럽에 몰아친 ‘북극 한파’의 영향으로 난방용 천연가스 수요가 급증할 것이란 기대감을 자극, 천연가스 가격이 반짝 상승세를 보였었는데요. 이후 기상 예보가 급변하면서 월말부터 기온이 눈에 띄게 상승하면서 천연가스 가격에 대한 하방 압력이 심화됐죠. 주요 가스 수입국들이 겨울에 대비해 재고를 쌓아둔 영향도 가격 하락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입니다.

전균 삼성증권 연구원은 “천연가스에 대한 재고 소진이 시장의 기대만큼 이뤄지지 않으면서 충분한 재고 수준이 가격을 압박한 상황”이라며 “향후 천연가스 가격이 재고 소진 시점 쯤 단기 상승할 수 있겠지만 온난한 기상 예보가 지속되는 한 하락세를 유지하며 MMBtu 당 2.5달러를 밑돌 수 있다”고 봤죠. 최진영 대신증권 연구원은 “최소 5월까지는 엘니뇨 국면인 만큼 단기 하방 변동성이 발생할 수 있다”고도 분석했습니다.

원유·천연가스 생산량 세계 1위 등극한 美, 공급 안전판 역할

글로벌 에너지 가격의 안정을 통해서 슈퍼 파워 미국의 힘을 느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셰일 혁명’을 통해 세계 1위 산유국으로 떠오른 미국이 글로벌 원유·천연가스 공급의 안전판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죠.

IEA는 올해 세계 원유 공급량이 하루 150만배럴 늘어나 사상 최고치인 1억3350만배럴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여기엔 셰일 붐이 최대 수혜자 미국의 원유 생산이 지난해 12월 중순 일간 1330만배럴을 넘어서며 역대 최대치를 경신한 것이 주요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입니다. 일간 900만배럴 내외의 2~3위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 원유 생산량을 크게 웃도는 수준입니다.

미국은 지난해 연간으로도 일일 1292만배럴을 생산하며 사상 최대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이중 셰일오일의 비중은 73%에 이릅니다.

재미난 점은 이 같은 결과가 빚어지게 된 배경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안면몰수(?)’가 깔려있다는 점입니다. 국제 에너지 전문가들은 올해엔 미국이 하루 50만배럴의 원유를 추가 생산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4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볼까요?

"미국 땅에서 더 이상 석유를 시추하지 않겠다"
2020년 대선 당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공약

지금의 현실을 살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은 4년 전 나 자신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취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원유 증산을 적극 독려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 때보다 현재 미국 본토에서 생산하는 원유의 양이 더 많다고 지적합니다.

사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 행정부를 “환경 미치광이들”이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첫날 파리기후협정에 복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기후 변화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과시했고요, 전기차 보급 확대를 위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제정을 자신의 최대 치적으로 내세우고 있기도 합니다. 태양광 등 그린에너지 분야에 거액의 정부 지원금을 쏟아붓고도 있고요.

그런 바이든 대통령이지만 원유에 대해서만큼은 공약 파기에 따른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연방정부 소유지에 있는 대규모 유전인 알래스카주(州) 윌로 유전 채굴을 허가하고, 웨스트버지니아주 파이프라인 건설을 재개시키는데 망설임이 없었기 때문인데요.

미국 알래스카주(州) 윌로 유전의 위치.[BBC]

이유는 결국 ‘표’ 때문입니다. 미국 정계에선 이런 말이 있습니다. ‘휘발유 가격을 잡지 못한 대통령은 절대 선거에서 이기지 못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리턴매치를 앞두고, 주요 경합주에서 열세란 여론조사를 받아들고 있는 가운데 휘발유 가격에 민감한 미국 유권자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라도 바이든 대통령은 증산을 통한 유가 안정에 나설 거란 점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 셈이죠.

이 밖에도 중국과의 패권 경쟁,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견제 등을 위해 우방국의 지지가 절실한 미국 입장에선 원유와 천연가스 증산을 통해 우방국에 안정적으로 에너지원을 공급함으로써 국제 에너지 가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도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입니다.

유가 안정 없인 피벗 개시 맞이하기 힘들다고?

국제 에너지 가격의 흐름은 투자자의 희비를 극명하게 가르고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2주간(1월 17일~2월 1일) 국내 상장지수증권(ETN) 수익률 상위권 명단은 천연가스 ‘곱버스(2배 역방향 추종)’ 상품이 싹쓸이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대신 S&P 인버스 2X 천연가스 선물’의 수익률이 28.07%로 가장 높았던 가운데 ▷미래에셋 S&P -2X 천연가스 선물(27.64%) ▷신한 블룸버그 -2X 천연가스 선물(27.34%) ▷QV 블룸버그 -2X 천연가스 선물(27.08%) ▷한투 블룸버그 인버스 2X 천연가스선물(26.75%) ▷메리츠 블룸버그 -2X 천연가스 선물(26.60%) ▷삼성 인버스 2X 천연가스 선물(26.60%) ▷KB 블룸버그 인버스2X 천연가스선물(26.30%) ▷하나 블룸버그 -2X 천연가스 선물(25.65%) 등 천연가스 선물 관련 곱버스 ETN이 등락률 1~9위를 석권했죠. 반대로 에너지 가격 상승에 베팅한 ETN 상품 투자자들은 20%대의 손실을 떠안게 됐습니다.

한 외국계 자산운용사 고위관계자는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작년 말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후 지정학적 불안 탓에 국제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할 것에 베팅했던 선물 투자자들이 예상 밖의 가격 안정세로 큰 손실을 입기도 했다”는 사례를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1월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종료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AP]

현재 전 세계적으로 군사적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서도 에너지 가격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점은 전 세계 주식 투자자에겐 ‘악몽’이 펼쳐지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이기도 합니다.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억제함으로써 전 세계 주요국 증시 투자자가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피벗(pivot, 금리 인하)이 예상대로 연내 개시될 가능성을 높이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올해 첫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연내 피벗을 기정사실화하면서도 연준의 물가 목표인 ‘인플레이션율 2%대’란 수치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지 여부를 더 장기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할 수 있다며 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면서 “위험 자산의 대표격인 주식 시장이 안정적으로 성장 곡선에 올라타기 위해선 어느 때보다 물가 안정이 중요한 시점이며, 그 중심엔 에너지 가격의 안정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realbighead@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