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니다, 아기 신발, 한 번도 안 신었음…글의 감정은 어디서 오나

한겨레 2024. 2. 2.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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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김진해의 ‘무적의 글쓰기’
화려한 글 말고 정서가 깃든 글
낯선 감각은 흔한 곳에서 찾아야
게티이미지뱅크

전태일 열사의 일대기를 각색한 만화 <태일이>를 그린 최호철 화백이란 분이 있습니다. 그는 항상 온갖 굵기의 연필 꾸러미와 엽서 두 장 크기의 두꺼운 스케치북을 가방에 넣어 둘러메고 다닙니다. 사진가 목에 카메라가 매달려 있듯이, 그는 언제든 그림 그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어느 더운 날, 서울 홍익대 앞 허름한 식당에서 최 화백과 같이 돌솥우동을 먹고 있었습니다. 우동 몇 가락을 먹는데, 그가 갑자기 눈을 반짝거리더니 잽싸게 연필을 꺼내고 스케치북을 펼쳤습니다. 건너편에 앉은 중년 아저씨를 스케치하더군요. 최 화백은 아저씨가 자리를 뜨기 전에 눈과 손을 바지런히 움직여 그림을 그렸습니다. 저도 젓가락질을 멈추고 그가 다 그릴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예술가의 번득이는 창작 현장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저릿해지더군요.

장면 하나가 실감 나게 떠오르도록

그가 그림을 다 그리고 연필을 가방에 넣는 순간, 제가 말했습니다. “최 화백님, 저도 그렇게 하나 그려주세요.” 돌아온 답. “아무나 안 그립니다!”

그 단호한 목소리를 들으며 알았습니다. 제 얼굴은 그림으로 그릴 만큼 특색이 없다는 것을. ‘아무나 안 그린다’는 말을 곱씹게 되더군요. 비록 제 얼굴이 배우 한석규씨를 빼닮긴 했습니다만, 화가에게는 어떤 감정의 격동도 일으키지 못하는 얼굴이었나봅니다.

최 화백의 작품집 <을지로 순환선>에는 서울 지하철 2호선을 타고 다니면서 전철 안, 전철역 주변의 여러 풍경과 사람들 모습이 세밀화로 그려졌습니다. 다양한 표정과 자세, 삶의 굴곡을 가진 수십 명의 사람이 한 화면에 빼곡히 담겼습니다. 식당에서 본 것처럼 그의 손그물에 걸린 인물들을 이리저리 조합해 작품을 완성해나갔을 겁니다. 그들은 마치 대하소설의 등장인물처럼 고유한 성격과 독특한 이력을 지닌 듯했습니다.

화가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하는 이유는 글이란 것도 사람들에게 감정의 격동을 일으켜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입니다. 정보 전달이 목적인 글도 있지만, 우리가 쓰려는 건 감동이 있는 글입니다.

감동은 글로 보여주는 장면에 공감할 때 밀려옵니다. 공감은 남의 감정이나 생각을 자신도 똑같이 느낄 때 생깁니다. 공감을 얻으려면 독자가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한 상상력을 자극해야 합니다. 상상력은 독자의 머릿속에 장면 하나가 실감 나게 떠올라야 꿈틀거립니다. 사실을 말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쓴 글은 어떨까요? 솔직히 말해 독자들이 보내주는 글은 그렇지 않았습니다.(미안합니다. 그래도 끝까지 읽어주세요.) 독자 중에 꾸준히 글을 보내주는 분도 있고, ‘글이 조금씩 나아진다’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잔소리꾼의 눈으로 글을 읽으면서 저는 아직 여러분의 글이 나아진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안타까운 말이지만, ‘재미’가 없었습니다. 감정의 격동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음, 이런 일도 있으셨군’ ‘이런 데가 기억에 남으셨나보네’ 하는 정도입니다. ‘오, 이 글 재미있는데!’ 하는 게 많지 않았습니다. 다른 분이 읽어도 비슷할 겁니다.

그러나 좌절하지 마세요. 나쁜 학생은 없습니다. 나쁜 선생만 있을 뿐. 제 설명이 부족해서입니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얘기는 안 하고, 뜬구름처럼 거창한 얘기만 해서 그럴 겁니다. 이번에 다시 도전해봅니다. 새로운 진도를 나가기보다는 복습하는 시간입니다.

최호철 화백은 언제나 그림 그릴 준비를 하고 다닌다. 언제 어디서나 길거리에서 스친 사람들의 삶의 이력을 그림으로 잡아챈다. 2010년 3월 <한겨레21> 기획 ‘영구 빈곤 보고서’ 표지로 그린 일러스트레이션. 일러스트레이션 최호철

눈, 코, 입에서 더 나아가 실핏줄

장면 제시에 대한 얘기입니다. 지난번 글쓰기 과제인 ‘다시 가고 싶은 장소’로 시작해보죠. 지난번 제 글의 주제는 글의 구성, 즉 글감의 배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글감의 배치를 고려해서 글을 써보시라고 했죠. 글감을 단순히 나열하는 글이 많더군요. ‘학교 가는 길’을 쓴 혜욱님의 글을 예로 들어보죠. 50분이나 걸리는 초등학교 가는 길에 흥미로운 곳이 많아 기억에 남는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면서 무당집, 개울, 미로를 닮은 골목, 학교 정경을 순차적으로 제시했습니다. 등굣길 여정을 쓰므로 글감이 나열되는 걸 피할 수는 없지만, 각 대상의 장면을 떠올리게 하면 더 좋았을 겁니다.

무당집에 대한 기술을 보죠. “집에서 30분쯤 걸어가다보면 무당이 사는 집이 있었다. ‘무당은 정말 귀신과 얘기할까?’라는 호기심에 그곳을 지날 때마다 기웃거렸고, 하굣길에 운이 좋으면 굿하는 장면을 구경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당과 눈이 마주칠 때면 무서워서 제일 먼저 도망쳤다.”

‘굿하는 장면을 구경하기도 했다’고만 하면, 독자는 그 집을 실감 나게 떠올리지 못한다. ‘대나무 깃대에 붉은 깃발과 하얀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는 식의 서술로 독자가 무당집 생김새를 상상하게 해야 한다. 사진은 무당의 내림굿 현장. 한겨레 자료

자, 여기서 중요한 걸 놓쳤습니다. 바로 ‘무당집’ 자체입니다.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무당집이 기억난다면, 그건 글쓴이에게 중요한 글감이었겠죠. 그런데 ‘무당이 사는 집이 있었다’ ‘지날 때마다 기웃거렸다’ ‘굿하는 장면을 구경하기도 했다’고만 하면, 독자는 그 집을 실감 나게 떠올리지 못합니다. ‘대나무 깃대에 붉은 깃발과 하얀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거나 ‘흰색 여닫이문에는 붉은 글씨로 卍자가 크게 쓰여 있었다’는 식의 서술로 독자가 무당집 생김새를 상상하게 해야 합니다. 그걸 실마리 삼아 그 집에 얽힌 사건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개울가’나 ‘골목길’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을 했다고 말하기 전에, 그곳이 어떻게 생겼다는 걸 먼저 알려줘야 독자도 그곳에서 함께 물장난도 치고, 미로를 닮은 골목에서 친구들과 빨리 빠져나오기 시합을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문장에서 장면을 떠올리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자기 마음을 사로잡은 글감에 대해서는 장면을 보여줘야 합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눈이 둘 있고, 코가 하나 있고, 입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면 얼마나 허탈하겠습니까. 헛웃음이 나오죠. ‘그는 잘생겼다’라는 문장도 비슷합니다. 더 나아가야 합니다. ‘실핏줄이 보이는 그의 뺨은 그가 이 추한 세상에서도 여전히 순수함을 옹호하고 있음을 웅변하고 있었다’는 식으로요.

단 여섯 단어에서 느껴지는 글의 정서

저는 글의 주제보다는 글의 정서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글이 따뜻한가 차가운가, 긍정적인가 비관적인가, 기쁜가 슬픈가, 경쾌한가 무거운가, 격정적인가 차분한가, 화려한가 담백한가 하는 느낌 말입니다. 그런 정서를 갖게 하려면, 독자를 가만히 놔둬서는 안 됩니다. 머릿속에서 뭔가를 상상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식당에 가득 앉은 손님 가운데 눈에 띄는 사람 하나를 찾아 그 사람만 그리듯이 글도 그래야 합니다. 독자의 정서를 불러일으키려면 주제와 직접 관련 있는 캐릭터를 장면 속에 등장시켜야 합니다. 저처럼 평면적인 얼굴은 그림의 대상으로 포착되기 어렵습니다.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군중 속에 있는 사람 중 하나일 뿐입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기억하는 사람과 사건이 다른 사람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면 안타까운 일이죠.

영화의 주인공은 한 명(또는 두 명)이듯이, 글에서도 하나의 캐릭터가 주인공이어야 합니다. 나머지는 조연입니다. 조연은 주인공이 주제를 향해 달려가도록 돕는 역할을 하죠. 주제를 드러내지 못하는 건 과감히 지우거나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글감을 여러 개 떠올렸다고 그것들이 모두 같은 무게를 차지하면 안 됩니다. 나를 사로잡는 장면을 집중적으로 보여줄 때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습니다.

<노인과 바다>를 쓴 미국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영어로) 여섯 단어로만 된 소설 한 편을 쓸 수 있는지 지인들과 내기했다고 합니다. 당연히 그는 내기에서 이겨 판돈을 다 챙겨갔죠. 그가 쓴 여섯 단어짜리 소설을 한번 보죠.

팝니다: 아기 신발, 한 번도 안 신었음.(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어떤가요? ‘상상력’이 자극되나요? 슬픔의 감정이 밀려오나요? 한 문장인데도 독자는 나머지 공백을 상상력으로 채웁니다. 감정이입을 잘하는 사람은 눈물이 날지도 모릅니다. 기쁨과 기대의 대상이던 아이에게 어떤 비극적 상황이 벌어졌을지 상상하게 되죠. 출산 중에 아이가 잘못됐을 수도 있고, 교통사고로 산모와 아이가 모두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한마디로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건 글쓰기 달인의 경지이고요.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은 당장 저렇게까지는 못 씁니다. 그 수준에 도달하려 꾸준히 애쓸 뿐입니다. 조금 긴 글을 보죠. 여러분 머릿속에 장면 하나가 그려지는지 생각하며 읽어보세요.

사람의 죽음을 가까이서 지켜본 일이 있었다. (중략) 아직 살아 있는 나는 죽어가는 그를 바라보았고, 그는 마지막 망막의 기능으로 아직 살아 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마지막 망막에 비친 살아 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마지막 망막에 비친 살아 있는 나의 모습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죽어가는 그와 마찬가지로, 한 줌의 공기나 바람은 아니었을까. 그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무서웠다. 그와 나는 마지막 시선을 교환하면서 작별했고, 차가운 흙구덩이로 들어가야 하는 것은 오로지 그의 몫이었다. 그리고 또 나의 몫이기도 할 것이었다. 다 똑같이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그 무서움은 공유되는 것이 아니고 각각 저마다의 몫일 뿐이다. 나는 춥고 어두운 흙구덩이로 들어가야 할 일이 무섭다. ―김훈, ‘무사한 나날들’ 중에서

이 글은 죽음의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을 기술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다른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죽어가는 사람을 바라보며, 그의 눈에 비친 자기 모습을 상상하게 됩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글쓰기로 넘어가봅시다. 다음 두 글을 비교해보세요.

① 우리 집 강아지 미르가 자기 집에서 죽어 있었다.

② 동그란 회색 방갈로 모양의 개집, 미르는 낮잠을 늘어지게 자듯이 네 다리를 쭉 뻗고 죽어 있었다. 미처 누울 자리를 덜 찾아간 듯, 머리를 어두운 방 깊숙이 밀어넣고는 엉덩이를 밖으로 내밀고 납작하게 누워 있었다.

두 글은 모두 강아지가 죽은 장면을 썼지만, 드러내는 감각은 다릅니다. ①번 문장은 글쓴이의 강아지가 죽었다는 정보만 전달할 뿐입니다. 이에 비해 ②번 문장은 독자의 머릿속에 강아지가 어떤 자세로 죽어 있는지 하나의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게다가 ‘미처 누울 자리를 덜 찾아간 듯’이나 ‘납작하게 누워 있었다’와 같은 표현으로 강아지의 죽음을 대하는 글쓴이의 비극적 감정도 느낄 수 있습니다.

경기도 고양시 동물보호센터에서 2023년 3월27일 반려인 품에 처음 안긴 반려견 땅콩이. 이정우 사진가

우리가 다루는 글감은 대부분 ‘흔한’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삶도 겉보기엔 다 흔하디흔합니다. 날마다 반복되는 게 ‘일상’이고, 흔히 벌어지는 일이라 ‘일상다반사’입니다. 반려동물의 죽음도 ‘흔한’ 일입니다. 우리가 쓰는 문장도 ‘흔한’ 문장입니다. 흔한 것일수록 장면을 실감 나게 그려내지 않으면, 독자는 그 흔한 이야기를 정보 처리하듯 순식간에 지나쳐버립니다.

‘아버지의 구두가 낡았다’는 문장은 정보만 전달할 뿐이지만, ‘아버지의 구두 뒷굽은 닳아서 엄지손가락을 넣어도 될 정도였다’고 하면, 독자는 머릿속에서 낡은 구두 뒷굽에 손가락을 집어넣는 모습을 상상할 겁니다. 멋진 문장을 쓰라는 게 아닙니다. 장면을 상상하게 하는 글을 쓰라는 말입니다.

‘낯섦’은 흔한 것에서 발견되는 것

얼굴을 특이하게 만든답시고 입을 두 개로 늘리거나 눈을 하나로 합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얼굴은 다 엇비슷하지만, 그 속에 독특함이 있습니다. 최호철 화백이 좀더 애정 어린 눈으로 제 얼굴을 쳐다봤다면, 제 아랫입술 오른쪽에 검푸르게 튀어나온 점을 볼 수도 있고, 몇 가닥 나지도 않는 수염 가운데 뜨문뜨문 돋아난 흰 털에 흥미를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내 글이 다루는 대상은 흔한 것이지만, 그 속에서 독특한 면을 보여줘야 합니다. 흔한 것 속에 독특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인상 깊은 장면을 멈춘 듯이 세밀하게 보여줘야 합니다. 낯섦은 흔한 것에서 발견합니다. 흔한 것 속에서 낯선 것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장면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러면 감정이 요동치는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습니다.

김진해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말끝이 당신이다> 저자

[독자 글]

‘다시 가고 싶은 장소’라는 주제로 다섯 분이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연말연시라 바빴을 텐데도 글을 보내준 다섯 분은 올해 넘치도록 복을 받으실 겁니다. 특히 글감을 어떻게 배치했는지, 구성이 달라졌다면 왜 그렇게 바꿨는지도 함께 적어달라고 했는데 네 분이 그렇게 해주셨습니다. 글 쓸 때마다 구성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다보면 글의 통일성과 완성도가 높아질 겁니다.

혜욱님은 멀리까지 걸어가야 하는 초등학교 등굣길에 만나는 여러 정경이 그립다고 했고, 유림님은 초등학교 때 이사해서 가족 모두가 잠시 행복했던 반지하 신축 빌라를 그리워했습니다. 체스카님은 그리스 산토리니의 석양이, 정선님은 몽골에서 본 은하수와 코스모스가 다시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담이님은 교복 입고 다니던 고등학교 교실을 그리워하더군요. 대학생활이 허전한가봅니다.

다섯 편의 글에 공통점이 보이더군요. 글감 가운데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선명하게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글은 어떤 감정을 일으켜야 한다고 했는데, 그러려면 그 감정을 일으키는 주인공(매개체)을 선택해 그 모습을 다른 글감보다 훨씬 자세하고 도드라지게 기술해야 합니다. 그 글을 읽는 사람들 머릿속에도 그 장면이 그려지게 해줘야 합니다. 곧바로 글감에 얽힌 사건을 쓰지 않기를 바랍니다. 장면을 구체적으로 그려줘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움직임)도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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