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던도 23에 집착 … 숫자가 통제하는 일상

송경은 기자(kyungeun@mk.co.kr) 2024. 2. 2.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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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발전으로 늘어나는 집계
맥박 수부터 SNS 팔로어까지
數에 스트레스 받는 현대인들
숫자만으론 질적 판단에 한계
누군가에겐 불쾌감·좌절 안겨
우리 삶 지배당하지 않으려면
맹신보다는 비판적 접근해야

실제 나이와 신체 나이가 다르듯, 같은 나이대라도 자신이 스스로 체감하는 나이인 '심리적 나이' 역시 사람마다 다르기 마련이다. 이런 심리적 나이는 걷는 속도와 나아가 수명에도 영향을 미친다. 실제 나이와 무관하게 심리적 나이가 어릴수록 더 빨리 걷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보행 속도는 혈액순환과 호흡기부터 근육, 관절, 골격에 이르는 모든 요소에 영향을 받는다. 즉 걷는 속도가 빠를수록 건강하게 오래 살 가능성이 높다. 아직 충분히 젊은데도 '나이가 많이 들었다'고 인식하는 사람은 더 빨리 죽음을 맞고, 지긋한 나이에도 '아직 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더 오래 산다는 얘기다.

신간 '매일, 더, 많은 숫자의 지배'는 경제학자인 미카엘 달렌 스웨덴 스톡홀름경제대 경영·조직학과 석좌교수와 여러 스타트업을 거치며 기술로 인한 인간 행동의 변화를 추적해온 헬게 토르비에른센 노르웨이경제대 전략·경영학과 교수가 숫자가 어떻게 우리 삶을 바꿔놨는지 지난 수년간 연구해낸 결과물이다.

연구실 실험부터 설문과 문헌 조사, 현장 연구, 인터뷰, 관찰에 이르는 모든 연구 결과를 총망라했다. 수의 역사로 시작해 숫자가 우리 몸과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성과나 인간관계, 사회에 어떻게 파고들었는지 집요하게 파헤친다.

매일, 더, 많은 숫자의 지배 미카엘 달렌·헬게 토르비에른센 지음 이영래 옮김, 김영사 펴냄, 1만5800원

우리는 매일 숫자에 파묻혀 산다. 기하급수적인 기술의 발전으로 측정하고 집계 가능한 숫자는 해를 거듭할수록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이제는 24시간 내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언제 어디서나 기록하고 저장할 수 있는 기기와 서버, 클라우드 시스템이 있다.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순간순간 우리 몸의 반응을 맥박 수 등으로 살핀다. 숫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연결된 가상세계에서도 중요한 지표가 된다.

소위 '인플루언서'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평범한 사람들의 차이는 팔로어 수가 결정한다. 사람들은 물건 하나를 살 때도 리뷰 수와 평점을 살핀다. 오죽하면 리뷰 조작 업체들까지 등장하겠는가.

숫자가 이야기하는 정보는 때로는 유용하지만 때로는 불쾌감을 준다. 일례로 숫자는 언제 시도해야 임신 가능성이 높은지, 몇 분 뒤 나가야 버스를 바로 탈 수 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100m 달리기를 몇 초 안에 끝냈는지로 순발력 같은 신체 능력을 가늠할 수 있다.

수학 성적과 등수는 학생들의 학습 성과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나타내준다. 이런 숫자들은 경쟁을 통해 더 나은 성과로 이어지도록 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불필요한 좌절감을 안겨줄 수도 있다. 스마트 워치가 측정해주는 체지방률도 마찬가지다. 운동을 지속하게 해주기도 하지만 과도한 스트레스를 주기도 한다.

숫자는 알게 모르게 인지에 많은 영향을 준다. 책에 소개된 한 일화가 있다. 1995년 미국프로농구(NBA) 리그에서 닉 앤더슨(올랜도 매직)은 당시 전설적 존재였던 마이클 조던(시카고 불스)의 공을 빼앗을 수 있었던 이유가 상대의 바뀐 등번호(45번)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만약 23번(조던이 시카고 불스의 NBA 3연승을 이끌어냈을 당시 등번호)이었다면 절대 할 수 없었을 것이란 설명이다. 다음 시즌 조던은 등번호를 23번으로 택했고 다시 세계 최고 선수의 자리에 올랐다. 시카고 불스 역시 또 한번 3연패를 달성했다. 과연 우연일까. 등번호가 낮은 선수의 경기당 평균 득점이 등번호가 높은 선수보다 많다는 통계도 있다.

저자들은 숫자가 우리 삶을 송두리째 지배하지 않도록 하려면 비판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분명한 것은 숫자가 매우 객관적이고 공평한 것 같지만 늘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냉정하기 때문에 폭력적이고 숫자를 넘어선 질적 판단을 하지 못하게 할 때도 있다. 이 책을 덮고 나면 우리는 모두 숫자의 미로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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