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들고 튕겨"… 현란한 손놀림, 화려한 선율에 푹 빠지다
"나랑 같이 기타 치고 싶어?"
지난 연말 내한해 단독 콘서트를 연 기타리스트
노엘 갤러거의 무대 위 물음에 MZ세대가
열광했다. 그가 몸담았던 영국 밴드 오아시스가
결성된 건 1991년. '제2의 비틀스'로 불리며
브릿팝의 부흥기를 이끌었지만 2009년 해체됐고,
어느덧 노엘의 나이도 올해로 57세다.
그러나 관객들은 흘러간 숫자는 무의미하다는 듯
감미로우면서도 거칠고, 반항적이다가도
따뜻한 기타 연주에 사로잡혔다. 왕년의 밴드
사운드가 한 세대를 지나 바다 건너 한국 MZ세대에
'레전드'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한 장면이었다.
MZ세대가 기타 소리에 푹 빠졌다. 위대한 작곡가 베토벤이 "기타는 작은 오케스트라"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음악의 3요소(가락·화성·리듬)를 혼자서도 구사하는 만능 악기다. 우리나라에선 7080 '쎄시봉'과 록밴드 시절을 풍미했던 그 악기가 더 다채롭고 힙하게 음악·공연계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특히 유행에 민감한 K팝 음악에서도 기타가 주요 사운드로 쓰이는 경향이 최근 두드러진다. 인기 걸그룹 에스파는 1월 서태지와 아이들의 1995년 4집 앨범 수록곡 '시대유감'을 리메이크해 냈다. 얼터너티브 록 장르로 에너지 넘치는 밴드 사운드가 특징이다. 지난해 11월 실력파 걸그룹 키스오브라이프가 발표한 신곡 '배드 뉴스'도 도입부부터 강렬한 기타 리프로 시작해 인상 깊은 록 사운드를 들려줬다.
보이그룹 라이즈는 아예 기타를 소재로 한 곡 '겟 어 기타'로 지난해 9월 가요계 출사표를 던졌다. '원하는 게 있다면 기타를 잡고 연주해봐'라는 가사와 펑키한 리듬이 돋보이는 팝 장르로, 멤버들은 기타를 연주하는 듯한 손동작을 만들며 춤을 추기도 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대표 히트곡 중 하나인 걸그룹 르세라핌의 '언포기븐'엔 미국 거장 기타리스트이자 프로듀서 나일 로저스가 기타 반주를 피처링해 화제가 됐다.
이처럼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타가 관심을 끄는 데엔 최근 대중음악계에 부는 복고 열풍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임희윤 음악 평론가는 "기타, LP판 같은 소품이 화보·뮤직비디오에 등장하다가 이제 사운드까지 쓰이고 있는 흐름"이라고 분석했다. 정확한 음정을 내면서도 특유의 거칠고 투박한 사운드가 기타만의 매력이다.
임 평론가는 "요즘은 전자적으로 모든 소리를 만들 수 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비균질적인 아날로그 소리가 듣는 사람에게 '힙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기타 줄과 지판 사이 마찰로 발생하는 특유의 파찰음이 고유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엔데믹 이후 콘서트, 록 페스티벌, 인디 클럽 등 다양한 대면 공연이 활성화되면서 에너지를 발산하는 기타·밴드가 팬덤몰이를 하는 경향도 나타난다. 기타는 지판이 정면을 향하고 있어서 연주자가 과시적인 퍼포먼스를 하기에 최적화된 악기다.
피아노 같은 악기는 먼 거리와 시야 탓에 현장에서 연주자의 손기술을 세세히 보기 힘든 반면, 기타는 빠르게 움직이는 손가락, 몸통을 치는 리듬 등의 연주 기술이 주요한 볼거리다. 기타 목을 치켜올리거나 머리를 흔드는 등의 몸짓도 자주 볼 수 있다. 준수한 외모와 실력을 갖춘 아이돌형 밴드도 꾸준히 활동 중이다.
곡 '외톨이야' '사랑 빛' 등으로 사랑받았던 데뷔 15년 차 3인조 꽃미남 밴드 씨엔블루는 올해 3월부터 태국 방콕 등 아시아 6개 지역 투어에 나선다. 멤버 군 복무 등의 공백기 이후 7년 만의 투어다. 데이식스도 곡 '예뻤어'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등을 히트시키며 탄탄한 팬층과 대중적 인지도를 고루 거느린 대표 아이돌 밴드다.
이 밖에도 방송 오디션을 통해 결성된 루시, 올해 미국 최대 음악 축제인 코첼라 페스티벌 무대에 서는 더로즈, 유튜버 김계란이 기획한 걸밴드 큐더블유이알(QWER) 등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인디밴드 중에서도 실리카겔, 아도이, 쏜애플, 나상현씨밴드, 유다빈밴드, 터치드 등 아이돌 부럽지 않은 인기를 끌며 차세대 인디신을 주도하는 밴드가 많다. 최근 한 방송 오디션을 통해 무명 가수에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가수 홍이삭, 소수빈, 이젤 등도 기타 한 대 메고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며 '싱어송라이터'의 면모를 각인시켰다.
이처럼 눈과 귀를 사로잡는 악기이지만, 기타도 다 같은 기타가 아니다. 나무 몸통과 쇠줄로 소리를 내는 통기타, 전자음을 내는 일렉트로닉 기타가 대중 음악의 양대 산맥이라면, 콘서트홀에는 따뜻하고 은은한 소리를 내는 클래식 기타가 있다.
우리나라에선 통기타에 가려 인지도가 낮은 편이지만 기타의 본고장인 스페인을 비롯해 유럽·일본 등에선 큰 사랑을 받는 소리다. 점차 국내 클래식 기타리스트 저변이 넓어지면서 관련 공연도 늘고 있다.
먼저 2월 2일엔 여성 기타리스트 박규희가 예술의전당에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로드리고의 '아랑후에스 협주곡'을 연주했다. 2009년 벨기에 프렝탕 콩쿠르 등 유수의 국제 콩쿠르를 석권한 실력자다.
3월엔 기타리스트 조대연을 예술의전당 '스페셜 더 넥스트' 기획 공연을 통해 독주회로 만날 수 있다. 지난해 9월 스페인의 권위 있는 타레가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거머쥔 주인공이다. 클래식 기타 레퍼토리 중 가장 유명한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을 쓴 작곡가 타레가를 기리는 상징적인 대회이기도 했다.
박규희는 매일경제와 만나 기타의 매력에 대해 "뒷골목 집시들이 연주하던 악기였을 만큼 소리가 소박하고 따뜻하다"며 "클래식 기타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주법도 많아 소리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 남미를 대표하는 파라과이 출신 클래식 기타 뮤지션 아구스틴 바리오스의 곡을 강력 추천하며 "사랑에 대한 감정을 시적이고 아름답게 풀어내 빠져들기에 좋은 곡"이라고 소개했다.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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