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사람들' 이성진·스티브 연 "인생은 아름답고 희한...과거의 내게 '괜찮아' 말해주고파"

신진아 2024. 2. 2.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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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에미상 트로피 든 이성진 감독과 스티븐 연 (로스앤젤레스 AFP=연합뉴스) 1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피콕 극장에서 열린 제75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로 미니시리즈 부문 감독상과 작가상을 받은 이성진 감독(오른쪽)과 남우주연상을 받은 스티븐 연이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성난 사람들'은 작품상과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등 8관왕을 차지했다.

[파이낸셜뉴스] “괜찮아. 마음 편히 먹어. 다 괜찮아질 거야.”

아시아계 최초로 ‘방송계 오스카’ 에미상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8관왕의 주인공이 된 ‘성난 사람들’의 이성진 감독과 배우이자 책임프로듀서로 활약한 스티브 연이 과거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이같이 답했다. 이성진 감독 역시 “저도 괜찮다고 말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창작 작업을 하다보면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느라 과정을 즐기는 법을 잊는데, 나는 운 좋게도 (책임프로듀서였던 두 배우) 스티브 연과 앨리 웡 등 가까운 친구들과 작업해서, 내가 현재에 집중하게 도와줬다”고 부연했다. 두 사람은 이날 50분간 이어진 인터뷰 내내 자연스런 미소로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를 드러내 눈길을 끌었다.

스티브 연 "깊이 연결돼 있다는 유대감 느껴 기뻐"

넷플릭스 10부작 드라마 ‘성난 사람들'은 사소한 사건으로 촉발된 현대인의 분노를 세밀하게 그려낸 블랙코미디로 제75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미니시리즈·TV영화 부문 작품상(A24)을 비롯해 감독상(이성진), 작가상(이성진), 남우주연상(스티븐 연), 여우주연상(앨리 웡)을 수상했다. 캐스팅상과 의상상, 편집상까지 합치면 8관왕이다.

이 걸출한 시리즈를 쓰고 연출하고 제작한 이성진 감독은 앞서 작가상 수상 당시 "처음 LA에 왔을 때 돈이 없어서 통장 잔고가 마이너스 63센트였다"면서 "제가 이런 것(트로피)을 들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고 밝혀 녹록치 않은 여정 끝에 지금의 자리에 올랐음을 드러냈다. 특히 이 작품은 남녀주연상을 받은 한국계 스티브 연과 중국·베트남계 앨리 웡 등 아시아계 배우와 제작진이 함께 뭉쳐 만든 작품이라는 점에서 할리우드 내 아시아 창작자의 힘을 입증했다. 또한 아시아인들이 미국 사회 내 아시아인의 목소리를 직접 낸 드라마로 전세계인의 공감을 얻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넷플릭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스티브 연은 다시 한번 수상 소감을 묻자 “일단 너무 감사하다. 이 작품에, 이런 주제들을 표현할 수 있는 작업의 일부가 돼 무척 감사하다. 그리고 이렇게 굉장히 많은 나라들이 깊이 연결돼 있고, 우리가 인류로서 깊이 연결돼 유대감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순간들이 무척 기쁘다”고 말했다.

에미상 8관왕을 예상했냐는 물음에 이성진 감독은 “한쪽에는 항상 나를 괴롭히는 자기 의심을 그리고 다른 한쪽에 고삐 풀린 나르시시즘(자기도취)을 그리면 중간에 나오는 교집합이 예술이라는 이야기가 있다"며 "나도 두 개를 오간다. 어느 날은 아무도 (내 작품에) 관심 없다고 생각했다가 어느 날은 모든 상을 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중간 어디 쯤에 도달한 것 같다”고 답했다.

스티븐 연 역시 "(수상을) 예상하는 건 쉽지 않았다. 희망할 뿐"이라며 “그런데 제가 굉장히 기쁘게 생각했던 것은 이것을 만들어가는 모든 과정 중에 함께했던 우리 모두가 서로 아주 깊이 관여하고 서로가 어떤 생각인지를 아주 잘 알고 그 과정 안에 푹 빠져 있었다는 것”이라고 돌이켰다.

“결과적으로 가장 깊이 느낀 건 감사함이었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이야기에 사람들이 뜨겁게 반응해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에미상 수상 이후 달라진 게 있을까? 이성진 감독은 “되게 피곤하다”고 한국말로 답한 뒤 “물론 아주 좋다. 내가 속한 공동체, 동료들, 내가 존경한 예술가들에게 인정받는 것은 기쁜 일이다. 그리고 굉장히 겸허한 마음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내가 처음에 (이 일을) 시작했을 때 어땠는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든다. 스티븐이 얘기해준 것처럼 사실은 감사하다는 마음이 가장 큰 것 같다. 굉장히 잠깐이어도 나의 삶 속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알건 알지 못하던 나에게 영향을 주었는지를 생각해보면 정말 겸허하고 감사한 마음이 요즘에 가장 많이 든다”고 부연했다.

"나의 어두운 내면, 타인에게서 볼 때 서로 이해하게 돼"

이성진 감독은 앞서 시상식에서 도로에서 난폭 운전을 당한 자신의 경험담을 녹여낸 이 작품과 관련해 그때 그 사람에게 감사하다고 밝혀 웃음을 자아냈다. 이 감독은 “인생은 정말 희한한 것 같다”며 “새삼스럽게 그 사람이 그 순간에 그렇게 ( 난폭하게 행동하지 않았다면) 이 작품이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삶은 아름답고도 희한한 것 같다”고 부연했다.

또 ‘성난 사람들’이 전 세계 대중을 사로잡은 이유로 “(시청자들이) 등장인물들에게서 자신들의 일부를 봤기 때문이라고 본다”며 “스티브 연과 초기부터 많이 한 얘기인데, 마음 깊은 곳에 감춰져있던 어두운 부분을 굉장히 솔직하게 조명하는 작품을 만들자고 했다. 그 어둠을 서로 바라보게 되면서 비로소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내 내면의 어둠을 남에게서 우리가 볼 때 비로소 서로를 받아들이는 과정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부분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가닿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스티브 연은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며 맞장구쳤다.

이 감독은 과거 미국 이름 '소니 리'(Sonny Lee)로 활동했다. 그러다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오스카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할 때 미국인들이 그들의 이름을 정확히 발음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고 지금의 한국식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미국에서 한국계로 살아온 경험이 이번 작품에 어떻게 반영됐는지 묻는 말에 "비록 전면에 내세우진 않았어도 서사에 녹아든 것 같다"고 답했다. 이어 "제가 앞으로 만들 작품 속에도 담길 것"이라고 말했다.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는 영화 안에도 (경험을) 담아내고 싶다."고 덧붙였다.

극 중 한국계 미국인 도급업자 대니 조(한국명 조성현)을 맡아 열연한 스티븐 연은 “(제가 연기한) 대니는 여러 가지 모습의 수치심을 집약한 인물이 아닐까 생각했다"며 "대니의 차별점은 그가 몹시 무력하고 통제력이 없는 인물이라는 것"이라며 "나 역시 내가 무력하다고 느낄 때 가장 불안하기 때문에 그런 상황 속의 감정을 굉장히 공감했다"고 말했다.

"무력한 사람을 연기해도 배우 입장에선 통제력을 갖고 연기하나, 대니는 그렇게 접근하면 안됐다. 온전히 대니에게 녹아들어 배우로서 통제력을 잃고 모든 것을 내려놔야 하는 캐릭터였다"고 비교했다.

이어 "내가 수상 소감에서도 이야기했듯 (스태프 중 한 명인) 앤드류가 '절대로 대니를 포기하지마'라고 했는데, 대니를 포기한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포기하는 것과 같기 때문인 것 같다. 궁극적으로 우리 모두가 원하는 것은 있는 모습 그대로 나를 이해받고 사랑받고 수용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것은 내가 어떤 인종, 나이, 성별, 나아가 성정체성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차별받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같을 것이다.

[방송화면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방송화면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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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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