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공공기관 해제해도 노벨상 수상자가 올까

이병철 기자 2024. 2. 2. 15:5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국내 최고의 과학 인재를 양성하는 4대 과학기술원의 공공기관 지정이 해제된 지 1년이 지났다.

우수한 인재를 영입할 수 있도록 총인건비와 정원 규제를 푼다고 하지만, 앞서 공공기관에서 풀려난 과학기술원마저도 답답한 상황에서 출연연이 혁신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지 물음표가 붙는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병철

국내 최고의 과학 인재를 양성하는 4대 과학기술원의 공공기관 지정이 해제된 지 1년이 지났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과기원들은 해외 석학을 국내로 데려올 수 있게 됐다며 환영의 목소리를 냈다. 과연 1년이 지난 지금, 얼마나 많은 해외 석학이 한국으로 왔을까. 정답은 ‘제로’다.

1년은 너무 짧다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과학기술원 내부에서도 기간이 문제가 아니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구조적인 한계로 앞으로도 목표 달성은 어렵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과학기술원 관계자는 “싱가포르의 경우 해외 석학들을 초빙할 때 가족들을 위한 혜택도 제공하고 있다”며 “한국은 해외 석학이 오더라도 그 자녀를 국제 학교에 입학시키는 것조차도 어렵다”고 말했다. 다른 과기원 고위관계자는 “해외에서 유명한 연구자를 데려오려면 그 배우자에게도 교수나 연구원 자리를 줘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이런 혜택을 제공할 수가 없다”며 “이런 문화적인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해외 석학을 한국에 불러오는 건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근무하는 한 외국인 연구자는 미국에 혼자 지내는 딸을 두고 한국에 왔다. 심지어 그가 한국에 올 때 딸은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어린 딸을 두고 온 이유를 묻자 “교육상의 이유”라는 짤막한 답변만 남겼다. 과연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아 온 석학들이 자신의 자녀 교육 문제를 생각했을 때 쉽게 한국행을 결심할 수 있을까.

우수한 학생 인력도 부족하다. 대학의 연구는 대부분 학생들이 수행한다. 교수가 두뇌라면 학생들은 팔, 다리를 맡아 실제 실험을 하는 구조다. 얼마나 우수한 학생들이 있느냐가 연구의 질을 좌우하는 셈이다. 그러나 외국인 연구자와 소통할 수 있으면서 연구도 잘하는 학생은 많지 않다. 과학기술원이나 포스텍 같은 연구중심대학 마저도 영어로만 소통하는 글로벌 캠퍼스는 요원한 상황이다.

경직된 연구 문화, 정부 정책에 휘둘리는 연구 과제 방향성처럼 문화적인 문제도 있다. 심지어 정부기관에서 사용하는 문서 작성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데 불편함을 느껴 외국에서 사용하는 ‘워드’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 써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HWP’를 한국에서 처음 접하고 당황했다는 연구자들이 적지 않은데, 여전히 많은 정부 문서가 ‘HWP’가 기본이다. 조선비즈가 만난 외국인 과학자들은 하나같이 “올해 정부 R&D 예산 삭감이 해외 과학자들에게 불안감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정작 정부는 해외와의 연구 협력을 강조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정부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전략기술 연구 성과를 내겠다는 목표로 출연연의 공공기관 지정까지 해제했다. 우수한 인재를 영입할 수 있도록 총인건비와 정원 규제를 푼다고 하지만, 앞서 공공기관에서 풀려난 과학기술원마저도 답답한 상황에서 출연연이 혁신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지 물음표가 붙는다.

며칠 전에는 포항공과대학(포스텍)이 1조2000억원에 달하는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해외 석학을 데려오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밝히고는 있지만,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국제학교 하나 없이 해외 석학을 어떻게 영입하냐는 자조섞인 반응부터 나왔다. 이런 문제는 대학이나 출연연이 혼자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공공기관에서 풀어줬다고 끝이 아니다. 이제 시작이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