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니코틴 살인' 징역 30년→무죄…"합리적 의심 해소 돼야"
"범행 동기도 입증 안 돼…극단선택 가능성도"
남편에게 니코틴 원액을 탄 미숫가루 등을 먹여 살해한 혐의로 징역 30년을 선고받은 아내가 파기환송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2일 수원고법 형사1부(박선준 정현식 강영재 고법판사)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A씨의 파기환송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행을 저질렀다고 판단할 만큼 합리적인 입증이 되지 않았다고 결론내렸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피해자 말초 혈액에서 검출된 니코틴 농도에 비춰볼 때 흰죽과 찬물을 이용했다면 고농도 니코틴 원액이 필요해 보인다"며 "수사기관은 피고인에게 압수한 니코틴 제품의 함량 실험을 하지 않았고, 압수된 제품이 범행에 사용된 것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어 "니코틴을 음용할 경우 혓바닥을 찌르거나 혓바닥이 타는 통증이 느껴져 몰래 음용하게 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다는 게 공통된 전문가 의견"이라며 "의식이 뚜렷한 피해자에게 니코틴이 많이 든 물을 발각되지 않고 마시게 하는 것이 가능한지 의문"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오랜 기간 내연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있고, 가정의 경제적 문제와 가족 문제가 있었던 점 등 정서가 불안정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타살이 아닌 극단선택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또 "피해자가 사망함으로써 피고인이 얻을 재산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피고인이 어린 자녀를 두고 남편을 살해했을 만한 동기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판단했다.
"피고인 범행 저질렀다는 합리적 입증 어려워"
A씨는 2021년 5월 26일 오전 남편인 피해자에게 니코틴 원액을 넣은 미숫가루를 먹이고, 저녁엔 니코틴 원액을 넣은 흰 죽을, 다음날 새벽엔 니코틴 원액이 들어간 물을 마시게 해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피해자는 최근 몇 년간 흡연을 하지 않았으나 사인은 급성 니코틴 중독이었다. 여기에 검찰은 A씨가 내연관계로 지낸 남성이 있었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중 남편의 사망보험금 등을 노리고 살해했다고 판단했다.
반면 A씨 측은 피해자인 남편이 극단 선택을 했을 가능성을 주장하는 등 범행을 부인했다.
1심 재판부는 A씨의 살인 혐의를 인정하고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사인은 급성 니코틴 중독으로 밝혀졌는데, 피해자가 흰죽을 먹은 뒤 보인 오심, 가슴 통증 등은 전형적인 니코틴 중독 증상이라고 볼 수 있다"며 "피고인은 액상 니코틴을 구매하면서 원액을 추가해달라고 했고, 이를 과다 복용할 경우 생명에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등 피해자 사망 전후 사정을 볼 때 3자에 의한 살해 가능성은 작다"고 판단하며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다만 2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A씨가 준 미숫가루와 흰 죽을 먹고 통증을 호소했다는 혐의에 대해선 무죄로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응급실로 옮겨졌을 때 채취한 혈액은 보관 기관이 경과돼 폐기됐다"며 "피해자가 미숫가루나 흰 죽을 먹고 호소한 증상들이나, 응급실로 이송된 이후의 상태 등을 고려할 때 니코틴에 의한 증상이 아닐 것이라는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다만 A씨가 니코틴 원액을 찬 물에 넣어 남편에게 먹였다는 혐의는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30년을 유지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사안마저 입증이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원심 판결을 파기, 재판을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찬 물에 니코틴 원액을 타서 남편에게 마시게 했다는 내용이 증명된다고 볼 수 없다"며 "남편에게 찬 물을 준 후 밝혀지지 않은 다른 경위로 피해자가 니코틴을 음용하게 됐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니코틴이 들어간 물을 마신 뒤) 피해자의 체내 니코틴이 최고 농도에 이르게 되는 시각에 휴대전화 로그 기록 등 행적이 나타났다"라며 "수사기관은 A씨의 사전 범행 준비, 계획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밖에도 △피고인이 줬다는 찬 물의 양과 컵의 용량, 니코틴 원액의 양 등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점 △피고인의 범행준비와 계획이 제대로 입증되지 않은 점 △피고인으로부터 압수한 니코틴 제품이 범행에 사용됐다는 입증이 되지 않은 점 등을 토대로 이같이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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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정성욱 기자 wk@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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