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한 날에도 일했는데, 노동자가 아니라고 합니다"

김예리 기자 2024. 2. 2.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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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담회] 콘텐츠 모더레이터·방송프리랜서·영화노동자
"아픈 게 죄인 프리랜서, 판례 쌓이지만 복직해도 괴롭힘"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9년째 포털사이트 게시글·댓글을 모니터링하는 콘텐츠 모더레이터 A씨는 일을 하면서 두 차례 유산했다. 용역업체와 프리랜서 도급계약을 맺고 일한 그는 주 6일, 주말엔 8~10시간 일했다. 휴게시간도, 연차도 없었다. 그는 “모니터링이 15분 밀리면 메신저로 (정규직 직원의) 연락이 온다. 여러 번 밀렸다며 이러면 해고할 수밖에 없다는 전화를 받은 적도 있다. 소중한 아기가 생겼지만 유산기가 있어도 시간에 쫓기며 근무했고, 심지어 유산한 당일에도 일했다”고 전했다.

세 번째로 아기를 가지고 또 낳았지만, 이후로도 쉬는 시간은 없었다고 한다. 왼손으로 갓난아이를 안고 모유 수유하고, 오른손으로 노트북으로 일을 했다. 출산 뒤 보름이 지나자 고열과 오한, 통증이 왔다. A씨는 평일이라 제한시간 내에 모니터링을 해야 해 참다가 중환자실에 입원해야 했다. 그는 '중환자실 가서 노트북 사용해도 되는지' 물었던 당시 상황을 돌아보면서 “부당한 건 부당하다고 말하고 싶다. 사람이 사람답게 일해야 하지 않나”라고 했다.

A씨와 같은 '무늬만 프리랜서'는 사회 전 분야에 있다. 방송제작 노동자들과 영화·OTT제작 스태프, 배달라이더와 같은 프리랜서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진행된 집담회에서 노동실태를 증언했다.

집담회에 모인 이들은 자신들이 어떤 노동자보다도 회사의 통제를 받으며 장시간 노동을 한다고 주장했다. 콘텐츠 모더레이터 B씨는 “노동자는 법정공휴일에 유급으로 쉬지만 우리는 오히려 일이 더 많다. 명절엔 접속자와 콘텐츠가 더 많기 때문”이라며 “사건·사고, 아이돌 이슈가 터질 땐 글이 몰려 화장실 한 번 못 가고 업무시간을 한참 넘겨 일하는데, 단 한 번도 초과근무를 인정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회사는 프리랜서 계약이란 꼼수로 엄청난 양의 인건비를 절감한 것”이라고 했다.

콘텐츠 모더레이터는 업무로 인한 정신적 고통에도 시달린다. 욕설과 비방글, 잔혹한 이미지와 영상을 확인해 차단하는 것이 주 업무이기 때문이다. C씨는 “가장 힘들었던 건 신림역 살인사건 CCTV 영상이었다. 흐림 처리하지 않은 영상 빨리 지워야 한다는 생각에 당시엔 아무렇지 않았는데 이후 며칠 동안 그 장면이 떠올랐다”고 했다.

▲'플랫폼노동희망찾기'와 '할말 잇 수다 기획단'은 1일 전태일기념관 2층에서 '플랫폼, 특수고용, 프리랜서 노동자 할말 잇 수다' 집담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미디어노동인권단체 엔딩크레딧의 진재연 집행위원장은 “방송제작 현장에는 프리랜서들이 굉장히 많다. 이름도 용역, 도급, 위탁 등 다양하다”고 했다. 그는 “문제는 실제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프리랜서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회사 지시를 받고 휴일도 휴가도, 연장수당도, 퇴직금도 없이 일한다”며 “그런데도 근로기준법 얘기를 꺼내는 것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방송사에서 일하려면 방송사가 원하는 계약서를 쓸 수밖에 없고, 방송은 '좁은 판'이라고들 하기에 더욱 그렇다”고 했다.

건당 임금을 받는 플랫폼 노동자는 이를 이유로 '장시간 공짜 노동'을 해야 한다. 대리운전기사는 고객에게 이동하고, 도착해서 고객을 기다리는 시간을 보상 받지 못한다. 고객이 지정한 장소에 도착한 상태에서 고객 사정으로 대리운전이 취소된 경우에도 보상 받지 못한다.

각 분야 '무늬만 프리랜서' 직접 회사를 상대로 법적 다툼에 나서면서 부당한 관행을 지적하는 판례가 쌓이고 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콘텐츠 모더레이터 2명이 낸 부당해고 구제신청에서 이들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도 2022년 11월 콘텐츠 모더레이터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라고 판결했다. 영화 스태프와 방송 촬영감독, 음향감독, PD, 작가, 아나운서, MD, FD, AD, 영상편집자 등에 대해서도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판례가 나오고 있다.

회사가 이를 회피하는 전략도 발전하고 있다. 촬영 스태프인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의 안병호 조합원은 “영화산업노조가 출발할 때부터 첫 요구는 근로기준법 준수였다. 노조 싸움으로 이제 근로계약이 관행이 돼가고 있는데, 이제는 OTT에서 (제작사들이) '우리는 근로계약 같은 것 안 해도 된다'는 말이 나온다”고 했다.

▲'플랫폼노동희망찾기'와 '할말 잇 수다 기획단'은 1일 전태일기념관 2층에서 '플랫폼, 특수고용, 프리랜서 노동자 할말 잇 수다' 집담회를 열었다. 사진=플랫폼노동희망찾기·할말잇수다 기획단 제공

그는 “같은 장비로 같은 스태프가 일하는데 'OTT에선 안 해도 된다'는 관행이 자리잡고, 사람들이 하나의 회사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근로기준법 준수를 회피하려는 전략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라며 “영화 노동자는 주로 건설노동자의 노동조건에 비유되곤 한다. 한 곳에 줄곧 고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왜 근로계약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하는가”라고 되물었다.

진재연 위원장은 “방송노동자들은 개별적으로 소송하게 되는 계기가 대부분 해고인데, 부당해고를 인정 받아 복직하고도 방송사가 '널 인정할 수 없다'며 괴롭히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고 했다. 그는 “UBC울산방송은 복직한 아나운서에게 편집요원을 하라고 말하고, 음해와 헛소문이 퍼지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7년차 광주MBC 김동우(가명) 아나운서는 노동청으로부터 노동자성을 인정 받았는데, 회사가 근속 경력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회사는 노동자의 임금을 수수료, 수당, 운임 등으로 부르고, 노동시간 측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건당 보상을 한다고 말한다”며 “분야와 이름은 다양하지만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최저임금법 등 각종 노동관계법이 명시하는 권리를 온전히, 차별없이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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