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냄비·술잔…너 ‘하나’로 충분해[정연주의 캠핑카에서 아침을]

기자 2024. 2. 2.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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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로벌 만능템 ‘시에라 컵’

캠핑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들어볼 일이 없지만, 캠핑을 시작하면 누구나 하나쯤은 사게 되는 물건이 있다. 아니, 사실 하나에서 멈추지 못한다. 아침이면 믹스커피를 타서 마시고, 점심에는 밥그릇이자 국그릇으로 쓰고, 쌈장과 마늘이며 고추를 담아 차리는 미니볼에 소주잔과 막걸리잔 역할까지 하기에 결국 크기별로 마련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글로벌하게 사랑받는 이 캠핑용품은 바로 위쪽은 넓고 아래쪽은 좁은 사발 형태의 ‘시에라 컵’이다.

아웃도어 식기의 대명사

시에라 클럽 컵 혹은 애팔래치아 마운틴 컵이라고도 불리는 시에라 컵은 아웃도어 캠핑용 식기의 대표주자다. 이름은 미국의 환경단체인 시에라 클럽의 이름을 땄는데, 여기서는 애팔래치아 마운틴 컵이 원형이며 야생에서 시냇물을 쉽게 떠올 수 있는 형태로 만들었다고 한다. 시에라 클럽의 설립자이자 자연보호주의자 존 뮤어가 이 초기 형태의 컵과 차 한 잔, 빵 한 덩어리, 책 한 권만 가지고 광야를 여행한 것으로 유명하다. 지금도 시에라 클럽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9.99달러로 원조라 할 수 있는 시에라 컵을 구입할 수 있다.

시에라 컵이 특별한 이유는 캠핑용품이 마땅히 갖춰야 할 조건을 거의 모두 만족시킨다는 점이다. 캠핑에서 사용하는 물건은 무엇보다 가볍고 부피가 작아 짐을 무겁고 크게 만들지 않아야 한다. 여러 개가 있더라도 차곡차곡 정리하기 쉬워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다용도여서 많은 물건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고 비상시에 쓸 수 있으니 금상첨화다. 이론적으로는 집에서 쓰는 냄비나 그릇을 사용해도 문제가 없지만 캠핑을 자주 다니다 보면 결국 캠퍼가 쓰는 장비를 하나둘씩 갖추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깨질 염려 없이 편하게 막 쓰다가 쉽게 정리해서 가볍게 가지고 다닐 수 있어야 기동성이 좋고 자주 나가기에 부담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시에라 컵은 일단 스테인리스 스틸이나 티타늄, 알루미늄 재질로 만들어져 가볍고 사용하기 무난하다. 브랜드마다 깊이나 모양이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위쪽은 넓고 아래쪽은 좁은 모양으로 여러 개를 겹쳐 수납하기 좋은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안쪽에는 계량 표시가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야외에서 간단하게 물이나 식재료를 계량하는 것도 가능하다. 한쪽에는 손잡이가 달려 있는데, 직선으로 긴 손잡이는 요리할 때 먼 쪽이 뜨거워지지 않아 잡기 좋고 구부러진 손잡이는 캠핑 시에 아무 데나 걸어두기 좋다. 백패커라면 벨트에 이 손잡이 부분만 매달아서 가지고 다니는 용도로 쓴다. 다만 직선으로 긴 손잡이는 시에라 컵의 아래쪽으로 접어서 수납하는 형태가 많은데, 결착을 제대로 하지 않을 경우 국이나 수프처럼 무겁고 뜨거운 국물 요리를 만들거나 담았을 때 손잡이만으로 들어올리면 접히면서 쏟을 수 있어 주의하는 것이 좋다.

일당백의 다재다능함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시에라 컵만 있어도 캠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릇인 듯, 컵인 듯 우묵한 모양 덕분에 식사에 관련된 거의 모든 행위를 시에라 컵만 가지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래가 컵이니 생수나 막걸리를 따라 마시기에도 제격이다. 개별 밥그릇이자 국그릇으로 쓸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국자가 없는 위기 상황이라면 손잡이를 단단히 잡고 시에라 컵으로 국을 풀 수도 있다. 손질한 식재료를 따로따로 담아두는 볼로 쓰다가 요리할 때 탁탁 털어 넣기에도 좋고 쌈장이나 기름장을 담기도 한다. 손잡이가 있어서 앞접시로 쓰면 식탁 자리가 부족할 때도 들고 먹기 좋다. 다른 식기보다 작고 가벼운 편이라 어린아이들도 무리 없이 들고 사용하기에 적절하다.

무엇보다 간단한 조리용으로도 쓸 수 있다. 보통 직화가 가능한 재질로 제작하는데 이것으로 떠온 시냇물을 끓여서 살균하는 데에도 사용했다고 한다. 뚜껑이 있으면 소박하게 1인분만 밥을 지을 수도 있고, 조금 달라붙기는 하지만 급하면 프라이팬으로 쓰기에도 무방하다. 그래서 1인 백패킹을 다닐 때는 시에라 컵만으로 대부분을 해결하는 경우도 많다.

시에라 컵으로 밥을 짓고 싶다면 기본 300㎖보다는 조금 큰 것을 고르면 쌀이 고르게 익는다. 기본 용량이라도 분말 육수와 채소, 된장 등을 넣어서 간단하게 된장국을 1인분만 만들기에는 더할 나위 없다. 기름을 조금 두르고 베이컨과 달걀 푼 것을 볶으면 들고 먹는 한 그릇짜리 아침 식사도 순식간에 완성된다. 미니 찜기가 있다면 시에라 컵에 물을 끓이고 그 위에 찜기를 올려 만두 등을 찔 수도 있다. 지난봄 캠핑에서 쑥버무리를 만들었을 때 딱 맞는 크기의 찜기가 있어 시에라 컵을 활용했는데, 위쪽으로 갈수록 넓어지는 형태가 찜기를 올리기에 적절했다. 다만 찌는 시간이 길어진다면 들어가는 물의 양이 적기 때문에 바닥이 타지 않도록 가끔 끓는 물을 보충해주는 것이 좋다.

만약 여럿이 모여 캠핑할 때 위생적으로 1인분씩 음식을 차리고 싶다면 시에라 컵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불판 위에 시에라 컵을 여러 개 올려서 1인분씩 국을 끓일 수도 있고, 생새우와 마늘을 나누어 넣고 기름을 부어서 따뜻하게 데워 1인용 ‘감바스 알 아히요’를 만들기에도 좋다. 특히 감바스 알 아히요나 치즈 퐁듀처럼 빵 등을 찍어서 먹기 때문에 가족이 아니라면 음식을 공유하기 힘든 메뉴에 시에라 컵을 쓰면 보기에도 특별하고 깔끔하게 차려낼 수 있다.

>> 시에라 컵 고르는 법

시에라 컵을 고를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재질이다. 가장 흔한 것은 스테인리스 스틸로 적당한 가격대에 내구성이 좋고 조리하기에도 열이 고르게 전달되는 편이다. 다만 가벼운 것을 원한다면 티타늄이나 알루미늄 소재를 고르는 것이 좋으나 알루미늄은 종류가 다양하지 않고 티타늄은 스테인리스 스틸에 비해 가격대가 높다. 만약에 시에라 컵으로 요리까지 하고 싶다면 되도록 스테인리스 스틸 제품을 고르도록 하자. 티타늄은 가열하기에는 전체적으로 열이 고르게 퍼지지 않아서 부분적으로 타기 쉽다. 고민이 된다면 캠핑용품 전문점에 가서 이것저것 들어보고 형태와 균형 감각 등을 확인한 다음에 고르는 것이 좋다.

용량 또한 다양하니 본인에게 필요한 용도에 맞춰서 골라야 한다. 보통 우리나라의 식사 형태에는 250~300㎖ 사이의 기본 용량이 두루두루 쓰기 좋다. 밥그릇과 국그릇, 앞접시, 커피잔, 막걸리잔 용도로 모두 활용하기 좋다. 여기에 하나쯤 기분을 내고 싶다면 소용량 시에라 컵을 사서 소스볼이나 소주잔으로 쓰면 나름 캠핑장 분위기에 잘 어울린다.

만약에 시에라 컵으로 요리까지 하고 싶다면 위쪽으로 갈수록 넓어지는 것을, 냄비로 자주 쓴다면 위아래의 너비가 많이 차이나지 않는 것을 고르는 편이 좋다. 물이 증발하는 속도가 차이 나기 때문이다. 제조사별로 크기나 모양이 조금씩 달라서 부차적인 도구는 호환되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 시에라 컵을 구입할 때 그에 맞는 크기의 체나 뚜껑 등을 판매하는지 확인하고 같이 사는 것을 추천한다. 특히 체의 경우에는 식재료를 씻고 물기를 제거하거나 튀김용 거름망 등으로도 쓰기 좋은 아담한 크기라 의외로 활용할 곳이 많다.

아예 대접만 한 500㎖짜리를 두세 개 마련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여차하면 물을 적게 잡고 라면을 끓이거나 찜기, 밥솥으로 쓸 수 있다. 물론 냄비나 팬으로 다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무슨 물건이든 집에 두고 올 수도 있고 모든 냄비를 다 사용하는 도중 라면을 하나 끓이고 싶어질 수도 있는 노릇이니까. 그럴 때 캠핑 테이블을 캠핑처럼 만들어주는 만능 식기, 시에라 컵을 집어 들고 ‘역시 얘만 한 것이 없다’며 뿌듯해하는 것이다.

■정연주



캠핑 다니는 푸드 에디터, 요리 전문 번역가. 르 꼬르동 블루에서 프랑스 요리를 공부하고 요리 잡지에서 일했다. 주말이면 캠핑카를 타고 떠나는 맛캠퍼로 ‘캠핑차캉스 푸드 라이프’ 뉴스레터를 발행한다.

정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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