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맘 편히 먹어"...성공한 스티븐 연이 '과거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이성진 감독과 배우 스티븐 연
"이민자로서의 경험, 진실되게 담으려 노력"
"(제게 미친 듯이 경적을 울리고 소리를 지른) 난폭 운전자에 여러모로 감사해요. 그 운전자가 난폭 운전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 작품도 없었겠죠. 삶이라는 게 참 희한하고 그래서 아름다운 것 같아요, 하하하."
재미교포 이성진(43) 감독의 말이다. 그는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 로 지난달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 상인 제75회 프라임타임 에미상에서 작품상·감독상 등 8개 부문에서 수상한 공을 그를 위협하며 난폭 운전을 한 운전자에게 먼저 돌렸다. 이 감독이 몇 년 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백인 남성 운전자로부터 당한 피해 경험에서 출발해 이 드라마를 제작했기 때문이다.
이 감독, 그리고 '성난 사람들'에서 한국계 이민자 대니 역을 맡아 남우주연상을 탄 스티븐 연(한국 이름 연상엽·41)을 2일 화상으로 함께 만났다. 둘은 지난달 골든글로브를 시작으로 북미 비평가들이 주관하는 크리틱스 초이스에 이어 에미상까지 10개가 넘는 트로피를 휩쓸었다. 찾는 곳이 많아진 이들은 요즘 쉴 틈 없이 바쁘다. 에미상 수상 후 달라진 일상의 변화를 묻는 질문에 이 감독은 웃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입에선 한국말로 "되게 피곤하다"는 말부터 나왔다.
미국에서 이민자로 살며 '성난 사람들'을 통해 주류사회에서 인정받은 것은 두 사람에게 벅찬 일이다. 스티븐 연은 "이번 수상으로 인종과 국적이 다른 여러 사람들이 깊이 연결돼 있다는 유대감을 느껴 기쁘다"며 "지금 이 순간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내가 처음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됐는지'를 고민하게 됐다"고 초심을 떠올렸다.
'성난 사람들'은 이 시대 성난 사람들을 향한 풍자극으로 주목받았다. 집수리 등을 하며 간신히 먹고사는 대니와 부유하지만 위태롭게 사는 중국계 이민자 에이미(앨리 웡)는 난폭 운전이 기회가 돼 서로를 향해 무자비하게 욕을 퍼붓고 가정까지 파탄 낸다. 이 작품이 미국에서 주목받은 이유에 대해 이 감독은 "(드라마에서 욕을 퍼부으며 대립한) 두 사람이 서로의 내면에 깃든 어두움을 바라보며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시청자들 마음에 닿지 않았을까 싶다"고 답했다.
고된 일상 탓에 건드리기만 하면 폭탄처럼 터질 것 같은 대니를 연기하며 스티븐 연은 "모든 걸 다 내려놓고 그 안에 빠져들어야 해서 힘들었고 연기하면서 '이상해 보이지 않을까' 두려웠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게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고 인정받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며" 그 위기를 이겨냈다.
한국에서 태어나 12세에 미국으로 이주한 이 감독은 한국 이민자를 대변하는 코드를 드라마 곳곳에 넣었다. 대니는 동생에게 "김치찌개를 끓여 놓고 (남편을) 집에서 기다리는 아가씨를 만나야 한다"고 가부장적인 충고를 하고, 일자리를 얻기 위해 한인교회를 찾아간다. 이 감독은 "스티븐 연과 전화통화에서 '한인교회 찬양팀에서 뭐 불렀어?'라고 묻고 웃으면서 대화한 내용을 드라마에 반영했다"고 말하며 또다시 웃어 보였다. 드라마에서 대니는 미국 록밴드 인큐버스의 히트곡 '드라이브'(1999)를 부르는데, 실제 이 감독과 스티븐 연이 한인교회에서 찬양팀으로 활동할 때 연주하고 불렀던 곡이다. 스티븐 연은 "이번 드라마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우리의 이야기였다"며 "이민자로서 직접 겪은 현실을 함께 얘기하며 진실성을 담아내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미국 동부의 한 대학을 졸업하고 드라마 제작의 꿈을 품고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갔을 때 이 감독의 통장 잔고는 "마이너스"였다. 아시아계 배우 최초로 에미상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스티븐 연도 무명 시절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미생의 존재'에서 할리우드에서 주목받는 감독과 배우로 우뚝 선 두 사람은 여태 힘들게 버텨 온 스스로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을까.
"'괜찮아, 마음 편히 먹어. 다 괜찮아질 거야'라고 해주고 싶어요."(스티븐 연)
"저도요. 제가 길을 잃어버렸을 때 중심을 잡고 땅에 발을 붙일 수 있게 해 준 친구들에게 고마워요."(이 감독)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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