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폭 운전자 없었다면 작품도 없어···인생은 이렇게 아름답고도 이상해”···‘성난 사람들’ 이성진 감독
우리 내면에 조용히 쌓여있던 분노가 어느날 예상치 못한 계기로 폭발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성난 사람들(BEEF)>은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시작된 사소한 시비가 격렬한 보복 운전으로, 나아가 서로의 일상을 파괴하는 복수전으로 이어지며 파국을 맞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넷플릭스 시리즈다. 현대인의 분노와 고독, 이민자의 소외감 등을 다룬 이 작품은 지난해 제75회 프라임타임 에미상 미니시리즈·TV영화 부문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등 8개 부문의 상을 휩쓸었다.
한국계 미국인인 이성진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고 스티븐 연이 주인공 ‘대니’를 연기했다. 2일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통해 두 사람을 만났다.
이 감독은 <성난 사람들>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은 이유에 대해 “사람들이 캐릭터를 통해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내면 깊숙히 있는 어두운 면, 남들과 공유하기 어려운 면을 조명하고 상대방의 어두움을 이해하게 되면서 서로를 받아들이게 되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며 “그런 면에 많은 이들의 마음에 와닿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했다. 에미상 수상에 대해서는 “온라인에서 ‘예술’을 표현하는 벤다이어그램을 봤다. 한쪽 동그라미는 ‘흔들리는 자기 확신’, 다른 동그라미는 ‘고삐풀린 나르시시즘’, 그리고 그 교집합이 예술이라고 되어있었다”며 “저도 그 둘 사이를 왔다갔다 했었던 것 같다. 인정받는다는 것은 기쁜 일이고, 겸허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스티븐 연은 “처음 작품이 공개됐을 때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작품이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시사점은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작품에 대한 굉장한 자신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작품에는 미국 내 한인교회의 찬양 장면 등 한국계 이민자들의 생생한 생활이 녹아있다. 한국계 이민자인 감독과 배우, 넷플릭스 제작진의 경험이 모두 조금씩 합쳐져 탄생한 장면들이다. 이 감독은 “작품이 한국계 미국인으로 살아가는게 무엇인지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진 않지만, 캐릭터 안에 많은 부분이 담겨 있다”며 “그 주제는 제 존재 자체에 박혀있는게 아닌가 생각한다. 앞으로 언젠가 만들 작품에도 담겨있는 주제”라고 말했다.
작품 속 스티븐 연이 연기한 대니는 개인적인 삶에 대한 패배감과 우울감, 부모님을 잘 모셔야 한다는 압박감 등으로 세상에 분노해 있는 인물이다. 스티븐 연은 “대니는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여러 형태의 ‘수치심’을 집약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몹시 무력하고,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다”며 “저 역시도 캐릭터에 녹아들어서 통제력을 내려놓아야 했다. 그게 괜찮을까, 내가 어떻게 보일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민 2세대 배우로서 남우주연상 수상 등의 성과를 낸 것에 대해서는 “이전보다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좀 더 알게 되고, 스스로에게 친절한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제 안에 있는 강한 감정은 ‘감사한 마음’ 뿐”이라고 말했다.
이 감독은 직접 겪은 난폭 운전 경험에서 <성난 사람들>의 스토리를 떠올렸다. 그는 시상식에서 ‘난폭 운전자에게 감사하다’는 수상 소감을 말하기도 했다. 이 감독은 “극중에서는 벤츠로 나오지만 실제로 그 차는 흰색 SUV, BMW X3였다. 결과적으로 많은 면에서 그에게 감사하다. 그가 그날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이런 작품도 없었을 것이고, 우리가 여기 이렇게 앉아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인생이 이런 식으로 매우 아름답고도 이상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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