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담 쌓은 내 아이... 손잡고 조선시대 독서광 만나러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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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새해가 밝은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달력 한 장을 넘겼습니다.
마침 '책 읽어라' 백 마디 말보다 확실한 자극을 줄 곳이 있습니다.
충북 증평군 증평읍에 위치한 김득신 문학관은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상설전시실과 수장고, 교육·학습공간, 휴게 공간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하지만 이런 시가 한 순간의 영감으로 쓰여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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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새해가 밝은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달력 한 장을 넘겼습니다.
자녀를 둔 가정은 어찌어찌하다 보니 겨울방학이 중반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새삼 느낄 텐데요.
‘겨울방학 동안 책 좀 많이 읽으면 좋겠는데’ 하는 건 부모님들의 공통된 바람인데요.
하지만 현실은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스마트폰이나 TV 시청에 빠져 있는 아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부모님들이 많습니다.
이런 때는 일단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답.
마침 ‘책 읽어라’ 백 마디 말보다 확실한 자극을 줄 곳이 있습니다.
‘조선의 독서광’을 만날 수 있는 김득신 문학관입니다.
펼친 책을 머리에 쓴 귀여운 캐릭터가 반겨주는 이곳은 조선 후기의 시인 백곡 김득신 선생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충북 증평군 증평읍에 위치한 김득신 문학관은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상설전시실과 수장고, 교육·학습공간, 휴게 공간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전시실은 김득신에 대한 궁금증을 하나, 하나 풀어가게끔 구성되어 있습니다.
김득신은 책을 얼마나 많이 읽었으면 독서광이라는 별명이 붙었을까?
김득신의 문집인 백곡집에는 독수기라는 독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31세 때부터 67세 때까지 1만 번 이상 읽었던 고전 36편의 작품을 기록해 놓았는데, 특히 중국의 역사서인 사기 백이전은 11만 3천 번 읽었다고 기록되어 있죠. 이 책이 총 130권 33책 분량인 것을 감안하면 그의 독서량은 실로 어마어마합니다.
김득신은 책 한 권을 왜 수도 없이 읽었을까?
김득신은 어릴 때 천연두를 앓아 지각이 발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10살 때 비로소 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당시 초등교재의 첫 단락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우둔했죠. 하지만 그의 아버지 김치는 아들을 나무라지 않고 격려했습니다. 이에 김득신은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고 끝내 자신이 뜻한 바를 이뤄냈습니다.
임인증광방목은 김득신 선생이 1662년 과거에 합격하고 받은 합격자 명단입니다. 김득신은 병과 19위로 급제하였고, 자(字), 생년, 본관, 거주지, 가족 사항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려 59세의 나이에 거둔 노력의 결실이었죠.
김득신은 조선시대에서 얼마나 유명한 시인이었나
김득신의 대표 시로 그가 47세 때 지은 <용호(龍湖)>가 있습니다. 이 시를 본 효종은 "당나라 시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고 칭찬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이런 시가 한 순간의 영감으로 쓰여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지지해주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절에 틀어박혀서 36년 동안 고문을 외우고 또 외웠습니다. 시를 쓸 때는 붓이 닳아질 때까지 썼고, 한지마저 없으면 나뭇가지로 땅바닥에 썼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고목은 찬 구름 속에 잠기고
가을산엔 소낙비가 들이친다
저무는 강에 풍랑 이니
어부가 급히 뱃머리 돌리네
후손들은 김득신 선생의 이러한 성실성을 기리고자 1590여 수의 시와 180여 편의 산문이 수록된 백곡집을 필사해 정리했다고 하는데요. 이를 백곡 김득신 선생 10대손 김명열 선생님이 문학관에 기증해 그 정신을 계승 보존하고 있습니다.
독서광 김득신을 만난 뒤에는 도서관에 들러 책을 읽는 시간을 가져도 좋을 것입니다. 문학관과 증평군립도서관이 통로로 이어져 있어 몇 걸음이면 독서의 길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가오는 새 학기를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성실한 독서광 김득신 선생이 스스로 지은 묘비명을 덧붙입니다.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해서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라. 나보다 노둔한 사람도 없겠지마는 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 그러니 힘쓰는 데에 달려 있을 따름이다. 만약 재주가 넓지 않거든 마땅히 한 가지에만 정성을 다해야 할 것이니 차라리 이것저것 해서 이룸이 없는 것보다는 낫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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