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兄弟 기술유출범은 어떻게 꼬리 잡혔나...세메스 수사 막전막후
재판 넘겨지자 형이 추가 유출... 직원도 가담
경영난 속 中 업체 거액 제안에 범행
韓 최초 개발 기술 中에 통째로 넘어갈뻔
박성현 검사 “ ‘징역이 남는 장사’ 되선 안돼”
“8월에 또 중국에 장비를 납품한답니다. 제발 좀 막아주십시오.”
작년 7월, 삼성전자 자회사이자 세계 3위 반도체 세정 장비 기술 업체 세메스가 수원지검에 믿기 힘든 제보를 했다. 세메스 기술을 중국 회사에 유출해 재판에 넘겨진 전직 연구원 A씨. 그가 설립한 회사 직원들이 여전히 검찰의 눈을 피해 장비 수출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범행 주도자로 지목된 건 A씨 친형이었다.
동생이 수사·재판을 받고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것을 보고도 같은 범죄를 또 저지를 수 있을까. A씨를 구속기소한 박성현(변호사시험 3회) 수원지검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수사부 검사도 처음엔 의구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나 회사 압수물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A씨가 중국에 유출한 세정 장비와 외관이 똑같은 장비가 중국으로 수출된 기록이 나왔다. 설계 자료, 수출 내역, 전현직 직원들의 증언은 모두 추가 기술 유출이 실제함을 가리켰다. A씨의 친형 B씨는 동생이 구속기소된 후 회사를 이어받아 운영하면서 추가 유출을 감행해 60억원대의 수출 수익을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원지검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수사부(부장검사 안동건)는 지난달 29일 B씨와 회사 관계자 4명을 구속기소하고 범행에 적극 가담한 회사 직원 5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약 5개월의 수사로 드러난 세메스 기술 유출 사건에는 기존 기술 유출 범죄를 넘어서는 부분이 많다. 추가 범행이 의심돼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대표 친형과 직원들이 중국으로 기술 유출을 계속해서 시도했다는 점이 그렇다. 수사팀이 작년 8월 11일 A씨 회사를 압수수색하러 갔다가 21억원짜리 장비가 중국으로 수출되는 것을 막은 일도 있었다. 불과 1시간 전에 수출업체 차량이 중국 수출용 장비를 싣고 나간 기록을 발견한 박 검사는 추가 영장을 발부받은 뒤 수출업체 차량 위치를 수소문한 끝에 장비를 압수했다.
징역형을 살 것을 뻔히 알고도 형제와 직원들이 범죄에 가담한 이유는 중국 업체가 거액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직원 20여명에 불과한 한국 회사가 장비 한대 수출로 벌 수 있는 돈은 50억~60억원에 달했다. 세메스가 세계 최초로 개발해 양산에 성공한 반도체 세정 장비 기술은 20나노미터 이하 메모리 반도체 제작에 사용되는 국가핵심기술이다. 수년간 2000여억원을 투입해 만들어낸 이 기술을 중국 업체는 손쉽게 얻고 싶어 했다. 기술유출범이 한국에서야 범죄자지만, 중국에선 문익점이나 다름없다.
중국 업체는 한국 회사가 기술 유출에 한번 응하면 점점 더 무리한 요구를 했다. 처음 중국 회사는 조선족 브로커를 통해 A씨에게 접촉해 세메스 장비 제작을 위한 핵심 도면을 넘겨 받고 세정 장비를 납품 받았다. A씨가 구속기소되고 1심에서 징역형을 받은 사실을 알고도 중국 업체는 지속적으로 세메스 기술이 들어간 장비를 수출해달라고 했다. 아예 공장을 통째로 갖고 오라는 제안도 했다. 자금난에 시달리던 회사 측은 검찰에 발각될 것을 우려해 외관을 변경해 장비를 수출했다. 그러자 중국 업체는 예전 설계 그대로 만들어달라고 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세메스 장비와 완전히 같아야 자국에서 잘 팔리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 업체 요구대로 장비를 만들기 위해 B씨는 회사 서버에 남아있던 세메스 설계자료를 자신이 운영하던 회사로 옮겼다. 검찰 포렌식 과정에서 자료를 이전시킨 사실이 적발될 것을 우려해 모든 파일을 일일이 출력해 도면을 보고 다시 그렸다. 이 작업에 넉달이 걸렸다. 검찰이 압수수색을 하면서 수사망을 좁혀오자, 장비를 수출하는 대신 부품을 8번에 걸쳐 중국에 나눠 보내기도 했다. 쪼개기 수출은 기록이 남지 않기 때문에 일단 보내고 중국 현지에서 조립했다.
B씨를 비롯한 직원들은 앞서 중국에 수출한 장비와 외관이 다른 장비를 만든 기록만 발견되자 범행을 부인했다. 그러다 외관까지 똑같은 장비를 만든 자료가 나오자 속속 혐의를 인정했다. 직원들은 “검사님께 걸릴 것 같아 불안했다. 회사 사정이 어렵고 중국에서 제안한 금액이 커 범행을 했다”고 말했다. 범행에 가담한 직원 중에는 A씨와 함께 재판에 넘겨져 집행유예를 받은 사람도 있었다.
B씨와 직원들은 아예 중국에 세정 장비 설계·제작 공장을 만들려고도 했다. 현지 법인 설립이 모두 끝난 상태였다. 현실화 됐다면 세메스는 물론 삼성전자의 반도체 양산 경쟁력이 위협받을 수 있었다. 이미 A씨의 범행으로 인해 중국 회사가 세메스 기술로 만든 반도체 세정 장비를 역설계 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했을 수도 있었다. 중국 회사는 A씨 회사에서 사들인 장비 대부분을 중국 현지 회사에 팔았지만 일부는 내부 보유한 것으로 의심됐다. 부품을 분해해 상세 스펙을 확인한 뒤 역설계할 경우 우리 기술을 통째로 복제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추가 범행 사실이 드러나면서, A씨는 항소심에서 형량이 징역 9년에서 10년으로 늘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유출한 반도체 세정 장비 기술은 피해 회사가 다년간 연구하고 개발해 얻어낸 성과로 일부는 국가핵심기술”이라며 “이런 범죄를 가볍게 처벌한다면 기업들로서는 오랜 기간 기술 개발에 매진할 동기를 잃게 된다. 또한 피고인들은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을 하며 범행을 부인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판시했다.
첨단산업보호 중점검찰청인 수원지검에서 2년간 기술유출 사건을 담당한 박 검사는 징역이 남는 장사라는 유혹을 아예 차단할 수 있도록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술유출은 전형적인 화이트칼라 범죄다. 평범한 삶을 살던 고학력 엔지니어들이 중국 기업으로부터 거액의 대가를 제안받고 처음 범죄에 발을 들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처럼 기술유출범에 집행유예나 징역 1~2년이 선고되는 상황이라면 범죄 한번의 대가인 몇십억과 충분히 맞바꿀 수 있다고 느낄 수 있다. 다행히 최근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기술 유출 범죄에 최대 18년형을 선고하도록 하고 집행유예 참작사유에서 초범인 점을 제외하는 양형기준안을 만들었다.
기술유출범에 대해 법원이 추징 판결을 잘 내리지 않는 것도 개선되어야 할 점으로 지목된다. 세메스 기술 유출로 710억원대 이익을 취한 A씨에 대해서도 법원은 추징을 선고하지 않았다. 범죄 수익 중 세메스 기술을 빼돌려 얻은 이익이 얼마나 되는지 특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해서다. 일반적으로 세메스 설계자료를 토대로 장비를 만들지만 수사당국에 적발될 것을 우려해 일부 구조는 다르게 만드므로 세메스 기술과 자체 개발 기술이 혼재돼 있다.
박 검사는 “(범죄수익) 특정이 안 되더라도 이익 상당부분이 범죄 행위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전체를 추징할 수 있게 하는 입법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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