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명조끼 벗어주고 맨몸으로 400m 헤엄…5명 살린 의인 [따만사]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2024. 2. 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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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에 떠밀려 표류하는 5명 목숨 구한 의인 이형태 씨
파도에 떠밀려 표류하는 5명 목숨 구한 이형태 의인.

지난해 8월 13일 동해안에서 인명 구조대원도 아닌 일반 시민이 파도에 휩쓸려 먼바다로 떠밀려간 관광객 5명을 혼자 힘으로 구해내는 일이 있었다. 주인공은 평범한 가장 이형태 씨(44)다.

그날 강원도 고성 지역에는 높은 너울성 파도가 일고 있었다. 사고가 발생한 곳은 고성군 죽왕면 공현진1리 해수욕장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한적한 해변이었다.

고성은 과거 해변 곳곳에 군사 철책이 있었지만, 철책이 모두 철거되면서 사람이 붐비는 해수욕장을 벗어나 조용한 바다를 찾는 이들이 늘기 시작했다. 그날도 인명구조요원도 없고 지켜보는 이도 많지 않은 백사장에서 초등학생 두 명을 포함한 일가족 등이 놀고 있었다.

“수영 자신 있었지만 파도 앞에 장사 없어”

인근 도시에 사는 이 씨는 그날 볼일이 있어 공현진리를 찾았다가 “사람이 떠내려가요!”라는 다급한 목소리를 들었다.

소리를 따라 200m 가량을 달려가 보니 초등학교 저학년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아이를 양손으로 붙든 엄마까지 일가족 3명이 튜브에 매달려 해변에서 약 300~400m 떨어진 바다 한복판으로 멀어져 가고 있었다. 튜브는 있었지만 파도가 너무 강해 금방이라도 아이들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위급한 상황이었다.

요구조자는 엄마와 아이들뿐이 아니었다. 해변에서 약 100m 떨어진 바다에는 성인 2명이 더 있었다. 한 명은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뛰어든 이모였고, 다른 한 명은 구조에 나섰던 목격자였다.

이형태 씨가 사고 당시를 설명하며 엄마와 아이들이 떠밀려간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 사고 당시는 만조였고 파도도 훨씬 심했다고 한다.

이 중에 수영할 줄 알았던 이모는 구명조끼도 없이 맨몸으로 뛰어든 탓에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였다. 높은 파도에 체력이 급격히 소진되면서 총 5명이 바다에서 나오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상황이었다.

이 씨는 해변에서 구명조끼를 입은 한 여성에게 “빨리 그 조끼 벗어달라”고 소리쳤다. 이어 “119에 신고해달라”고 요청한 후 여성의 구명조끼를 걸치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우선 100m를 헤엄쳐간 그는 숨이 넘어갈 것 같은 모습이 된 이모에게 조끼를 벗어서 입혔다.

바닷가에서 나고 자라 수영 하나는 자신 있던 이 씨였지만 조끼를 벗어준 뒤에는 본인도 거친 파도 앞에서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멈추면 죽을 것 같아…점점 멀어져 체력 한계”

이 씨는 “요구조자들은 정신이 없다 보니 어디로 빠져나가야 할지 모르고 안쪽으로 점점 들어가고 있었다. 수영을 안만 잘해도 바다에서는 소용없다”고 떠올렸다.

해류를 파악한 이 씨는 파도의 영향을 덜 받는 곳으로 안전하게 2명을 끌어낸 후 그대로 다시 몸을 돌려 남은 아이들과 엄마를 향해 헤엄쳐 갔다. 이땐 조끼를 입지도 않은 맨몸 상태였다.

이 씨는 파도를 뚫고 다시 300m 정도 되는 거리를 수영해 갔다. 앞선 2명을 구하는 사이 아이들과 엄마는 더 멀어진 상태였다. 이때가 이 씨도 한계를 느꼈던 순간이라고 한다.

이 씨는 “처음에 두 명을 건지고 그다음에 아이들을 건지러 가는데 그땐 체력이 많이 달렸다. 제가 쫓아가는 속도보다 아이들이 물에 떠밀려 가는 속도가 더 빨랐다”며 “거기서 멈추면 나도 가라앉게 생겼더라. 자유영, 평영, 배영을 번갈아 하면서 겨우겨우 쫓아가서 잡았다”고 설명했다.

남자아이 튕겨 나가 세 번째 물속으로…

위기는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이 씨는 튜브에서 겨우 숨을 돌린 뒤 “파도에 맞을 수도 있으니 서로 꼭 잡으라”고 당부한 후 3명을 이끌고 헤엄쳐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심이 비교적 낮은 곳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거세게 몰아친 파도를 맞고 남자아이가 튕겨 나가버렸다.

이 씨는 다시 아이를 찾아 물속을 헤맸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던 만큼 이때가 더없이 길게 느껴졌다. 이 씨는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물속에서 아이를 찾아 가슴에 안았다. 다행히 그사이 엄마와 딸은 파도에 떠밀려 해변에 닿아 있었다.

이 씨는 5명을 모두 구출해 낸 뒤 모래사장에 쓰러졌다. 기진맥진 상태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그렇게 10분가량 백사장에 누워있는 사이 119가 도착해 남은 상황을 수습했다.

이형태 씨가 사고 당시를 설명하며 엄마와 아이들이 떠밀려간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 사고 당시는 만조였고 파도도 훨씬 심했다고 한다.

본인도 8살 아들을 둔 이 씨는 “처음 상황을 마주한 순간 다른 생각은 아예 하지도 못했다. 그냥 ‘저 아이들을 건져야겠다’는 생각 하나뿐이었다”고 말했다.

공현진1리 이장 안훈모 씨(60대)는 “일반 사람들은 파도에 휩쓸리면 90%는 거의 헤어 나오지 못한다”며 이 씨의 ‘살신성인’ 정신을 칭찬했다.

이 씨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5명을 구조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12월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 주관한 ‘2023생명존중대상’ 일반 시민 부문에서 수상했다.

이 씨는 “누구라도 그렇게 하지 않았겠냐”면서 “두 가지만 꼭 당부하고 싶다. 바다에 들어갈 때는 꼭 구명조끼를 입으시라. 그래야 사고가 나도 어쨌든 구조될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다. 또 사람이 많은 곳에서 놀길 부탁드린다. 따로 조용한 곳에서 놀다 사고 나면 주위에 도와줄 사람이 없다”고 당부했다.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pt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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