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벤투호가 넘지 못한 '8강산', 클린스만호는 넘을 수 있을까
전술에선 벤투호와 클린스만호 차이 보여
남자 축구 대표팀이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8강 진출을 확정함에 따라 지금부터는 본격적인 우승 경쟁이 시작된다. 클린스만호가 당초 목표로 했던 64년 만의 우승을 위해선 '8강산'을 반드시 넘어야 한다. 8강은 5년 전 아랍에미리트(UAE) 아시안컵에서 59년 만의 우승을 향해 내달렸던 벤투호가 침몰했던 지점이다. 그때와 지금,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달라졌을까. 클린스만호는 이 항해를 끝까지 이어갈 수 있을까.
'2019 UAE 아시안컵' 때도 전력은 최강
2023 카타르 아시안컵에 출전한 한국 대표팀은 유럽 5대 리그에서 뛰는 해외파를 중심으로 꾸려지며 '역대 최강'이란 찬사를 받고 있다. 이 정도 전력이면 '우승하지 않는 게 이변'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2019년 UAE 아시안컵 때도 전력은 좋았다. 당시에도 손흥민(토트넘), 황희찬(당시 함부르크, 현 울버 햄프턴), 이재성(당시 홀슈타인 킬, 현 마인츠), 기성용(당시 뉴캐슬, 현 FC서울) 등 유럽파들이 대거 가세했다. 주전 선수들은 소속팀만 달라졌을 뿐 5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았다.
'쓰는 선수만 쓰는' 것도 판박이
'쓰는 선수만 쓴다'는 논란도 판박이다. 파울루 벤투 전 대표팀 감독은 자신의 '빌드업 축구' 전술을 확실하게 이해한 선수만 기용한다는 원칙 하에 움직였고, 그러다보니 선수 선발이 매우 한정적이었다. 다만 꾸준히 새로운 선수들을 훈련에 참여시키기도 했다.
현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도 선수 선발에 극히 보수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벤투 전 감독처럼 어떤 소신이 있어서라기보다 새 선수 발탁에 무관심한 게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더 크다. 실제 클린스만 감독은 K리그를 자주 관전하며 새 얼굴을 발탁해야 한다는 팬들의 요구를 뒤로 하고 유럽과 미국에서 재택근무를 고집하며 해외파 선수만 지나치게 선호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번 대회 최종 선발 명단에서도 K리그 선수 발탁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5년 전에도 지금도 대표팀은 '부상병동'
최종 선발된 선수들이 끝없는 부상에 시달리는 것도 5년 전과 비슷하다. 이번 대회에서 김진수(전북현대)는 대회 전 UAE 아부다비 훈련 캠프에서 왼쪽 종아리 부상을 입고 줄곧 재활과 회복 훈련에 집중하고 있다. 황희찬도 이라크와 평가전을 치른 뒤 훈련 도중 왼쪽 엉덩이 근육 이상이 발생해 조별리그에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이기제(수원 삼성)는 조별리그 2차 전에서 허벅지 부상을 입었고, 주전 골키퍼 김승규(알 샤밥)은 훈련 도중 무릎 십자인대 파열로 소집해제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2019년에도 대표팀은 '부상병동'이라 불릴 만큼 부상자가 속출했다. 당시 이재성은 대회 내내 발가락 부상 회복에 집중하다 한 경기도 소화하지 못했고, 기성용은 조별리그 1차전에서 햄스트링 부상을 당해 16강전을 치르지 못한 채 영국으로 돌아갔다. 황희찬도 사타구니 부상으로 8강에 출전하지 못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벤투호의 전력을 급격히 떨어뜨리는 큰 악재로 작용했다.
벤투호도 5년 전 16강서 체력 방전
16강전에 체력을 쏟아부은 것도 똑같다. 5년 전 벤투호는 16강에서 바레인과 연장전까지 이어간 끝에 2-1로 이겼다. 가까스로 승기를 잡긴 했지만, 사흘 만에 카타르와의 8강전에 나선 벤투호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전반 내내 유효슈팅을 1개도 기록하지 못했고, 주축 선수들이 정상 컨디션을 보이지 못해 경기 내내 답답한 흐름을 이어가다 결국 1-0으로 무너졌다.
현 대표팀이 가장 우려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이번에도 16강전을 마치고 사흘 만에 8강전을 치러야 한다. 클린스만호는 지난달 31일 사우디전에서 연장전에 이어 승부차기까지 이어가며 그야말로 혈투를 벌였다. 추가시간 포함 총 132분을 내리 달리다 보니 일부 선수들은 연장전에서 무릎 경련을 일으키며 주저 앉기도 했다. 반면 우리와 8강에서 만나는 호주는 지난달 28일 일찌감치 8강행을 확정해 긴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다른 점은, 전술 유무... 벤투 '빌드업 축구' vs. 클린스만 '?'
5년 전과 다른 점도 물론 있다.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전술 유무다. 벤투 전 감독은 2018년 취임 때부터 줄곧 '빌드업 축구'를 강조해왔다. 수비 진영부터 공격을 만들어 가는 전술로, 골키퍼부터 시작해 필드 선수들의 안정감있는 패스와 넓은 시야를 기반으로 한다. 선수들간의 호흡이 중요하기 때문에 상당한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하는 전술이기도 하다.
벤투 전 감독은 이 전술로 안정적인 경기력을 보여주며 기대감을 높였지만, 한 가지 전술만을 지나치게 고집한 게 결국 발목을 잡았다. 아시안컵에선 다양한 팀들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는 만큼 이에 맞춰 유연하게 전술 변화를 꾀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움을 자아냈다.
반면 클린스만 감독은 이렇다 할 전술 없이 선수 개인 능력에만 의지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대표팀 선수들이 제각기 맹목적으로 열심히 뛰면서 투혼을 불사르고 있음에도 매번 경기가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는 이유다. 사우디와의 전반전에서는 한 번도 구사해보지 않은 스리백을 급하게 꺼내들었다 기세가 밀리자 후반에 기존 대열로 돌아가기도 했다. 클린스만은 사우디전을 마치고 "감독으로서 여러 장의 카드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지만, 과연 그가 카드를 들고 있긴 한 건지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의문을 품고 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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