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사람들' 이성진·스티븐 연, "모티프된 난폭 운전자에 감사"

아이즈 ize 김나라 기자 2024. 2. 2. 12:3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이즈 ize 김나라 기자

/사진=넷플릭스

'성난 사람들'로 전 세계를 사로잡은 이성진 감독과 배우 스티븐 연(연상엽·40)이 영광의 수상 레이스를 펼친 소회를 밝혔다.

이성진 감독과 스티븐 연은 2일(한국시간) 화상 간담회를 진행, 한국 취재진의 궁금증에 답했다. 두 사람이 의기투합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성난 사람들'(원제 Beef, 비프)이 최근 세계 최고 권위의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휩쓴 기념으로 간담회 자리가 마련됐다.

'성난 사람들'은 한국계 노동자(도급업자) 대니 조(스티븐 연)가 난폭 운전을 하고 달아난 사업가 에이미(앨리 웡)를 집요하게 추격, 예측불가의 복수전을 펼치며 벌어지는 공방전을 담은 웰메이드 블랙 코미디. 작년 4월 공개 당시 5주 연속 넷플릭스 시청 시간 10위 안에 들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제작·연출·극본의 이성진 감독을 비롯해 출연 배우 스티븐 연, 영 마지노, 죠셉 리, 저스틴 H. 민, 애슐리 박, 데이비드 최 등 한국계 미국인이 대거 참여해 국내에서 더욱 주목을 이끌었다.

결국 이 작품은 지난달 제81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TV 단막극 시리즈 부문 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까지 3관왕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뿐만 아니라 '성난 사람들'은 1월 열린 제75회 프라임타임 에미상 시상식에서 TV 미니리시즈·TV 영화 부문에서 작품상·감독상·작가상·남우주연상·여우주연상·캐스팅상·의상상·편집상 등 무려 8관왕을 올렸다. 특히 스티븐 연은 한국계 최초로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거머쥐고, 에미상까지 차지하는 성과를 냈다. 에미상 남우주연상은 '오징어 게임' 이정재에 이은 쾌거다.

왼쪽부터 스티븐 연, 이성진 감독 /사진=제75회 프라임타임 에미상® 시상식

이 같은 경이로운 수상 릴레이에 대해 이성진 감독은 "예술을 설명하는 벤 다이어그램(Venn Diagram)이 있다. 한쪽 동그라미는 항상 날 괴롭히는 의심이고 다른 한쪽 동그라미는 나르시시즘인데 이 가운데 부분, 교집합이 바로 예술이라는 거다. 나 역시 '과연 남들이 내 예술에 대해 관심이나 있을까' 싶다가도, 어떨 때는 '내가 모든 상을 다 탈 거야' 한다. 항상 오락가락하는데, 이번 수상으로 그 중간 어디쯤에 도달한 듯한 기분이다"라고 소감을 얘기했다.

뒤이어 스티븐 연은 "일단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제가 '성난 사람들'의 주제를 표현할 수 있는 일부가 되었다는 것, 작품에 참여한 자체로 무척 감사하다. '성난 사람들'을 통해 이렇게나 각 나라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느꼈고 인류로서 유대를 느껴 이런 부분이 굉장히 기분 좋았다"라고 작품을 향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남우주연상 수상을 예감했느냐"라는 질문엔 "수상을 예상한다는 건 쉽지 않다. 단, 희망할 따름이다. 굉장히 기쁘게 생각하는 건 작업 과정이다. 함께한 모두가 하고자 하는 이 이야기에 대해 깊이 관여했고, 서로의 생각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과정 안에 푹 빠져있었다. 그래서 처음 '성난 사람들'이 공개되었을 때, 이 작품이 어떤지 평가보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더 많은 시사점이 있을 거라 봤다. 하고 싶었던 이야기, 전달하려는 의도를 담아서 저희 모두가 큰 자신감이 있었다. 그만큼 신뢰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깊이 느낀 건 감사함이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여기에 반응해 주셔서 깊이 감사하다"라고 진심을 전했다.

이성진 감독은 수상 이후 변화를 묻는 말에 "되게 피곤하다"라고 한국어로 답하는 재치를 발휘했다. 그는 "내가 속한 공동체에, 그동안 내가 존경한 예술가들에게 인정받아 기쁘다. 그리고 굉장히 겸허한 마음이다. 내가 처음 시작할 때 어땠고,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생각이 많이 든다. 저 또한 감사한 마음 가장 크다. 나의 삶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제게 영향을 주었나 생각해 보면, 감사함이 가장 많이 들 수밖에 없다"라고 겸손하게 답변했다.

'성난 사람들'이 전 세계 시청자들을 홀린 비결은 무엇이라고 볼까. 이성진 감독은 "'성난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많은 분의 마음을 울렸던 부분은 캐릭터 안에서 각자 자기 자신의 일부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작품 초기부터 스티븐 연과 이런 얘기를 많이 나눴다. 우리의 어두운 내면을 조명하고, 이를 서로가 상호 간에 바라보며 비로소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나의 내면의 어둠을, 남에게서 볼 때 비로소 서로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이루어진다고 본다. 물론, 각 개인마다 느끼는 부분이 다르겠지만, 제가 생각한 '성난 사람들'은 그랬고 이 지점이 많은 분에게 와닿지 않았나 싶다"라고 인기 요인을 짚었다.

스티븐 연은 모두의 공감을 자극한 대니 조를 연기한 감상을 남겼다. 그는 "대니는 어떻게 보면 우리가 모두 갖고 있는 수치심을 집약한 인물이라는 생각이다. 대니의 특징적 차별점은 몹시 무력하고, 통제력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저도 굉장히 공감했다. 저 역시도 가장 불안하다고 느낄 때가 통제할 수 없을 때, 무력하다 느낄 때라서. 배우로서 연기할 때는 선택권이 주어진다. 무력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지만, 배우인 나 자신은 '통제력이 있어'라고 여기면서 표현하는 선택. 마치 시청자들에게 윙크하는 것과 같은데, 대니의 경우는 그렇게 접근하면 안 되었다. 나조차 통제력을 잃어버리고 모든 걸 내려놓아야 하는 캐릭터였다. 그랬기에 이상해 보이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들었는데 그것조차도 내려놓아야 했다"라며 명연기의 비결을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스티븐 연은 "대니를 포기한다는 건 결국 우리 자신을 포기하는 게 아닐까 싶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건 우리 모습 그대로 이해받고 수용되길 원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든다"라고 작품의 의미를 되새겼다.

대니처럼 이민자의 삶을 경험한 스티븐 연은 "이민자 현실이라는 건 제가 직접 겪었기에 잘 아는 부분이 크다. 제 삶 속에 참고할 만한 다양한 인물과 이야기도 많았는데, 구체적 경험을 충실히 담아내되 그것 이상의 걸 만들어낸 과정이었다. 결국 인간성을 부여해 만들어내자는 게 목표였다. 진실되게끔 할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를 꼭 반드시 담아내 소비를 위해 녹여내는 접근은 아니었다. 우리가 먼저 소화하여 우리 걸로 만들자, 그렇게 한 이후에 '성난 사람들'이 만들어진 거다. 여기엔 모든 출연진, 감독님, 영화 '미나리'에도 참여했던 편집자의 역할도 컸고, 작품에 관여한 모든 사람이 진실성에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 과정 자체가 우리의 이야기였고 창작 활동, 표현 방식이었다"라며 거듭 진정성을 강조했다.

이성진 감독은 "스티븐 연이 '성난 사람들' 아이디어 단계에서 아주 많은 영향을 주었다. 전화 통화를 하며 많이 웃고 한 기억이 나고, 각자의 한인교회 경험을 나누며 작품에 넣어보자 했다"라고 떠올리며 시너지 효과를 자랑했다. 

스티븐 연은 "이민 2세대 배우로서 '칸의 남자' 송강호에 버금가는 성과를 냈다"라는 극찬이 나오자 "이성진 감독과 우리 둘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영혼 같은 존재가 송강호 배우다. 말도 안 되는 비교다. 의도는 감사하지만, 반박하겠다"라고 격한 팬심을 고백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이내 그는 "솔직히 제가 뭐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간 되돌아보면 멀리 긴 길을 지나왔구나 하는 생각은 든다. 기쁘게 느끼는 건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이 누구인지 조금은 더 알게 되었다는 거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품어줄 수 있게,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됐다. 보다 더 나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감에 따라, 스스로에게 친절한 사람이 되는 걸 배워가고 있다.  돌아보면 어떤 순간엔 분노하기도 했고, 왜 나한테 마땅히 주어져야 할 게 주어지지 않는 건지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러다가 '성난 사람들'처럼 좋은 작품을 만나면, '내가 왜 그렇게 화를 냈지?' 싶더라. 돌아보면 이 모든 과정이, '내 이야기가 결국 말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결론적으로는 잘 모르겠다(웃음). 그저 감사할 따름이고 살아있어서 이런 것들을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감사하다"라고 남다른 감회에 젖었다. 

또한 스티븐 연은 "'성난 사람들'로 한국과 깊이 연결되어 기쁘고, 굉장히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다. 무척 보람되고 무척 감사드린다"라고 한국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잊지 않고 챙겼다.

이성진 감독은 각광받는 미국계 한국인 감독으로서 앞으로도 뚝심 있는 행보를 예고했다. 그는 "제 정체성은 '성난 사람들'에 담겼다. 미국에서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살아가는 주제를. 이를 전면적으로 말하는 건 아니지만 내러티브 안에 유기적으로 잘 녹아들어 있다. 늘 그 주제를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제 존재 자체에 깊이 박혀 있다. 이는 향후 내놓을 작품에도, 또 만들길 희망하는 영화에도 계속 녹아져 담길 주제다"라고 밝혔다.

왼쪽부터 이성진 감독, 스티븐 연

끝으로 이성진 감독은 '성난 사람들' 탄생에 영향을 준 '난폭 운전자'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며 이목을 모았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난폭 운전 사건은 실제로 이성진 감독이 경험했던 일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성진 감독은 "아마도 그 사람이 하루 일진이 안 좋았아서 그랬을 거다. 결과적으로, 여러모로 감사드리는 게 그 사람이 그날 그렇게 (난폭 운전을) 하지 않았다면 '성난 사람들'은 없고 저도 지금 이 자리에 앉아 대화할 일도 없었을 거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스티븐 연은 "더 희한한 건 '그날 그 사람이 어땠을 거다' 하는 추측이 사실 감독님 본인의 것이라는 거다. 그 캐릭터가 감독님인지, 그 사람인지 생각해 보면 참 희한하다 싶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에 이성진 감독은 "그렇게 생각하면 인생은 진짜 희한하다. 결국 삶이란 이런 방식으로 너무나 아름답고도 참 희한하다고 본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게 바로 우리가 만드는 이런 작품이 되는 것이겠죠"라고 드라마를 관통하는 답변을 내놨다.

Copyright © ize & iz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