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가 어때서'… 86살에 받아 든 졸업장

김민지 기자 2024. 2. 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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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부경중·부경보건고 성인반 418명 졸업식
40대부터 80대까지, 60세 이상 학생 90%↑
[부산=뉴시스] 하경민 기자 = 2일 부산 사하구 은항교회에서 열린 부산 부경보건고등학교와 병설 부경중학교 졸업식에 참석한 만학도 졸업생들이 후배들의 축하 꽃다발을 받고 있다. 이날 졸업식에는 배움의 끈을 놓쳤던 40~80대 늦깎이 중·고교생 418명(중학교 21회 202명, 고등학교 22회 216명)이 꿈에 그리던 졸업장을 품에 안았다. 2024.02.02. yulnetphoto@newsis.com


[부산=뉴시스]김민지 기자 =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는 말을 행동으로 실천한 늦깎이 중·고교생 418명. 2년간의 공부를 마친 이들이 드디어 졸업장을 받아 들었다. 늦깎이 학생들의 얼굴에는 야속한 세월의 흔적이 주름으로 남아 있었지만, 졸업장을 손에 쥔 이들의 얼굴에는 어느 때보다 생생한 웃음꽃이 피었다.

2일 오전 10시 부산 사하구 은항교회. 이곳에서는 늦깎이 중·고교생들의 특별한 졸업식이 열렸다.

4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학생 418명(부경중 202명·부경보건고 216명)은 이날 자신의 졸업장을 받기 위해 졸업 가운을 갖춰 입고 이곳에 모였다.

그간 누군가의 어머니이자 아버지, 할머니 또는 할아버지로 불리는 데 익숙했던 이들은 이 순간만큼은 어엿한 한 명의 학생으로 이 자리에 서 있었다.

열에 아홉은 60세 이상으로 이뤄진 이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나이를 자랑하는 '어른'이 있었다. 최고령의 주인공은 중등부 졸업생 송호범(86)씨.

송씨는 아내 강명순(78)씨와 함께 학교생활을 마친 부부 졸업생이기도 하다. 송씨는 "배움에 대한 갈증이 남아 있어 아내와 함께 용기를 내서 입학하게 됐다"고 말했다.

학교생활 중 이들 부부에게 찾아온 뜻밖의 일은 하나의 시련이 되기도 했다. 그는 "학교에 다니던 중 아내가 담도암 판정을 받았었다"며 "그로 인해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어려움을 함께 이겨낸 끝에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부산=뉴시스] 하경민 기자 = 2일 부산 사하구 은항교회에서 열린 부산 부경보건고등학교와 병설 부경중학교 졸업식에 참석한 만학도 졸업생들이 눈물을 닦고 있다. 이날 졸업식에는 배움의 끈을 놓쳤던 40~80대 늦깎이 중·고교생 418명(중학교 21회 202명, 고등학교 22회 216명)이 꿈에 그리던 졸업장을 품에 안았다. 2024.02.02. yulnetphoto@newsis.com


고등부에서는 송씨보다 두 살 어린 홍종오(84)씨가 최고령자로 선정됐다. 팔십이 훌쩍 넘은 나이이지만, 홍씨는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학교를 단 한 번도 빠진 적 없는 개근생이었다.

동시에 그는 늘 일정한 시각에 등교해 학업에 매진한 '우등생'으로도 유명했다.

이외에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은 이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고등부 졸업생인 박상이(42)씨는 베트남 출신으로 우리나라에 귀화한 뒤 낮에는 어망 공장 일을, 밤에는 학교에서 공부를 이어왔다. 그는 두 자녀를 둔 엄마이기도 하다.

박씨는 "자녀들에게 떳떳한 엄마가 되기 위해 이 학교에서 중학교 과정과 고등학교 과정 모두를 마쳤다"며 "부산보건대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해 공부를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또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도 건강 관리를 하며 공부에 매진한 학생, 학교에 다니며 누적 1만 시간의 봉사활동 시간을 기록한 학생, 아픈 부인의 병간호를 하면서도 학교생활을 마친 학생 등 졸업생들의 삶에는 각자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었다.

[부산=뉴시스] 하경민 기자 = 2일 부산 사하구 은항교회에서 열린 부산 부경보건고등학교와 병설 부경중학교 졸업식에 참석한 만학도 졸업생이 눈물을 닦고 있다. 이날 졸업식에는 배움의 끈을 놓쳤던 40~80대 늦깎이 중·고교생 418명(중학교 21회 202명, 고등학교 22회 216명)이 꿈에 그리던 졸업장을 품에 안았다. 2024.02.02. yulnetphoto@newsis.com


선후배가 건네는 송사와 답사에서는 따뜻한 온기가 그대로 묻어났다.

송사를 맡은 재학생 대표 김순옥씨는 "지난 시간 솔선수범하는 선배님들, 따뜻한 마음의 선배님들을 보며 많은 것을 배웠다"며 "졸업 후 나아가는 넓은 세계에서는 배움에 대한 부족함과 학력에 대한 열등감으로 인해 주눅 들지 마시고, 힘찬 모습으로 생활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답사를 한 김민숙씨는 스승의 은혜에 큰 감사를 표했다. 그는 "지식과 사랑을 가르쳐 주시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신 선생님들에게 감사드린다"며 머리를 숙였다.

김씨는 이어 "늦깎이 나이에 더 이상의 성장은 불가능할 것 같았던 상처뿐인 마음을 치유할 수 있었다"며 "많은 추억이 깃든 이 교정을 이젠 떠나야만 하지만…"이라며 터져 나오는 눈물에 말을 멈추기도 했다.

입술을 깨물며 말을 이어나간 그는 "매일매일 새로운 태양을 맞이하듯 새 희망을 가슴에 안고 도전하며 성장해 나갑시다"라며 모두에게 용기를 전했다.

졸업은 또 하나의 시작. 고등부 학생 중 62%는 대학에 진학해 자신이 소망했던 공부를 이어갈 예정이다.

배움의 한을 풀어 주는 이 학교의 역사는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성인반이 생긴 이후 학교를 거쳐 간 늦깎이 학생은 총 6045명(중등부 3070명·고등부 2975명)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mingya@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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