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사우디서도 거세지는 ‘女風’… 그 중심에 ‘한국어 열풍’

최준영 기자 2024. 2. 2.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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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중동 ‘석유없는 미래’ 준비한다 <9>
리야드 프린스술탄대 ‘세종학당’ 가보니…
K-팝 등 한류에 밝은 청년여성
한글 활용 양국교류 주역 부상
윤 대통령 방문 때 통역 맡기도
“선생님 부족해 못 온 학생 많아
한국문화 교류 더 풍부해지길”
히잡 두르고 ‘화기애애’ 사우디아라비아 청년 여성들이 지난 1월 16일(현지시간) 리야드 프린스술탄대에서 한국어 교육기관 ‘리야드 세종학당’이 주최한 교류 간담회에서 한국 문화와 한국어를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리야드=글·사진 최준영 기자 cjy324@munhwa.com

“언젠가는 한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 친구와 소통하다 보니 성격도 비슷하고 통하는 점도 많더라고요. 깊은 대화를 하기 위해 한국어를 독학했습니다.”

지난 1월 16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 위치한 사립 종합대 프린스술탄대(PSU)에 한국에 대해 꽤 잘 안다는 현지의 청년 여성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PSU에서 운영 중인 한국어 교육기관 리야드 세종학당 주최로 열린 교류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학교를 찾은 12명의 청년 여성은 아랍어가 아닌 유창한 한국어로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주고받았다. 세종학당 수강생부터 PSU 학부생, K-드라마 관련 동호인 등 참석자들은 한국 문화와 한국어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매개로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사우디가 여성의 사회 참여를 대폭 허용하는 등 큰 변화를 맞고 있는 가운데, 일찌감치 한류에 눈을 뜬 현지의 청년 여성들이 미래를 향한 양국 교류 확대의 주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윤석열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 당시 통역을 하기도 했다는 두하 알감디(여·22) 씨는 “한국 예능 프로그램을 계기로 한국어와 한국 역사 공부에 푹 빠지게 됐다”며 “앞으로 한국 유학도 다녀와 사우디 학생에게는 한국어와 한국 역사를, 한국 학생에게는 아랍어를 전문적으로 가르치고 싶다”고 말했다. ‘다연’이라는 한국어 이름도 지었다는 달랄 알 카바(여·24) 씨는 “우연히 한국 음악을 듣고 한국어 발음이 예쁘다고 느껴 16세 때부터 독학을 시작했다”며 “특히 한국인 친구들이 대체로 외향적인 성격에다 가족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여 더욱 친근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사회를 맡은 최하은(여·32) 세종학당 교사가 분위기를 풀기 위해 좋아하는 한국 연예인에 대해 묻자 ‘배우 지창욱과 방탄소년단(BTS)요’ ‘배우 현빈이 최고예요’ ‘가수 신용재 노래를 즐겨 들어요’ ‘사랑의 배터리 부른 트로트 가수 홍진영요’ ‘에스파 등 SM(연예기획사) 소속 가수들은 전부 좋아요’ ‘혹시 신인 그룹 제로베이스원 아시는 분 있나요’ 등 답변이 경쟁적으로 쏟아지며 한바탕 웃음을 자아냈다.

PSU는 사우디 청년들 사이에서 부는 한국어 열풍을 감안해 사우디 대학 최초로 이번 봄학기 학부과정에 한국어 기초과정 교양과목을 개설했다. 사우디 최초 사립대로 공대와 경영대 등 6개 단과대를 운영 중인 PSU는 실력주의를 표방하며 유수 인재를 배출하고 있다. 이브라힘 알 가말레스(58) PSU 평생교육원장은 “앞으로 사우디 최초의 한국어 정규 학과 설립도 적극 고려하고 있다”며 “최근 네옴시티 프로젝트 등을 계기로 한국과 사우디 간 교류·협력이 확대되고 있는 만큼, 많은 한국 기업이 사회공헌활동(CSR) 차원에서 세종학당 활성화와 대학 내 한국관 건립 등에 힘을 보탰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사우디 내에서 한국어 교육과 문화 교류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리야드 세종학당은 2022년 10월 PSU 캠퍼스에 사우디 최초로 문을 열었다. 세종학당은 현재 전 세계 84개국에서 244곳이 운영되고 있다. 중동에서는 아랍에미리트(UAE)나 바레인 등에서 이미 문을 연 바 있다. 리야드 세종학당 관계자는 “2022년 90명에 이어 지난해 250명의 수강생이 등록해 한국어 학습과 한식 체험, 합창단 활동, 연극공연, 문화 교류 등 다양한 활동에 참여했다”며 “한국문화원이 없는 사우디에서 세종학당이 한국에 관심 있는 사우디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교민사회 등을 중심으로 리야드 세종학당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기 위해선 한국의 꾸준한 관심과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건의가 나왔다. 실제 이날 현장에서 만난 청년들은 “한국어 수업이 더 늘었으면 좋겠는데, 선생님이 부족해 수업을 듣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다”거나 “아랍어가 국가마다 차이가 있는데, 사우디 출신 통역전문가가 많이 배출돼야 중요한 자리에서 미묘한 뉘앙스까지 전달할 수 있을 것”이란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올해 봄학기에는 파견교사 1명을 포함해 총 4명의 교사가 정규과정 15강좌, 특별과정 4강좌 등 총 19강좌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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