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의 연결 느껴"…'성난 사람들' 이성진 감독X스티븐 연, 에미상 8관왕의 이유 [종합]
[마이데일리 = 강다윤 기자] 에미상 8관왕의 영예를 안으며 전세계를 열광시킨 '성난 사람들(원제 BEEF)'의 두 주역 이성진 감독과 배우 스티븐 연이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2일 오전 넷플릭스 시리즈 '성난 사람들'(극본 연출 이성진) 온라인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행사에는 이성진 감독을 비롯해 배우 스티븐 연(한국명 연상엽)이 참석했다.
'성난 사람들'은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도급업자 대니(스티븐 연)와 삶이 만족스럽지 않은 사업가 에이미(앨리 윙) 사이에서 난폭 운전 사건이 벌어지면서, 내면의 어두운 분노를 자극하는 갈등이 촉발된 이야기를 다룬 작품. 한국계 작가·감독 이성진이 연출과 제작, 극본을 맡는 등 한국계 배우들과 제작진이 대거 참여한 작품이기도 하다.
지난해 4월 공개된 직후 넷플릭스 시청 시간 10위 안에 5주 연속 이름을 올리는 등 세계적인 흥행에 성공했으며, 높은 작품성과 배우들의 연기력을 인정받아 에미상을 비롯한 각종 시상식을 휩쓸었다.
이날 이성진 감독은 "스티븐 연과 내가 아주 초기부터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며 "굉굉히 솔직하고 우리의 내면에 깊이 감춰져 있는 어두운 부분을 조명하는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서로의 그런 어두움을 상호 간에 바라보게 되면서 서로를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어 "내가 가지고 있는 내면의 어둠을 남에게서 볼 때 그때 비로소 서로를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물론 각 개인마다 보고 나서 느낀 점은 다르겠지만 최소한 내가 생각했을 때 그런 부분이 많은 분들의 마음에 와닿지 않았나싶다"고 덧붙였다.
스티븐 연은 "이러한 이야기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는 것, 내가 참여할 수 있었다는 것, 이런 주제를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의 일부가 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며 "이렇게나 굉장히 각 나라들이 세계적으로 깊이 연결되어 있는 순간들, 우리가 인류로서 또 깊이 연결을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 굉장히 좋다"고 말했다.
'성난 사람들'은 제75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TV 미니시리즈·TV영화 부문 작품상과 함께 감독상, 작가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캐스팅상, 의상상, 편집상까지 총 8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제81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는 TV미니시리즈 부문 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등 3관왕을 차지했다.
에미상 수상을 기대했는지 묻자 이 감독은 "온라인 상에 예술을 설명하는 벤다이어그램이 있다. 한쪽 동그라미는 항상 나를 괴롭히는 자기의심이고 옆에 있는 동그라미는 고삐 풀린 나르시즘이다. 그리고 그 교집합이 바로 예술이라는 것"이라며 "나도 그 양쪽을 오간다고 생각한다. 과연 남들이 내 예술에 관심이 있을까 싶다가도 어느 날은 우리가 모든 상을 다 받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성난 사람들'은 그 중간 어디쯤에 도달한 것 같다"고 답했다.
스티븐 연 역시 "사실 이런 것을 예상하는건 쉽지 않다. 단지 그런 것들이 일어나길 희망할 뿐"이라며 미소 지었다.
그러면서도 "처음 공개됐을 때 어떻게 반응하고 느끼는지는 '이 작품이 어떤 작품이다' 보다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더 많은 시사점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며 "우리 모두가 너무나 큰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 이를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의도에 대해서. 심지어 그때 당시에는 자극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도 그만큼 자신감과 신뢰가 있었다"고 뿌듯하게 말했다.
또한 이 감독은 에미상 수상 이후 달라진 점에 대해 "그냥 되게 피곤하다"며 너스레를 떨더니 "물론 너무 좋다. 내가 속한 공동체, 내 동료들 그리고 내가 존경하고 높게 샀던 예술가들에게 인정받는 건 너무나 기쁜 일이다. 장히 겸허한 마음을 갖게 된다. 내가 처음에 시작했을 때 어땠는지,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많은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극 중 한국계 미국인 도급업자 대니 조(한국명 조성현)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 스티븐 연은 "대니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모습의 수치심을 집약한 인물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대니의 차별점은 그가 몹시 무력하고 통제력이 없는 인물이라는 것"이라며 그런 상황 속의 감정을 나도 굉장히 공감한다. 내가 가장 불안하다고 느낄 때가 전혀 통제할 수 없는, 무력하다고 느끼는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실 배우로서 연기할 때 연기자로서 선택권이 주어진다. 내가 굉장히 무력한 사람, 통제력을 잃은 사람을 연기해도 배우인 나 자신은 통제력이 있는 것처럼 연기할 수 있다. 그래서 때로는 마치 화면 속에서 내가 이 화면을 보고 시청자들에게 윙크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줄수도 있다"면서도 "대니라는 인물은 그렇게 접근하면 안됐다. 나 역시 대니에게 녹아들어 배우인 나조차도 통제력을 잃고 모든 것을 내려놔야 하는 캐릭터였다"고 연기 포인트를 꼽았다.
이어 "내가 수상소감에서도 이야기했듯 앤드류가 '절대로 대니를 포기하지마'라는 말을 해줬는데 아마도 대니라는 인물을 포기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을 스스로가 포기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생각해보면 사실 궁긍적으로 우리 모두가 원하는 것은 우리의 모습 있는 그대로 이해받고 또 사랑받고 수용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대니를 통해서 이민자의 정체성을 생생히 표현한 비결에 대해서는 "일단 내가 직접 겪었기 때문에 잘 아는 부분이 크다"고 운을 뗐다. 그는 "이성진 감독과 앨리 윙과의 협력도 있었고 우리의 삶 속에 참고할 다양한 인물들이 참 많았다"며 "재밌는 것은 각자 우리 삶 속에서 참고한 인물을 모아서 이야기하면 왜 이렇게 다 똑같은지, 그 자체도 사실 되게 흥미로웠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어떤 구체적인 개인의 경험을 하나하나 모으는 것이 되든지 아니면 그런 경험을 우리가 최대한 충실이 담아내되 그 이상의 것을 만들어내든지 어쨌든 결국에는 어떤 인간성을 부여해서 우리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였다"며 "어떤 구체적인 사건이나 이야기를 반드시 화면에 담아내서 작품에 녹여내는 접근은 아니었다. 우리가 먼저 우리 자체의 것을 소화해내자,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는게 컸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이 감독 역시 "딱 찝어서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우리가 원했던 것은 솔직한 캐릭터를 그려보는 것이었다"며 "난폭 운전으로 시작해서 서로의 어둠을 의식하고 유대를 느끼는 상호 간에 연결이 되는 것. 그렇게 시작과 끝 지점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 과정을 그리는데 있어서 최대한 진실되게 그리자는게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감독과 스티븐 연은 '성난 사람들'의 인물들처럼 미국에서 한국계 미국인으로 살고 있다. 한국이라는 뿌리에 대한 자각과, 미국에서 한국계로 산다는 것에 대한 고민이 창작에 미치는 영향이 있었을 터.
이에 대해 이 감독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의 많은 부분을 이번 작품에 담았다. 아주 대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유기적으로 많은 캐릭터들이 한국계 미국인으로 나온다"며 "늘 그런 주제에 대해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주제 자체가 내 안에 굉장히 깊이 박혀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많은 부분이 이번 작품에 담겨있고 앞으로 내놓을 작품에도, 또 희망적으로는 언젠가 만들 영화에도 녹여서 담고 싶은 주제"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스티븐 연은 젊은 배우이자 이민 2세대 배우로서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묻자 "내가 해온 일을 되돌아봤을 때 참 멀리 긴 길을 지나왔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됐든 이 과정을 통해 내가 이전보다 나 자신이 누군지 조금은 더 알게된 것 같아 기쁘다"며 "그런 과정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품어줄 수 있게 받아들여질 수 있게 된 것 같다. 또 나 자신이 누구인지 점점 알아감에 따라 나 스스로에게 더 친절한 사람이 되어가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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