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만하고 게으르다고 욕먹었다는데...동의보감 허준의 실제 얼굴은?

조태성 2024. 2. 2.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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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 연구한 김호 박사의 '허준 평전'
드라마 이미지와는 다른 허준의 실제 모습
1999년 방영된 MBC드라마 '허준'에서 허준 역을 맡은 배우 전광렬이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드라마 인기가 워낙 높아 허준이란 인물에 대한 국민 인식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610년, 그러니까 광해군 2년에 25권 분량으로 발간된 허준의 '동의보감'엔 적절한 더하기와 적절한 빼기가 필요하다. 지나친 절대화, 지나친 폄훼 모두 금물이다.

'허준 평전'은 이 부분을 파고드는 책이다. 허준이라면 아무래도 1999년 전광렬 주연의 MBC드라마 '허준'을 빼놓을 수 없다. 시청률 50~60%대를 넘나드는 폭발적 인기를 끌었고, 그 인기 덕에 2013년 김주혁 주연의 '구암 허준'으로 리메이크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 엄청난 인기가 되레 허준의 실상을 가린 측면이 있다. 전문연구자가 쓴 평전답게 이 책은 '팩트 체크' 기능을 성실하게 수행한다.


허준은 왈패들과 놀아나지 않았다

우선 평북에서 나서 경남 산청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허준은 서자였으나 당대의 명문가 양천 허씨 가문의 사람이었다. 양천 허씨의 세거지는 양천(지금의 서울 강서구 가양동)이었고 허준의 묘가 파주에 있기에 경기 사람으로 보는 게 통설이다. 저자는 전라 장성일 가능성도 제기해 뒀다.

경기도 파주시 진동면 하포리에 있는 허준 묘역. 비무장지대 안에 있어서 위치가 확인되지 않았으나 군부대 협조 아래 조사한 끝에 1992년 경기도기념물로 지정됐다. 문화재청 사진

허준이 서자라는 출신 성분 때문에 젊은 시절 왈패들과 놀았다고 보기도 어렵다. 허준은 선조 때 정승을 지낸 미암 유희춘(1513~1577)과 친밀한 관계였다. 유희춘은 당대 기호 사림의 핵심 인물로 이름난 독서인이었다. 유희춘이 남긴 '미암일기'를 보면 유희춘조차 못 구한 책을 허준이 구해다 준 얘기들이 있다. 30세에 내의원에 들어간 것도 유희춘의 천거 덕이었다. 여러 정황을 감안하면 젊은 허준은 서자라 과거를 못 봤다 뿐, 기호 사림 네트워크와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여러 서적을 섭렵하며 의학을 집중 공부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나마 많이 지적된 것처럼 '스승 유의태'도 거짓이다. 저자는 '장한웅 - 양예수 - 허준'을 사제관계로 밝혀뒀다. 재밌는 점은 허준의 내의원 선배였던 양예수가 신의(神醫)라 칭송받으면서도 '패도(覇道)를 쓴다'는 평을 받았다는 점이다. 양예수는 인삼 같은 독한 약을 썼기에 감쪽같이 낫게 하면서도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는 의미다.


허준은 왕실의 절대적 신임을 받았다

양예수의 영향일까. 허준도 두창을 심하게 앓는 광해군에게 '저미고'라는 독한 신약을 처방해 낫게 했다. 선조와 광해군, 모두에게 절대적 신임을 얻게 되는 계기였다. 그래서 말년에 동의보감을 비롯, 각종 의서와 이를 한글로 푼 언해본 발간 작업을 이어가는데 이는 왕실의 전폭적 지원하에 이뤄졌다.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동의보감 초간본. 이 자료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보관 중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훌륭한 의사라는 소문에 많은 백성들이 몰려들었던 모양이다. 이를 감당하지 못한 허준은 문을 닫아걸고 환자를 돌려보냈다. 의서 편찬 등 다른 작업이 더 중요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실망한 백성들 사이에선 거만하고 게으르다는 악평이 돌기도 했다.

드라마틱한 영웅담과는 결이 다른 이야기들이다. 그렇다고 허준의 위대함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위대하되, 포인트가 다르다. 저자의 설명은 ①긴급 처방전을 제시했다 ②조선의 자연을 이해했다 ③의술에다 성리학을 불어넣었다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허준은 성리학적 의술을 집대성했다

허준은 임진왜란 시대를 살았다. 전쟁이 뭇 백성들의 삶을 다 할퀸 시절이다. 돈도 지식도 없는 산골 노인네도 현장에서 뭔가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게 급선무였다. 또 중국 의서에 등장하는 약재들이 조선의 무엇에 해당하는지, 해당하는 게 없다면 조선에서는 무엇으로 대체할 수 있는지 등을 세세히 밝혀뒀다. 동시에 사람 몸을 다스리는 의술을 나라를 다스리는 치국에다 비유했다. 이는 그 이전 도교적 느낌이 강한 의술을 성리학적으로 바꿨다.

허준 평전·김호 지음·민음사 발행·280쪽·2만 원

후대 지식인들이 동의보감을 최고의 의서라 평가하며 자신들의 책에 앞다퉈 인용하는 건 간편하면서 백성에게 이롭고, 조선의 물질과 풍속을 반영했으며, 성리학적 합리주의에 충실했다는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허준의 초상화는 전하지 않는다. 다만 초상화를 본 사람의 말은 전한다. "몸이 비대하여 살졌으며 미소를 띤 얼굴을 보니 누구라도 허준의 초상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조태성 선임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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