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 한방에 3억?" 시력 잃어가던 희귀병 환자들, 희망 찾았다
유전성 망막질환의 근본 원인 해결···유전자치료제 첫 등장
국내서도 2024년 2월부터 건보 적용···환자 부담 낮아져
‘시각장애인을 대변하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스타가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유전자 치료제를 투여 받았다.’
작년 5월 캐나다 공영방송 CBC는 희귀 유전질환으로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던 19세 청년 아담 브라운의 사연을 집중 조명했다. 태어날 때부터 ‘망막색소변성증(retinitis pigmentosa)’을 앓던 브라운은 자라면서 시기능이 차츰 저하됐다. 망막색소변성증은 특정 유전자 이상으로 정상적인 망막기능을 하는 시세포와 망막색소상피세포 등에 이상과 변성이 생겨 시기능을 상실하는 ‘유전성 망막질환’의 일종이다.
망막은 카메라의 필름과 같이 눈에 들어온 빛을 전기신호로 바꾸는 시각 회로를 통해 시각 정보를 뇌에 전달한다. 빛의 입자인 광자가 망막으로 들어와 막대세포, 원뿔세포, 망막색소상피세포 등 빛에 민감한 광수용체 세포와 충돌하면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면서 빛이 전기 신호로 변환된다. 시각 회로에 필수적인 RPE65 단백질을 생성하는 RPE65 유전자 돌연변이로 발생하는 대표적인 유전성 망막질환으로 망막색소변성증과 레베르 선천성 흑암시 등이 알려져 있다. RPE65 단백질을 생성하는 RPE65 유전자에 변이가 생기면 RPE65 단백질이 생성되지 않거나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광수용체 세포가 재설정되지 않고 퇴화한다.
망막색소변성증 환자들이 흔히 겪는 첫 번째 증상은 어두운 곳에서 시력이 감소하는 야맹증이다. 정상적으로는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이동하면 전혀 보이지 않다가 시세포의 작용으로 적응이 되면서 보이게 된다. RPE65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으면 주로 시각세포 중 막대세포가 먼저 손상을 받는데 시세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어두운 곳에서 적응을 하지 못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원뿔세포도 손상을 받고 주변 시야가 점차 좁아지다가 막대세포의 대부분이 파괴되면 바깥 부분을 볼 수 없게 된다. 마치 터널처럼 가운데 부분만 보인다고 해서 ‘터널시야(Tunnel vision)’라고 부른다.
원뿔세포까지 파괴되고 나면 그나마 남아있던 중심시야도 볼 수 없게 돼 완전히 실명하게 된다. 브라운은 일련의 변화와 함께 실명의 위협을 느꼈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캐나다 요크대학교에 진학해 음악을 공부하면서 SNS 플랫폼을 통해 피아니스트 겸 성우로서의 재능을 알렸고 때로는 시각장애인으로서의 고충을 털어 놓았다. 더욱 안타까운 건 그의 여동생에게도 같은 증상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시기능을 상실해 가는 10대 뮤지션 남매의 사연은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작년 이 맘때 틱톡과 인스타그램에서 브라운의 팔로워는 각각 15만 명과 2400만 명에 달했다.
그 무렵 브라운의 관심은 온통 글로벌 제약사 노바티스가 개발한 유전자치료제 ‘럭스터나(성분명 보레티진네파보벡)’에 쏠려 있었다. 2017년 미국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은 럭스터나는 단 한 번의 투여로 시기능 개선 효과를 볼 수 있는 소위 ‘원샷’ 치료제다. 국제학술지 란셋에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글로벌 3상 임상을 통해 럭스터나를 투여 받은 환자의 65%가 치료 1년 후 가장 어두운 밝기에서 장애물 코스를 통과하는 데 성공했다. 빛 민감도, 시야 등 다양한 시각적 지표도 유의미하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극적인 치료 효과는 유전성 망막질환을 일으키는 RPE65 돌연변이 유전자를 정상 유전자로 대체해 시각 회로를 복구하는 기전 덕분이다. 한쪽 눈 당 각 1회씩 망막 아래에 주사하도록 만들어진 럭스터나는 RPE65 유전자를 대체할 수 있는 정상적인 유전자를 복제해 아데노부속바이러스 2형(AAV2·Adeno-associated viral vector serotype2) 벡터에 삽입한다. 세포핵 안에 들어간 정상 RPE65 유전자의 복제본이 RPE65 단백질 생산을 시작하고, RPE65 단백질 생성과 함께 시각회로가 회복되면서 시기능이 개선되는 원리다.
‘안과 영역에 등장한 최초의 유전자치료제’라는 타이틀과 함께 등장한 럭스터나는 전 세계 시각장애인들을 흥분시켰다.
문제는 천문학적인 비용이었다. 2020년 캐나다 보건부의 허가를 받은 렉스터나의 환자 본인 부담금은 한 쪽당 45만 달러(약 6억 원), 양 눈 모두 투여 받으려면 10억 원을 호가했다. 럭스터나 투여의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은 유전자 돌연변이로 시력을 손실했으나 생존 망막세포를 충분히 가지고 있는 환자다. 치료 시기를 놓쳐 망막세포가 손상된 환자는 치료 효과를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명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앞에 두고도 애를 태우던 브라운의 사연이 SNS를 통해 전파됐고, 3년 여만인 2023년 3월 캐나다 각주는 럭스터나의 치료비를 지원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브라운은 온타리오주 건강보험(OHIP)으로 럭스터나를 투여 받은 1호 환자로 치료를 받고 시기능을 회복 중이다.
캐나다 10대 청년에게 새 삶을 선사한 ‘럭스터나’는 이달 1일부터 국내에서도 건강 보험 적용을 받는다. 2021년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은 럭스터나의 투약 비용이 한쪽 눈당 3억2600만 원, 양쪽 눈을 합치면 6억 5200만 원에 달했다. 이번 건보 적용을 통해 환자가 부담하는 비용이 1050만원까지로 줄어든다. 박규형 서울대병원 안과 교수는 “RPE65 유전자 변이는 유전성 망막질환 중에서도 환자가 적다. 우리나라는 동양에서도 유독 적어 밝혀진 환자가 10명이 채 되지 않는다”며 “럭스터나의 급여 적용은 유전성 망막질환에서 매우 의미 있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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