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오줌 범벅된 방...문을 열고 나올 수 있게 한 '이 사람' [선인장]
상처 받은 이들에 '찐친'이자 '정신적 지주'
아르바이트 비용으로 '더유스' 단체 유지
정부 향해 민간단체와의 협력 '호소'
[파이낸셜뉴스] 은둔형 외톨이 A씨의 방은 똥오줌으로 뒤덮였다. 집 안 전체가 오물 냄새로 가득했다. A씨는 왜 화장실이 아닌 방에서 볼 일을 해결한 걸까.
"방 밖으로 나와 가족들을 마주치는 게 두려워서 화장실을 못 가요."
A씨는 누구보다 지긋지긋한 은둔 생활을 그만두고 싶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용기 내 SOS 전화를 걸었다. 전화 상대는 '사람을 세우는 사람들 더유스' 김재열 대표(46).
A씨는 김 대표에 '집으로 와 달라'고 요청했고 김 대표는 며칠 뒤 그의 집을 방문했다. A씨와 마주 본 김 대표는 아무 조언도, 상담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일상 얘기부터 사는 얘기들을 늘어놨다. 그러자 A씨도 경계를 풀고 곧 주저리주저리 자신의 얘기를 꺼내 놓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10여년 전부터 더유스 운영을 시작해 학교 밖 청소년, 이주 배경 청소년 등을 만나왔다. 그는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자신의 딸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 일을 시작했다. 장애가 있는 딸이 사회에 나가면 적응하지 못할 것이 걱정됐다. 딸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주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도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상처 받은 이들의 아픔을 돌보기 시작했다.
현재는 한국은둔형외톨이 지원연대 대표, 또 신구대학교와 유한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하면서 은둔형 외톨이 청소년, 청년들을 회복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도움이 필요한 취약계층이 은둔형 외톨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우리나라 복지와 교육은 신청을 해야 누릴 수 있는 '신청주의' 특성이 있는데, 무기력 속에 방 밖을 나가는 것조차 힘든 은둔형 외톨이들은 신청 자체를 못해서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김 대표가 활동을 시작하고, 소문이 돌자 전국 곳곳에서 은둔형 외톨이 부모들이 '살려달라'며 연락해왔다. 당사자가 직접 주변 소문을 듣고 연락하기도 했다. 그럼 김 대표는 그곳이 전국 어디든, 찾아갔다.
그러나 막상 찾아가면 만날 수 없는 경우가 더 많다. 김 대표를 만나겠다고 마음을 먹고 연락은 했는데, 약속한 날에 방 밖을 나오는 게 두려워지면 결국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한 번은 김 대표가 '발가락이라도 보여달라'며 조금씩 마음의 문을 두드렸고 그렇게 발가락만 보기를 서너 번 한 뒤에야 문을 열고 나온 은둔형 외톨이를 만났던 경험도 있다.
어렵게 나온 은둔형 외톨이들은 대부분 몇 시간이고 자신의 얘기를 늘어놓기 바쁘다고. 귀 기울여주는 김 대표 앞에서 지금껏 못 했던 말들을 쏟아낸다고 한다.
만나는 게 정 어렵다는 이들을 위해서는 전화 상담도 진행한다. 처음에는 10분 통화하는 것도 어색해 하던 이들이 김 대표와 몇 차례 전화한 후에는 1시간이 넘어도 전화를 끊지 않는다.
가족을 만나는 것도 거부하는 이들의 마음 문을 열게 만드는 김 대표만의 비결은 무엇일까.
"저는 그들을 상담사로서, 선생님으로서 만나지 않아요. 친구로 만나요. 친구는 목적이 있어서 만나지 않잖아요. 은둔하는 이들을 방에서 끌어내겠다는 목적으로 만나지 않고 그냥 친구가 되어줘요. 친구가 되면 자연스럽게 나와서 만나고 싶거든요."
김 대표의 진심 어린 헌신으로 지금은 약 40명의 은둔형 외톨이들이 김 대표를 의지하고 있다. 더유스가 만난 은둔형 외톨이 중 절반이 사회에 복귀하는 결과도 얻었다.
은둔형 외톨이들에게 김 대표는 '찐친'이자 '정신적 지주'로 불린다. 이들의 자신을 향한 진심 어린 마음에 김 대표는 자주 감동의 눈물을 훔친다. 때로 김 대표 생각이 났다며 빼빼로데이에 빼빼로를 택배로 보내기도 하고, 목이 아프다고 흘리듯 말한 김 대표의 말을 기억해 목 캔디 세트를 보내주기도 한다. 또 김 대표가 보고 싶다며 사무실을 찾아오기도 한다.
덕분에 김 대표는 이 일을 계속해야 할 이유를 발견하지만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다. 수익성 사업이 아니다 보니 이윤은커녕 함께하는 3명의 직원들 월급을 주는 것조차 어렵다. 이에 김 대표는 시간 날 때마다 택배 알바부터 행사 보조 스텝 등을 하면서 단체 운영비를 채워나가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100명 정도의 후원인과 단체가 있어 더유스 운영을 간신히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후원자들은 "제가 하고 싶은 일, 해야 되는 일을 대신 해주고 계셔서 감사하다" "뉴스를 통해 접했는데 너무 자랑스러워서 후원하고 싶다" 등 저마다의 이유로 후원을 결심했다고 전해왔다.
김 대표는 은둔형 외톨이가 살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가 반드시 더유스와 같은 민간단체와 협력해야 한다고 연신 강조했다. 정부 차원에서 은둔형 외톨이를 위한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고 예산안을 편성했지만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공공 기관이 메우지 못하는 틈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공공 기관에서는 은둔형 외톨이들에 상담사를 붙여주는데, 정해진 몇 차례의 상담으로는 이들을 변화시킬 수 없다"라며 "은둔형 외톨이에게는 지속적인 정서적 교류와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다. 찾아가서 만나고 시간과 재정을 들여 오랜 시간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민간단체의 역할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대표는 시민들의 인식 개선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흔히들 은둔형 외톨이에 대해 '무기력한 사람' '멘탈이 약한 사람' 정도로만 치부하는데, 이들은 당초 가정, 학교, 친구 등에게 긍정적인 지지를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회복탄력성이 남들보다 약한 상태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똑같이 취업 실패 등의 어려움에 직면해도 은둔형 외톨이는 이미 일어날 힘이 남들보다 부족한 상태여서 더 빨리 주저앉고 회복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이들에게 '괜찮아, 그래도 돼, 잘될 거야'라며 긍정적 수용을 보여줄 수 있는 한 사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대표는 은둔형 외톨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안전한 사람, 안전한 공간'이라며 앞으로 전문적인 인력을 더 양성하고 안전한 장소를 만들고 싶은 꿈이 있다고 말했다.
yuhyun12@fnnews.com 조유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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