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언이설’ 믿고 태아보험 가입하면, 돌아오는 건 ‘지급거절’ [김경렬의 금융레이다]

금감원 민원제기 후, 보험사와 전문의 선정 합의만 2년 걸려
법조계 “금감원 분쟁조정 ‘유명무실’…직무유기로 보여”

<연합뉴스>

전라도 광주에 사는 정모씨. 정씨는 둘째 딸이 태어나자마자 아가의 양쪽 귀에 문제가 있는 것을 직감했다. 양쪽 귓바퀴가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가가 태어나고 받는 세 번의 청력 검사에 통과하지 못해 전남대학교병원 소이증 전문의를 찾았다.

전남대 전문의는 "양측 외이도가 완전 폐쇄 상태이고, 전정기관 이형성증 및 중이 및 이소골 발달이상으로 수술적 청력개선도 힘들다"며 "청성뇌간 유발반응검사에서 양측 모두 90db 이상에서 반응이 없다"고 설명했다. 양쪽 귀 모두 '소이증' 진단을 받았다. "들리지 않는다"는 소견이었다.

정씨의 딸이 겪는 소이증은 청력과 외이에 기형이 있는 선천기형 질병이다. 흔히 귓구멍이 막혀 청력이 온전하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다. 양쪽 귀가 소이증인 경우에는 소리를 들을 수 없어 언어발달지연을 동반하기도 한다. 이를 돕기 위해선 골전도 보청기를 사용해야한다. 다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

다행히 정씨는 한 보험사 태아보험에 가입했다. 태아보험은 만일의 위험에 대비해 가입하는 상품이다. 저체중아, 선천성이상아 등 예상치 못한 문제를 앓는 아기의 출산 확률이 높아지면서 각광 받고 있다. 정씨는 약정된 4000만원 후유증장애진단금을 받기 위해 병원에서 발급해준 후유장애진단서를 보험사에 제출했다.

보험사는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억울한 정씨는 금융감독원을 찾았다. 정씨는 지난 2022년 7월 금감원에 금융분쟁조정을 신청했다. 금감원은 답변서를 통해 "해당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청구를 즉시 수용하기는 어렵고 주치의면담 또는 제3의료기관의 의료자문 결과에 따라 보험금 지급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라며 "고도의 의학적인 전문지식이 요구되는 사안에 대해서 의료전문기관이 아닌 금감원으로서는 제출된 자료만으로는 객관적으로 확정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정씨는 보험사에 제3의료기관을 선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수도권 내 소이증 전문의가 있는 서울삼성병원, 분당서울대병원, 강북세브란스 등을 제안했으나, 보험사는 해당 병원들이 거절하거나 컨택포인트(연락접점)가 없다며, 부산 영도에 있는 고신대병원을 소개했다. 정씨의 집과 멀리 떨어진 데다 교통이 불편해 아기를 데리고 가기엔 무리였다.

정씨는 보험사가 2년 동안 지급을 거절하자 법적 분쟁을 각오했다. 극적으로 서울 소재 병원에서 진단을 받을 때 보험사 직원과 동행해 결과를 듣기로 합의했다. 보험사에 대한 신뢰는 고사하고, 부모의 마음을 헤집어놓은 보험사 사람들에 대한 믿음도 잃어버린 뒤였다.

서울 서초동에 어떤 변호사는 힘을 못 쓴 금감원의 분쟁조정부터 문제라고 꼬집었다. 변호사는 "신체 감정 결과와 전문의 감정 의견을 바탕으로, 법원은 보험계약의 약관을 해석해 지급여부를 판단한다. 신체 감정만 최장 2년 걸리고, 3심까지 진행한다면 결과를 얻기까지 총 5년이 걸릴 수 있다. 서민이 변호사 비용을 써가면서 결과를 기다리기에는 긴 시간"이라며 "금감원의 분쟁 조정은 변호사 비용이 없는 사람들도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해결해달라는 국민신문고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정씨에 대한 분쟁조정은 직무유기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경렬기자 iam10@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