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강국 이탈리아에 '시너 붐' "당신은 전설이다"
축구 대국 이탈리아에서 테니스의 야닉 시너 붐이 폭발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멜버른에서 열린 호주오픈 결승에서 다닐 메드베데프(러시아)를 상대로 리버스 스윕 승을 거두며 생애 첫 그랜드슬래머가 된 22세 야닉 시너의 쾌거에 온 나라가 열광하고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 남자 선수의 그랜드슬램 제패는 1976년 롤랑가로스에서 우승한 아드리아노 파나타 이후 48년 만이다. 여자를 포함해도 2010년 롤랑가로스 우승자인 프란체스카 스키아보네와 2015년의 US오픈 챔피언 플라비아 페네타 이후 처음이다.
시너의 이탈리아어 발음으로는 신네르라고 표기하는 것이 가깝지만 ATP 홈페이지에서 본인 입으로 자기 이름을 말할 때는 야닉 시너에 가깝다. 지난 며칠간 이탈리아 TV에서는 뉴스 프로그램이 시작될 때마다 그의 동향이 알려지면서 앵커들이 "신네르"를 외치고 있다.
1월 30일 14시간의 비행 끝에 이탈리아로 귀국한 시너의 대접은 그야말로 국민적 영웅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12시 30분(현지시각) 수도 로마의 피우미치노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에 도착하자 16시에는 총리관저를 예방해 조르자 메로니 총리로부터 특례라고 할 만한 환영을 받았다. 다음날에는 로마에서 개선 기자회견을 가졌고, 2월 1일에는 대통령 관저에서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을 예방했다.
언론의 반응도 뜨겁다. 이탈리아는 축구 강국이고, Gazzetta dello Sport지를 비롯한 3대 스포츠신문은 매일 1면에서 시작해 20쪽 이상을 세리에A를 비롯한 축구 기사를 쏟아낸다. 그런데 이번에는 호주오픈에서 시너가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를 꺾고 결승 진출을 확정지은 다음날 아침(1월 27일 토요일)부터 매일 스포츠신문의 1면은 시너가 독차지 하고 있다.
1월 27일 'SEI UN MITO 너는 전설이다'
1월 28일 'SIAMO TUTTI SINNER 우리 모두가 시너(가 된다)'
1월 29일 'IL RAGAZZO D'ORO 골든 보이'
1월 30일 'SINNER MAGIA:L'ITALIA PAZZA DI JANNIK 시너 매직:이탈리아는 야닉에 열중'
지난 4일간 1면은 물론 10페이지 이상 시너와 관련 기사로 채워졌다.
호주오픈은 이탈리아에서 유료채널인 Eurosport가 독점 중계하였기에 국민적 관심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시청할 수 있었던 것은 Eurosport, 혹은 이 채널이 세트에 포함되어 있는 Sky Italia DAZN의 계약자 등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이탈리아의 이들 유료 스포츠채널 계약자 수는 모두 450만여명. 그중 28일 결승 시청자 수는 최고점인 260만명에 달했다. 이는 유료 채널을 통한 테니스 경기 시청자 수로는 사상 최고였다.
SNS상에서도 시너라는 워드가 포함된 것이 결승이 열린 1월 28일에만 1천140만 개나 됐다.
이탈리아에서 지금까지 국민적인 주목과 인기를 가져온 개인 운동선수는 많지 않다. 최근 30년간으로 치면 1990년대 알파인 스키(회전, 대회전)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자랑했던 알베르토 톰바, 사이클 로드레이스에서 1998년 지로 디탈리아와 투르 드 프랑스를 연달아 제패한 마르코 판타니 등이 있는데 22세의 시너가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시너에 대한 주목도와 인기는 호주오픈 우승으로 갑자기 높아진 것은 아니다. ATP 랭킹 톱10에 들면서 지난 2년간 그 이름이 언론에 자주 등장했다. 특히 지난해 연말 ATP 파이널스에서 조코비치를 처음 꺾고, 데이비스컵 결승에서 이탈리아를 47년 만의 우승으로 이끌었을 때는 이탈리아 내 구글 검색 수, X 해시태그 수에서 운동선수 중 1위에 올랐다.
호주오픈 우승이 가져온 붐은 연말부터 시작된 파도가 단숨에 최고조에 이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대통령과 총리로부터 관저에 초청받았을 뿐 아니라 3월 열리는 이탈리아 최대 음악행사 산레모 음악제의 주최사인 국영방송사 RAI에서도 시너에게 게스트 참여를 요청했다.
하지만 이미 시즌이 시작되었고, 음악제의 게스트 참여가 경기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빼앗는다며 비상식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해당 프로듀서가 해명을 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이후 시너는 '산레모 음악제' 게스트 출연을 공식적으로 거절하였다.
시너는 22세에 세계 정상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냉정하고 이성적이며 동시에 소박하고 순수하다. 그것이 폭넓은 호의와 공감을 모으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시너라고 하는 성도, 날씬하고 키가 크며, 붉은색 머리의 신체적 특징도 이탈리아인의 타입과는 거리가 있다. 그것은 이탈리아 최북단의 알프스 산악지대에 위치한 알토 아디제 지방의 오스트리아 국경에 접한 산촌 출신인 것과 결부되어 있다.
알토 아디제는 이탈리아에서 유일하게 이탈리아어가 아닌 독일어를 제1언어로 삼고 문화적으로도 오스트리아의 영향을 많이 받은 특수한 지방이다. 야닉이라는 이름도 시너라는 성과 마찬가지로 이 지방에서는 극히 일반적이다. 일부에서 말하는 프랑스 테니스 선수 야닉 노아의 이름을 딴 것은 전혀 아니다.
산장의 관리인을 맡는 부모 밑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스키를 타는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어렸을 때는 스키를 즐겨탔다. 7세 때는 대회전에서 연령별 이탈리아 챔피언이 되기도 했다.
순수한 취미로 시작한 테니스에 서서히 빠져든 시너는 13세 때 이탈리아 유수의 테니스 육성센터에 다니기 위해 지중해 연안의 제노바와 가까운 보르디게라로 옮겨 기숙사 생활을 하며 본격적으로 테니스에 빠지게 된다.
그에게 제2언어인 이탈리아어를 익힌 것도, 그때까지는 거의 관심이 없었던 축구를 보게 되고 룸메이트가 응원했다는 이유로 밀라니스타(AC밀란 팬의 총칭)가 된 것도 육성센터 기숙사 생활을 통해서였다.
2015년, 14세에 프로 대회에 첫 출전하였고, 18세가 된 2019년에는 NextGen ATP 파이널스에서 우승하며 세계 랭킹에서 톱 80에 진입했다.
빅3가 지배했던 남자 테니스계에서 야닉 시너의 등장은 본격적인 세대 교체를 의미한다. 시너는 한 세대 위인 메드베데프, 안드레이 루블레프(러시아), 알렉산더 즈베레프(독일), 그리고 특히 두 살 어린 카를로스 알카라스(스페인) 홀게르 루네(덴마크) 등과 황제 자리를 다투는 한 사람이 되었다.
글= 김홍주 기자(tennis@tenni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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