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은 인간 정신의 보편적 특징… 맞서지 말고 공존 모색해야[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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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생트, 너는 랭보의 지갑을 털었고 / 빈센트의 귀를 잘랐으며 / 모딜리아니의 목을 비틀었다" 이생진 시인은 시집 '반 고흐, 너도 미쳐라'에서 위대한 예술가들을 무릎 꿇린 중독을 말했다.
알코올 중독은 스스로 귀를 잘라낼 만큼 자기 파괴적이었고,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할 만큼 혼란스러웠던 그의 정신세계를 어지럽힌 요소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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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에릭 피셔 지음│조행복 옮김│열린책들
“압생트, 너는 랭보의 지갑을 털었고 / 빈센트의 귀를 잘랐으며 / 모딜리아니의 목을 비틀었다” 이생진 시인은 시집 ‘반 고흐, 너도 미쳐라’에서 위대한 예술가들을 무릎 꿇린 중독을 말했다. 이 구절처럼 빈센트 반 고흐는 술꾼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알코올 중독은 스스로 귀를 잘라낼 만큼 자기 파괴적이었고,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할 만큼 혼란스러웠던 그의 정신세계를 어지럽힌 요소 중 하나다. 비단 반 고흐만 그랬을까. 인류는 늘 중독과 씨름해왔다. 독한 압생트 같은 술부터 담배, 도박, 게임에 최근엔 펜타닐 같은 마약까지 형태도 다양하다.
정작 중독에 대해선 얼마나 알고 있을까. 스마트폰으로 사용하는 소셜미디어에 지나치게 빠지는 것도 이름만 들어도 섬뜩한 마약과 같은 중독이라 한다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간 중독이란 개념을 질병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시각이 대부분이었고, 중독이란 단어부터 중독증을 가진 사람까지 바라보는 시선엔 대체로 혐오와 비난만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중독에 시달리다 벗어나고, 평생 중독을 연구하는 중독 전문 의사인 저자는 이런 단편적인 이해로는 영원히 중독과의 싸움을 끝낼 수 없다고 말한다.
책은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 미국까지 중독이란 개념이 어떻게 형성돼왔는지를 추적하며 중독을 해치워야 할 적으로 인식해선 안 된다는 주장을 펼친다. 중독은 치료 가능한 질병이라기보단 인간 정신의 보편적 특징에 가깝기 때문이다. 중독을 삶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공존하면, 중독도 긍정적인 성취를 일굴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는 뜻이다. 저자는 “우리 본성에 맞서 싸우는 전쟁은 부질없는 짓”이라며 중독과 함께 지낼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중독과의 공존은 책장을 넘기며 설득력을 갖기 시작한다. 역사적으로 중독을 대하는 방식인 처벌과 강제로 억제하는 금지론적 접근, 의학적으로 강박 충동을 제거하는 치료적 접근, 두뇌의 기능 이상을 생물학적으로 고치는 환원론적 접근이 모두 한계를 보이며 부작용을 낳았단 점을 짚으면서다. 특히 절제와 균형을 뜻하던 ‘템퍼런스’(temperance)라는 낱말을 ‘금주’로 바꾸며 중독에 전투적인 자세를 취했던 미국이 오피오이드나 펜타닐 중독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점은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다.
중독의 해결책은 잘 회복하는 데 있다. 촉망받는 젊은 의사에서 한순간 알코올과 약물 중독자로 전락하며 정신과 병동에 갇혔던 자신의 증상과 회복을 향한 분투를 털어놓는 저자의 생생한 경험담이 이를 뒷받침한다. 저자의 말대로 중독은 “삶의 즐거움과 고통을 느끼며 살아가는 방법이고,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인간 운명의 한 가지 표현일 뿐”인 셈이다. 504쪽, 3만 원.
유승목 기자 mo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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