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해줄 변호사가 필요한가요?” [슬기로운 기자생활]

장현은 기자 2024. 2. 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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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평균 80통가량의 전자우편을 받는다.

기사 끝에 적힌 바이라인(기자 이름과 이메일 주소)을 보고 보내는 제보 메일도 있지만, 대다수는 정부 및 여러 기관이 배포하는 보도자료 혹은 설명자료들이다.

브랜딩 업체의 고객은 기사에 이름이 언급돼 좋고, 기자는 시간을 들이지 않고 원하는 멘트를 구할 수 있으니 서로 윈윈이라는 논리.

그 바탕에는 '기자는 자기가 쓰고 싶은 방향대로 기사를 쓴 뒤 입맛에 맞는 전문가 멘트로 그럴듯하게 꾸민다'는 전제가 깔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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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은 l 노동교육팀 기자

하루 평균 80통가량의 전자우편을 받는다. 기사 끝에 적힌 바이라인(기자 이름과 이메일 주소)을 보고 보내는 제보 메일도 있지만, 대다수는 정부 및 여러 기관이 배포하는 보도자료 혹은 설명자료들이다. 간혹 기사의 오기나 특정 표현을 지적하거나 욕설이 담긴 메일을 받을 때도 있다. 그런데 며칠 전 매우 인상 깊은 메일을 받았다. 제목은 이랬다.

‘기사에 코멘트를 해줄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노무사가 필요하신가요?’

‘전문직’을 ‘퍼스널브랜딩’ 해준다는 업체의 대표라는 이가 보낸 메일이었다. 제목 그대로 변호사, 노무사 등 ‘사’자 취재원들을 기자 의도에 맞게 무료로 연결해 코멘트를 받을 수 있게 해준다는 내용이었다. 기사에 필요한 목적과 내용을 적어 전문가 멘트를 주문하면 관련 업계 전문직의 답변을 전달해오는 식이란다. 브랜딩 업체의 고객은 기사에 이름이 언급돼 좋고, 기자는 시간을 들이지 않고 원하는 멘트를 구할 수 있으니 서로 윈윈이라는 논리. 검색해보니, 이미 많은 매체 기자들에게 발송된 메일이었고 언론비평 전문지 미디어오늘에 취재 후기가 실리기도 했다.

창의적인 영업 방식에 놀라면서도, 씁쓸함이 밀려왔다. 그 바탕에는 ‘기자는 자기가 쓰고 싶은 방향대로 기사를 쓴 뒤 입맛에 맞는 전문가 멘트로 그럴듯하게 꾸민다’는 전제가 깔렸기 때문이다. 기사의 신뢰성을 높여주는 장치인 전문가 멘트를 더 쉽게 따라는 유혹 앞에 ‘취재는 사실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이라든가 ‘기자는 객관적일 수 없지만, 그 방법은 객관적이어야 한다’ 따위의 저널리즘 원칙이 서 있을 자리는 없다. 저널리즘 원칙 운운할 것도 없이, 기자의 편리함과 전문직의 이름 알리기를 공공연하게 맞교환하자니 이래도 되는 걸까 싶었다.

하지만 원인 없는 결과가 있겠나. 어떤 사안에 관해 기사를 쓴다면, 그 분야 여러 시각을 가진 다양한 전문가들을 두루 취재해 기사 방향을 세우고 기사를 써야 한다. 하지만 마감에 허덕이는 기자들은 매번 그렇게 일하기 힘들다. 언론사 또는 개인이 의도를 강하게 가지는 경우도 많다. 미디어오늘 등에 자신이 말하지 않은 내용의 멘트가 기사에 실렸다거나, 기자가 자신의 발언을 곡해해 인용했다는 전문가 주장을 담은 기사들이 꾸준히 실리는 이유다. 어떤 분야는 기자가 원하는 방향을 재빨리 캐치하고 기자가 원하는 멘트를 해주는 유명한 교수님이 있어, 여러 매체 기자들의 전화가 몰린다고 한다. 나 또한 서로 다른 전문가의 이야기 조각들을 맞춰보는 대신 쉬운 길을 선택했던 때가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몇년 전에는 언론보도를 원하는 개인에게서 돈을 받고 언론사를 연결해주는 ‘제보플랫폼 사업’이 등장해 서비스하고 있다. 넓게 보면, 제보자와 기자에 이어 기자와 전문가 연결도 사업이 된 셈이다. 기자들의 안일하고 관행적인 기사 쓰기가 만들어낸 상품들은 아닌지 뼈아프다.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던 시절 줄 쳐가며 읽던 빌 코바치의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 책을 오랜만에 꺼내봤다. 고작 2년4개월차 기자 생활이지만, 매일 취재하고 기사 쓰며, 처음의 낯섦이 점점 관행과 익숙함으로 채워지는 순간들을 깨닫고 놀랄 때가 있다. 우연히 받은 메일 한통에 여러 고민과 반성이 이어진다.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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