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증원 반대 논거가 ‘의사유인수요’? 과잉진료 자인하나

한겨레 2024. 2. 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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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지난해 10월 서울의 한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려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형선│연세대 교수(보건행정학)

의대 증원이 의료비 폭등을 가져오므로 의사를 늘리면 안 된다는 주장이 의사단체로부터 나오고 있다. 그 논거가 되는 이론이 ‘의사 유인 수요’ 가설이다. 이 이론의 핵심은 의사와 환자 사이에는 전문성의 차이가 커서 의사는 환자에게 ‘불필요’한 의료도 ‘유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사는 의료의 ‘공급자’면서 동시에 환자의 ‘대리인’이 되어서 의료의 수요를 결정할 수 있다. ‘의사 유인 수요’의 존재 여부에 대한 연구는 1970년대부터 미국 등에서 활발히 진행했다. 의사 수가 늘어나면 ‘불필요한 수요량’이 느는지 확인하려는 시도였다. ‘불필요한’ 수요량을 어떻게 규정할지에 대한 보건경제학자 라벨레(R. Labelle)의 설명은 명쾌했다. 늘어난 수요가 ‘건강 향상’으로 연결되면 ‘좋은 수요’지만, ‘건강 향상’에 기여하지 못하면 ‘의사 유인 수요’일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의학의 한계’에 기인한 것까지 ‘문제가 되는 유인 수요’로 비난하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의 현안인 ‘의대 증원’ 논의와 관련한 쟁점으로 돌아오자. 추가적인 의사 인력의 공급으로 ‘의료 이용’이 어느 정도 늘어나며, 그 가운데 ‘의사 유인 수요’는 어느 정도일까? ‘공공수가’가 적용되고 ‘행위별 수가제’로 보상하는 우리의 건강보험에서 현재의 ‘의료 수요량’은 어떤 의미일까? 과연 의사들이 스스로 설정한 ‘목표 소득’을 실현했기 때문에 만족해서 수요를 더 ‘유인’하지 않고 있을까. 아니다. 지금도 더 많은 환자를 보기는 어려울 정도로 분초를 다투어 진료하고 있다.

의사 서비스가 불충분한 곳에 의사가 오게 되면 ‘필요한’ 의료를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보건경제학자 칼슨(F. Carlsen)이 말하는 ‘가용성 효과’(availability effect)다. 대기 시간, 이동 시간 등의 기회비용이 낮아지면서 환자의 선택 폭이 넓어지고 의료 이용을 제때 하면서 건강의 회복과 향상이 높아지는 효과다. ‘의사 밀도’가 낮은 지역일수록 그 효과는 커지게 된다. 의료 이용이 늘어나는 점은 외견상 같지만, ‘불필요한’ 수요를 만들어내는 의미의 ‘유인 수요 효과’와는 다르다. 보건행정학회지는 2015년 우리나라에서 ‘의원 밀도’가 낮은 지역에서 의료인력에 대한 접근성 증가는 ‘가용성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제시했다. 의사의 ‘유인 수요’는 의료 인력의 공급이 과잉이어서 경쟁이 극심할 때 기승을 부린다. 의사가 없어 의사를 찾는 환자를 보기도 바쁘다면 ‘필요 없는’ 환자까지 만들어낼 필요는 적어진다.

정부는 의사 면허를 통해 ‘명칭’ 독점권과 ‘업무’ 독점권을 부여한다. 의사의 자질을 사전에 확보해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독점권이 의사의 수입을 보장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정책당국은 ‘의사 유인 수요’를 이유로 필요한 의사의 공급을 제한하고, 국민의 의료 이용을 막아서는 안 된다. 반대로, 의사단체 쪽에서 의사 수를 늘려서는 안 되는 근거로 ‘의사 유인 수요’ 이론을 제시한다면 이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의사가 자신의 수입을 높이기 위해서 환자에게 과잉진료를 할 수 있다고 ‘자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사의 수를 늘리면 불필요한 의료를 강요해서 환자의 부담만 늘어나니 불편하더라도 지금 수준에 만족해”라는 것인가. “의료비가 많이 드니 의사를 부족하게 놔두라”는 주장이지만, 실상은 거꾸로다. 지난 20년 동안의 경험은, 의사가 부족하니 의사에 대한 보수가 한없이 높아지고, 정책당국은 높아진 의사 인건비를 반영해 의료서비스 수가를 올려주는 것이었다. 결국, 의사 부족이 의료서비스의 단가를 높이고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높인 것이다.

‘의사 유인 수요’는 ‘의사’가 아니라 ‘국민’이, 그리고 국민을 위해 정책을 시행할 ‘정부’가 걱정할 문제다. 불필요한 ‘의사 유인 수요’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지만,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기반을 마련하는 것도 정부의 일이다. 필요한 의사 서비스를 위해서 의사의 수를 늘려야 한다면, 도움이 되는 의료를 위해 의료비 부담을 해야 한다면, 국민으로서는 마땅히 ‘건강보험료’를 낼 것이다. 그 판단은 ‘국민’이 한다. 이는 ‘돈의 가치’(밸류 포 머니)에 대한 국민의 판단과 의료에 대한 국민의 ‘지불 의사’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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