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3명 중 1명이 기후유권자…총선 결과 바꿀 수도 있어”
1만7천명 설문… 3명 중 2명 꼴‘탄소세’ 찬성 등 경향성 보여
“이젠 정책 질의서만 보내지 않아…후보가 기후정책 내놔야 할 것”
지난달 22일 국내 기후운동에 의미 있는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로컬에너지랩과 더가능연구소, 녹색전환연구소 등이 참여한 ‘기후정치바람’이 무려 1만7천명의 시민을 대상으로 한 기후위기 인식 조사였다. 통상 정치 관련 조사 대상이 많아야 수천 명이고, 한국환경연구원이 2012년부터 해마다 벌이는 국민환경의식조사 대상이 3천명가량인 것과 견주면 이례적 규모다.
17개 광역시도별 1천명씩을 대상으로 172개 문항을 질문한 조사에서 국내 유권자들은 기후문제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다소 급진적 규제라 할 탄소세(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시 부과되는 세금) 도입에 3명 중 2명꼴로 찬성했고, 차량 수를 규제하는 정책에도 5명 중 3명이 지지했다. ‘기후대응공약이 마음에 들면 평소 정치적 견해가 다른 정당이나 후보라도 투표를 고민하겠다’는 이가 5명 중 3명꼴이었다. 기후정보에 대한 인지도가 높고, 동시에 기후위기에 대한 민감도도 높으면서 실제 투표 의향도 있는 이른바 ‘기후유권자’도 33.5%로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기후유권자는 전남, 서울, 대전, 광주 순으로 비중이 높았다.
한겨레는 이번 조사를 수행한 ‘기후정치바람’의 이관후 건국대 교수와 신근정 로컬에너지랩 대표를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이들은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소장의 제안으로 이번 기획이 시작된 지난해 5월부터 수차례 전문가 포럼을 열어 조사 방식과 문항 등을 고민해왔다.
―왜 이런 대규모 조사를 했나?
이관후 교수(이하 이) “원래 기본 정치전략을 짤 때 첫 회의는 유권자 인식조사 결과를 공유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근데 기후 쪽에는 그런 게 없더라. 최근 10년간 1천명씩 조사한 10건 남짓이었다. 그나마도 정치조사 기본 문항인 지지정당, 투표의향, 소득 및 주거형태 같은 문항이 없더라. 정치 의제화의 자원으로 쓰기에 부족했다.”
―전문가 포럼은 어떻게 진행했나?
신근정 대표(이하 신) “다섯 차례 했고 또 네 차례 계획돼 있다. 기후활동가뿐만 아니라 식량, 경제, 안보, 복지, 농업, 지역이나 광고 전문가도 왔다. 기후활동가들이 기후 의제를 여러 분야에서 교차해서 볼 수 있었고, 각 분야 기후대응이 어찌 이뤄지는지 알게 됐다.”
이 “기후만 생각하고 문항을 만들면 정치의제화를 하기 힘들다. ‘기후위기가 자기 자산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 생각하느냐’는 질문도 포럼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지구를 지키기 위해 기후 대응을 하는 게 아니라 주식으로 이익을 얻으려 기후위기에 관심 갖는 이들도 대단히 많다. 포럼은 조사설계가 1차 목적이지만 활동가들이 다른 영역과 접촉해보는 게 중요하다 생각했다.”
―사회 일반과 기후운동진영에 다소 거리가 있는 듯하다.
신 “우리는 환경운동가들이 기후위기에 관심 갖게 된 것도 최근의 일이고 대자본 등 사회 주류와도 떨어져 있었다. 일상적 거버넌스가 이뤄지지 않는다. 또 문재인 정부 시기 약속했던 것들이 현 정부에서 탄압받는 상황을 보며 좌절했고 방어하지 않는 야당을 보며 정치 불신도 커진 것 같다.”
이 “한 세대 전 젠더 문제가 한국 사회에 처음 제기됐을 때도 담론의 주류화를 추구했다. 우리 사회 기후 담론도 어느 정도 사회화되긴 했지만, 아직 정치화하진 못했다. 한 분야 담론에 갇혀있지 않고 문턱을 넘어 주류화해야 한다. ‘당위’에서 ‘전략’으로 가야 하는 때다.”
―하지만 국내 선거에선 기후 문제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신 “지난해 여름 발생한 오송 지하차도 참사 같은 기후재난도 행정 실수, 인재 측면만 부각됐다. 기후위기를 해결해야 할 문제, 정치 영역으로 보지 않는다. 지역 현안과 환경 문제, 선거가 따로 논다. 그러다 보니 기후문제 해결에 정치 효능감을 느끼기 어렵다. 하지만 실제 탄소 중립이나 기후위기 대응은 지역경제에 더 직접적 영향이 있다. 단풍이나 산천어 같은 계절 축제가 다 무너지고 있고 석유화학이나 석탄, 자동차산업 같은 지역경제의 주축도 영향받는다. 에너지 가격이 오르니 딸기 값이 폭등하고, 바다 수온이 오르면서 전복이 다 폐사했다. 농수산물 주산지가 다 바뀐다. 서울에서 느끼지 못하는 지방의 변화가 크다.”
이 “각종 기상재난, 겨울 난방비, 쓰레기 소각장, 전기요금 다 기후 관련 문제이지만 복지나 지역이기주의, 공기업 효율화 같은 ‘낡은 정치 틀’로만 다룬다. 마치 기후 의제가 없는 것처럼. 상당히 많은 일반인도 이젠 이런 문제가 기후위기와 관련이 있다는 걸 알지만, 정치 이슈가 되면 낡은 틀로 돌아간다. 정치 리더들이 먼저 견인하는 리더십이 중요하지만 그런 것도 없다. 정치와 언론의 책임이 큰데 이들은 스스로 변하지 않는다. 선거에서 의제화하고 영향을 미쳐야 한다.”
―‘기후 선진국’들은 어떤가?
이 “유럽 등지에선 ‘기후투표’(Climate Vote)가 일상적이다. 오스트리아나 네덜란드의 녹색당은 크게 성장했고, 독일에선 2021년 총선에서 녹색당이 118석으로 전보다 두 배 이상 늘면서 연정을 사실상 결정했다. ‘선거는 독일에서 했는데 캠페인은 그레타 툰베리(스웨덴의 기후운동가)가 다 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듬해 2022년 오스트레일리아 총선에서도 녹색당이 어마어마하게 약진했다. 그 선거에서 노동당으로 정권이 교체됐는데 유권자들에게 ‘어떤 의제가 가장 중요했냐’고 물었더니 1위가 기후위기였다. 이런 경우 ‘기후투표가 이뤄졌다’고 얘기한다. 영국은 내년 1월 전 총선을 치를 가능성이 큰데 최근 영국 그린피스가 100만명 기후투표자 조직 캠페인을 시작했다. 세계가 그런 상황이다. 우리도 그런 추세에 맞게 변화하고 있는 거다.”
―‘기후유권자’란 말을 새로 만들었다.
이 “사회적 의제는 여럿이다. 이미 부상돼 있기도 하고 감춰져 있기도 하고. 이를 정치적 의제로 만들려면 선거 때 그 이슈에 반응해서 투표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가능하다. ‘정치적 호명’을 하는 거다. 지역, 계급이나 계층, 이념, 남북관계, 복지처럼 기후를 투표의 기준으로 삼는 유권자들을 호명하고 조직화해야 기후가 정치적 의제가 된다. 그래서 기후유권자가 어디에 있고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또 개별 선거구에서 기후 문제와 관련한 이슈들이 뭐가 있는지 찾아내자는 것이다.
―우리 국민 중 기후유권자가 33.5%인 것으로 나왔다. 어떻게 보나?
신 “규모가 생각보다 커서 고무돼 있다. 조직화 목표를 정할 땐 3%만 돼도 좋겠단 생각이었다. 실제 33.5%가 다 조직화할 수 있다 생각지 않지만, 이번 조사 결과는 어떤 시민이 기후유권자가 될 수 있느냐를 보여주는 척도다. 실제 기후재난을 겪은 사람들, 원전 줄이기 같은 에너지 정책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 심각하게 반응하고 투표 의향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기후유권자란 개념을 명확히 홍보하고 많이 알려야겠다 생각한다.”
이 “이번 조사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강조하는 후보에게 더 관심을 둘 것’이라는 이가 62.3%였다. 지난 미국 대선 때 콜로라도대학 조사에서 비슷한 질문의 답이 67%였다. 물론 실제 투표는 그것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 조사 결과 미국 대선에선 기후와 관련해 나타난 표 차이가 결과적으로 3% 정도였다고 한다. 한데 3%는 실제 바이든과 트럼프의 당락을 가른다. 한국 수도권 선거에서도 20~30곳의 결과를 바꿀 수 있는 차이다.”
―결과를 보면, 교통 문제에서도 시민 의식이 매우 깨어있는 듯하다.
이 “레디컬(급진적)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런 경향이 강하다. 다음 차를 내연기관차로 사겠다고 응답한 사람이 12.2%에 그친다. 전기차(37.8%)가 가장 많았고 그다음 순위가 ‘사지 않겠다’(19.7%)였다. ‘모르겠다’(16.7%)고 답할 수 있는데도 그랬다. 내연차 신규판매 중단 찬성도 63.8%였고, 차량 등록제를 실시해 총 대수를 규제하자는 의견도 56.6%가 나왔다(반대는 33.9%). ‘매우 반대’부터 ‘매우 찬성’까지 무미건조하게 늘어놓은 평범한 선택지에서 그렇게 나왔다.”
―프랑스가 얼마 전 입법화했는데, ‘대형 주차장 태양광 의무화’도 찬성 비율이 매우 높았다.
이 “그건 압도적이었다. ‘대형 주차장에 태양광 발전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반대는 10.9%에 불과했고 찬성은 81.4%였다. 이건 굉장히 압도적인 차이이고 국민들이 사실상 의무화하자는 거다. 주요 정당들이 당장 이번 총선 때 공약으로 내걸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
―또 어떤 결과가 인상적이었나?
신 “‘국회의원 300명 중 기후위기 대응에 적극적인 의원이 몇 명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있었는데 ‘10~20명’, ‘20~50명’ 이런 식으로 나뉜 구간에 답하는 거였다. 10명 이내가 가장 많이 나올 줄 알았는데 ‘모르겠다’가 40%로 제일 많아서 충격적이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국회에서 누가 뭘 하는지 모르겠다, 아예 알 수가 없다는 거다.”
이 “국회가 기후특위(기후위기특별위원회)를 만들어놨지만 거의 운영되지 않았다. 그런 부분들이 반영됐다고 본다.”
―지역별로도 기후이슈 의견을 물었다.
이 “대구에선 동성로 대중교통전용지구 폐지가 상당한 이슈다. 대구시 정책은 폐지인데 동성로가 있는 중구는 다른 대구 지역보다 폐지 반대가 훨씬 높게 나왔다. 중구에 출마하는 이들은 같은 국민의힘 후보끼리 경쟁해도 이 문제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공약에 반영할 거라 생각한다. 민주당 텃밭이라 할 전북 새만금 지역도 시민들 의견이 명확하게 나와 있다. 더는 추가 매립하지 말고 현재 확보된 부지 안에서만 개발하라는 거다.”
신 “그동안 시민사회에서 선거 대응 때 정책 질의서 보내고 답변 받아서 결과 발표하고 했는데, 후보들 입장에서 보면 표가 될만한 활동이 아니었다. 한데 이렇게 각 정책 호응도를 들이밀면서 후보 입장도 밝히라고 하면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기후활동가들 입장에서도 무기가 생긴 거다.”
이 “지역별로 그런 이슈들이 다 있다. 인천은 갯벌을 세계유산으로 올리자는 의견이 많은데(81.1%) 실제 그 지역 후보들이 다 공약으로 채택할 수 있다. 공약 단계에서 확정되면 누가 당선돼도 하는 거다. 대전시는 기존에 하던 미니 태양광 보급 사업을 중단하겠다고 했는데 대전 중구는 반대가 3배 가까이 높게 나왔다(반대 61.7%, 찬성 21.6%). 중구에 출마하는 사람이 이 공약을 안 넣으면 이상한 거 아닐까.”
―앞으로의 계획은?
신 “지역 단위 캠페인 집중하려 한다. 17개 광역시도 단위로 각각 보고서 내고 지역 시민사회가 각 당의 시도당과 주요 후보들을 불러 기후유권자 설명회, 정책 토론회를 진행하려 한다. 몇 곳은 날짜도 잡혔다. 우리가 지역을 돌며 순회 토론회도 하려 한다. 기후유권자, 기후정치가 회자하도록 캠페인을 하려 한다. 어쨌든 가장 중요한 목적은 후보가 답을 내놓게 하는 것이다. 전국의 모든 후보가 1호 공약을 기후공약으로 내세우게 하는 게 우리 목표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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